영국 ‘사람잡는 최면술 쇼’로 술렁
  • 런던 · 한준엽 통신원 ()
  • 승인 1995.01.19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심장 쇼크사등 피해 사례 늘자 의회서 규제 움직임…‘직접 영향’ 입증 못해 논란 계속

호기심 때문에 공개 최면술 쇼에 참가한 젊은 부부가 1만 볼트 초고압전력에 감전되는 최면 상태에 빠졌다가 공교롭게도 최면이 풀린 지 다섯 시간 만에 심장 쇼크로 숨진다. 또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는 과거회귀 최면에 걸렸던 건장한 20대 청년이 이후 9개월 동안 줄곧 여덟 살짜리 어린이 같은 유치한 행동과 지능을 보이면서 정신분열 증세로 시달린다. 이것은 가상의 사건이 아니라 영국에서 일어난 실화이다.

 90년대 초부터 영국의 텔레비전 쇼나 극장무대에서는 시청자나 관객의 직접 참여를 유도하는 집단 최면술 쇼가 성행하기 시작했다. 빗발치는 비판과 찬반 논쟁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주말이면 텔레비전의 최면술 쇼가 마술 쇼만큼 많은 시청자를 사로잡고 있어, 최면술 묘기를 펼쳐 보이는 최면술사들은 유명 연예인에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러한 최면술 쇼에 대해 최근 영국 의회의 여야 의원들이 합세해 정면으로 문제 삼고 나서 관심을 끌고 있다. 전국의 최면술 쇼 실태를 파악하라고 정부측에 촉구한 것이다. 의원들은 최면술을 쇼 공연 차원에서 다루어 왔던 52년 최면술관련 법을 제정한 이후 40여년 만에 최면술의 부정적 측면에 관심을 기울여 법 개정의 필요성을 정식으로 거론하기 시작했다. 그런가 하면 최면술 쇼에 참가했다가 사망하거나 정신질환 등 후유증을 않고 있는 피해자들의 실태도 처음 일반에 공개됐다.

26세 청년 최면 걸린 후 평생 어린아이 신세

 크리스토퍼 게이츠는 26세 청년이다. 그는 하원 본회의에서 최면술 쇼 규제 움직임에 불을 당긴 보수당의 팀 스미스 의원이 최면술 쇼의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이며 산 중인이라고 지적한 뒤로, 많은 사람의 격려와 동정을 받고 있다. 게이츠씨는 현재 영국 상업 텔레비전 방송의 한시간짜리 최면술 쇼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인기 1위 최면술사 폴 매케나의 극장 공연 최면술 쇼에 참가했다가 만년 어린아이로 살아가게 된 어처구니없는 비극의 주인공이다. 그의 애인이었던 비버리 깁스양에 따르면, 건장하고 정상적이던 게이츠가 어린이의 지능 상태가 되어 비정상적인 언행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3월10일, 그들이 폴 매케나의 최면술 쇼를 관람하고 난 뒤부터였다. 게이츠씨는 천여 명이 들어찬 스완극장 관객석에서 매케나의 지명을 받고 그의 최면술 쇼 시술 대상으로 무대에 올라갔다. 두 시간을 공연하는 동안 게이츠씨는 매케나의 마법 주술에 걸린 것처럼 발레리나가 되기도 하고, 외계인의 말을 전하는 통역사가 되기도 했다. 관객들의 환호와 격려 속에 깊은 최면 상태에 빠진 게이츠씨는 어린 아이의 정신 연령에나 맞을 유치한 행동을 계속했다. 쇼가 끝나고 집에 돌아온 게이츠씨는 그날 밤 안절부절하는 상태에서 쉽게 잠들지 못하고 새벽까지 가벼운 정신착란 증세를 보였다. 그 후 정신분열 증세가 1주일이나 계속되자 깁스양은 게이츠씨를 동네 진료소에 데려갔는데, 게이츠씨는 곧 종합 병원 정신과로 넘겨져 전문의로부터 정신안정 치료를 받았다. 4주 동안의 입원 치료에도 불구하고 게이츠씨의 어린아이 같은 행동과 정신분열 증세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의회에서 게이츠씨의 비극을 공개한 팀 스미스 의원은 당시 상황을 종합해 볼 때 매케나는 게이츠씨를 어린 시절 상태로 되돌려 놓는 과거 회귀성 최면을 걸어 놓은 후, 중간 휴식 시간에도 이 최면을 풀지 않은 채 2시간 15분 동안 내리 최면 상태에 빠져 있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장시간 퇴행성 최면 행위는 최면술쇼 공연에 대한 정부의 지침에 어긋나는 것이며, 장시간의 최면 상태가 관객에게 열띤 분위기와 상승작용을 일으켜 최면이 풀린 뒤에도 쉽게 정상 상태로 되돌아 올 수 없었으리라는 것이 전문가의 의견을 인용한 스미스 의원의 지적이다. 이에 대해 최면술 쇼 파동의 장본인인 매케나는 “지난 10년 동안 만여 명을 상대로 최면술 쇼를 했지만 한 사람도 부작용을 일으킨 적이 없었다”고 반박했다. 매케나는 이어 자신을 포함한 ‘영국 최면술 쇼 윤리연맹’ 회원 대부분이 52년의 최면술법과 공연에 관한 내무부의 명령을 준수해 왔다고 강조하고, 게이츠씨의 정신분열 증세가 자신의 최면술 쇼 후유증이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게이츠씨 외에 의회에서 관심을 집중시킨 또 한 사례로 두 아이를 둔 24세 주부가 최면술 쇼에 참가한 직후 다섯 시간 만에 쇼크사한 경우가 있다. 샤론 타바른씨는 지난해 겨울 동네 주점에서 공연하는 최면술 쇼를 구경하다가 최면 상태를 직접 경험하고자 최면술사의 주문대로 1만 볼트 고압 전력에 감전된 환각 상태에 빠졌었다. 타바른씨는 쇼가 끝난 후 다섯 시간 만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쇼크를 받아 죽었다. 딸의 갑작스런 죽음에 충격을 받은 부모가 즉각 소송을 제기했지만 최면 상태 경험이 최면이 풀린 후 바로 일어난 쇼크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임을 증명하지 못해 패소하고 말았다.

