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ㆍ소 정상회담 평가 / 고르비 방한 땐 실점 만회해야
  • 김승웅(편집국장 대리) ()
  • 승인 1990.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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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연방은 신뢰 협력 정신으로 관계구축을 다짐한다.”
실속 못챙긴 소련방문

노ㆍ고르비회담에서 채택된 ‘모스크바 공동선언’은 큼직한 외교적 果實임에 틀림없다. 다자국 정상회담도 아닌 양국간 정상회담에서 ‘선어’(declaration)급의 결실을 따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간혹 되풀이돼온 한ㆍ미정상회담의 예만 봐도 기껏 채택된다는 것이 양국 정상간의 ‘코뮈니케’(공동성명)나 ‘신문 발표문’(프레스 릴리스) 정도가 고작이었기 때문이다.

 공동선언은 국제법적인 비중 또는 구속력의 순위로 따질 때 ‘조약’(treaties)과 ‘협정’(agreement)에 이어 3번째 순위의 法源으로 평가받고 있다. 코뮈니케나 프레스 릴리스는 6~7위의 순위에 머무는 최하위급 합의방식이다. 모스크바 공동선언이라는 과실은 이처럼 화려하고 튼튼한 외교적 果皮로 덮여 있다고 보아 무방하다. 그러나 이 과피를 일단 벗기고 막상 果肉을 입에 넣어 씹을라 치면 별맛이 없으니 안타깝다.

 한ㆍ소관계에 관한 한 제3자가 봐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있다. 6ㆍ25사변, 그리고 소위 ‘2백69명의 학살’로 불리는 대한항공기 격추사건에 대한 소련측 사과나 해명이 그것이다.

 이번 노ㆍ고르비회담에서 이 두가지 사건에 대한 구체적 해명이나 언급이 있기를 기대한 것은 6ㆍ25참극을 실제 목격한 연령층이나 대한항공기 참사 유족들만의 바람은 아니었다. 이번 모스크바 공동선언을 여러차례 훑어봐도 이에 대한 언급이 단 한줄도 명시돼 있지 않다.

 기껏해야 “양국관계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면서…”라는 희미한 문안이 들어 있을 뿐이고 이 대목에 대해 “6ㆍ25남침과 대한항공기 추락사건 등 불행했던 과거사에 대한 양국의 공식인식에 입각한 표현”이라는 한 청와대 관계자의 견강부회식 해명만이 있었을 뿐이다.

 

‘엎드려 절 받기’식 소련측 사과

 소련측 사과는 엉뚱하게 崔浩中 외무장관의 입을 통해 나왔다. 최외무는 소련의 셰바르드나제 외상이 양국 외상회담을 통해 6ㆍ25와 대한항공기 사건을 구두로 사과했노라고 흡사 소련정부의 대변인처럼 밝힌 것이다.

 왜 고르비로부터 직접 사과를 받아내거나, 아니면 이 사과를 공동성명에 문안화시킬 만한 외교적 담력을 우리는 지니지 못했는가. 담력이나 용기란 외교의 금기이기 때문일까.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사대외교다, 또는 일부 비판론자들의 주장처럼 “달러를 지불하고 거둔 매수외교다”하는 도식적인 평가에 편승해서가 아니다. 정부는 가장 실리적인 측면에서 오류를 범했다.

 이번까지 두차례의 한ㆍ소정상회동이 국내의 정치적 난국을 희석하기 위한 ‘내치용 외교’라는 평가는 지금 단계에 와서는 한갓 야당가의 비판으로 머물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런 여론을 정부와 여당 스스로도 상당 부분 인정하는 상황이 됐으며, 한걸음 더 나아가 사실이 그러함을 등정한다손 치더라도 굳이 욕되거나 민족을 배신한 처사라고 볼 수만은 없게 됐다.

 그렇다면 이번 모스크바 등정이 이왕 (내치)목적용 대소 접촉이었다는 소리를 들을 바에야, 국민의 속을 후련하게 풀어줄 만한 쾌거를 이번 정상회동에서 기도했어야 옳지 않았겠는가.

 다시 말해 고르비가 과거의 소련을 대신해서 정중히 사과하고, 이 사과 대목이 공동선언을 통해 일부만이라도 문안화됐더라면 정부는 국민의 자긍심도 회복시켜주고 ‘내치용’ 운운의 비판을 재희석시키는 일석이조의 쾌재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안이한 전술로 대소외교 끝맺음

 품은 품대로 들고 비판은 비판대로 남는 형국이 돼버린 셈이다. 이번 모스크바 등정이 거둔 성과의 하나로 지목되는 고르비의 앞당겨진 방한문제도 그렇다.

 야권에서는 내년 2월로 알려진 고르비의 방한을 그로부터 한달 후로 예정하고 있는 지자제 실시에 시점을 맞춘 우리측 정치 시나리오의 하나로 파악하고 있다. 심지어는 북방외교의 마지막 과제가 되고 있는 노태우ㆍ김일성회담의 경우 14대 총선 또는 대통령선거 직전에 치러질 것이 분명하다는 성급한 분석도 나오고 있다.

 민자당의 김영삼 대표나 평민당의 김대중 총재가 서로 ‘경쟁적으로’ 평양행을 시도하고 있는 것도 다 이런 맥락에 기인한 해석이다.

소련측의 사과나 해명이 아쉽게 느껴지는 또하나의 이유는 우리가 이를 강력히 요구했던들 소련측이 이에 대해 끝까지 반대하지는 않았으리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생필품의 고갈과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한 비판으로 소련은 지금 고르바초프 등장 이후 가장 ‘우울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이 겨울의 2~3개월을 과연 어떻게 슬기롭게 넘기느냐에 따라 페레스트로이카의 사활이 걸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공격세를 펼 최적의 시기에 정부는 너무 안이하고 고식적인 전술로 대소외교를 끝맺음한 것 같다.

 내년 2월 고르비의 방한이 예정대로 치러지기를 기대한다. 이런 기대는 8개월내에 한ㆍ소정상이 3차례나 회동하는, 기네스북에 오를 기록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번 외교접전에서 미진했던 대목을 만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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