의원들, 무자격 최면술사 형사처벌 거론

 최면술은 18세기 중엽에서 19세기 초까지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 프리드리히 메스머가 정신병 환자들을 치료하는 데 이용한 신경 및 정신치료 요법의 하나로 처음 선보였다. ‘당신은 지금 서서히 깊은 잠으로 빠져듭니다’ 라는 말로 시작하는 반복 주문을 통해 시술 대상자의 암시 감응성을 극대화하면서 환각 상태에 빠져든 환자의 의지를 마음대로 조정하는 이 치료법은, 메스머의 이름을 따서 메스머리즘이라고 불렸다. 그리고 얼마 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잠의 신 히프노스의 이름을 딴 히프노티즘으로 바뀌어 통용되어왔다. 메스머 자신이 고국에서 사기꾼으로 몰려 추방된 데다가 망명 생활을 한 파리에서조차 1785년 돌팔이 의사로 낙인이 적힌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최면술은 백여 년간 그 효력 자체에 대해 많은 논쟁이 뒤따랐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두통과 욕지기, 피로감, 충동적인 발작, 일시 기억 상실, 우울증, 불안감 증폭 등을 최면의 대표적인 부작용 및 후유증으로 꼽는다. 최면술이 흡연이나 과식을 억제하기 위한 방법으로, 또는 기억상실증을 치료하는 정신치료법으로 신중히 사용될 때 그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견해도 있다. 그것을 근거로 정통성을 내세우는 직업 최면술사들은, 쇼가 아닌 의학상의 최면술 시술은 최면 대상자에게 기존의 의식 세계를 벗어난 다른 의식 세계를 펼쳐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문제의 초점은 의학상의 정통 최면 시술이 아니라 최면 상태와 현실 세계의 경계가 흐릿해 서로 맞물리거나 감정적인 흥분과 시술 대상자를 부추기는 주위 환경 때문에 최면 시술 과정과 최면 해제 과정이 제대로 행해지지 않는 공개석상의 집단 최면술 쇼에 맞춰진다. 쇼 무대에서 최면술 쇼를 하는 최면술사의 숫자는 현재 영국에서 비공식적으로 수 천명에 이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면술 시술자에게 엄격한 자격 요건을 요구하지 않고 또 당국의 허가 규제 대상이 아니어서 공식 통계를 낼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연말의 최면술 쇼 파문에 영향 받아, 영국 의회는 첫 규제법안이 제정된 지 40여년 만에 오락용 최면술 쇼와 무분별한 무자격 최면술사를 규제하기 위한 형사처벌 법규 제정을 거론하고 있다. 공개석상이 아닌 지하에서 정신 치료법을 빙자한 최면술 시술이 비밀리에 행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최면술사의 자격을 법으로 규정하지 않을 경우 아마추어 무자격 최면술사들로 인한 폐해가 더욱 늘 것으로 보인다. ■
런던 · 韓準燁 통신원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