富의 ‘명문’ 압구정동 그늘없는 아파트촌
  • 정기수 기자 ()
  • 승인 1990.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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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계층 밀집, 부동산ㆍ생활수준 ‘대한민국 1번지’

 택시운전사로부터 잘해야 “자가용 놔두고 왜 택시를 타느냐”고 가볍게 ‘찍는’ 소리를 듣거나, 심하면 거스름돈도 못받고 쫓기듯 내려야 하는 사람들. 과소비ㆍ불로소득 계층 하면 첫 번째로 입에 오르내려, 사진기자가 아파트주차장만 찍으려 해도 경비원에게 즉각 연락, 파출소로 연행토록 할 만큼 신경이 곤두서 있는 사람들. 87년 대통령선거 때 盧泰愚 후보에 36%, 金泳三 후보에 39%, 金大中 후보에 19%, 金鍾泌 후보에 6%씩 표를 던진 사람들.

 이 나라 최고의 아파트값을 자랑하면서 전국의 부동산시세를 ‘리드’하고, ‘대한민국의 1번지’로 통하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동 아파트단지 주민이 그들이다. 힘과 돈을 겸비하여 이른바 파워계층으로 불리는 그들은 과연 누구이며 사는 모습은 어떤 것인가. ‘압구정동’이 태어난 지 15년이 흐르기까지 이 동네의 주민구성과 주변환경은 어떤 변화의 과정을 겪어왔을까.

 80년대 중반 한때 구현대아파트단지(지도 참조)에서만 국회의원이 20명 이상 살 정도로 압구정동이 순식간에 ‘파워지역화’ 된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현대건설의 아파트건설업 진출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혜를 받아 신도시를 개발하고 그 땅에다 지은 아파트를 각계 힘있는 인사들에게 특혜분양한 데서 오늘의 압구정동 구도는 이미 짜인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현대건설은 68년 당시 성동구 압구정동 저수부지의 공유수면매립을 정부에 신청, 매립허가를 받아 70년 4월 공사에 들어갔다. 세조의 왕위찬탈에 일등공신 역할을 한 韓明澮가 한강의 갈매기를 벗하며 노닐고, 후일에는 朴泳孝의 정자이기도 했던 狎鷗亭. 그 자리에서 강변쪽으로 이어지는 만곡형의 모래밭을 돋우는 매립공사는 당초 공장부지 조성이 목적이었다.

 현대는 여기에서 두차례의 ‘수상한’ 일을 꾸민다. 공사진행중에 매립목적을 택지조성으로 바꿔버렸으며, 허가면적보다 무려 1만1천평을 초과해 한강을 매립한 것이다. 준공 후 4만3평이 현대에 귀속됐다.

 

특혜분양으로 특수층 무더기 ‘이식’

 75년, 활처럼 구부러진 경관좋은 강변에 23개동 1천5백62가구분의 아파트가 최초로 압구정동에 건설되기 시작한다. 이때의 시공회사는 현대건설이 아닌 남지산업. 현대는 이 회사를 76년 인수, 한국도시개발주식회사로 상호변경하고 아파트건설업에 뛰어들었다. 매립한 김에 아파트도 직접 짓겠다는 것이었는데 그 이후로도 변칙적으로 사업을 벌여 드디어 큰일은 내고야 만다.

 1차 35평형 2백24가구에 이어 50대50으로 사원용과 일반분양용으로 사업승인을 받은 바 있는 2차 48평형 3백92가구, 52평형 1백68가구, 65평형 1백68가구 등 모두 7백28가구를 1백%사원용으로 분양토록 서울시에 수정요청하여 승인을 받아냈다. 로비용으로 특혜분양을 하기 위해서 일반분양몫을 아예 없앴던 것이다. 78년 7월, 검찰 수사결과 특혜대상은 청와대 안기부 국방부 경제기획원 상공부 재무부 건설부 총리실 서울시 국세청 관세청 치안본부 등의 고위 공무원, 판ㆍ검사, 국회의원, 변호사, 언론인 등 힘있는 곳의 인사들은 총망라된 것으로 밝혀져 국민에게 일대 충격을 안겨주었다.

 특혜분양을 받은 사람은 수백명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중 1백만~4백50만원의 프리미엄을 받고 전매를 하여 투기혐의가 드러난 사람은 56명이었다. 아파트값이 더 오르기를 기다려 아직 전매를 하지 않고 있던 공직자 등 특혜분양자들은 꼼짝없이 들어가 살 수밖에 없게 됐다. 정경유착에다 입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합해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는 어느 면에서 ‘울며겨자먹기’식으로 파워집단 주거지역이 형성된 곳이라고 볼 수 있다.

 이후 계속해서 건설된 아파트들도 자연 비슷한 계층의 입주자들로 채워지면서 압구정동 아파트단지 주민구성의 특징은 보다 분명해지게 됐다. 아주 짧은 기간에 이루어진, 높은 수준의 사회ㆍ경제적 지위 소유집단의 이주였다. 구현대아파트단지(32개동)와 한양아파트단지(38개동), 87년 마무리된 신현대아파트단지(32개동) 등 3개 아파트지구로 이뤄진 압구정동의 1백2개동 1만여세대는 지금 초기의 주민구성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가.

 자신의 신분이나 생활이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려 현재 이 지역 주민의 정확한 직업분포를 밝히는 일이란 대단히 어렵다. 그러나 부동산업자 동사무소관계자 등 압구정동을 오랫동안 관찰해온 단지 안의 관계자들에 따르면 부자들은 이미 많이 빠져나갔고 지금도 나가고 있으며, 고위공직자의 수도 줄고 있는 대신 교수 의사 변호사 등 고소득 전문직업인이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동사무소 파악으로는 단지 내에 현재 국회의원 12명, 장ㆍ차관 6명, 1급 이상 공무원 15명, 군장성 8명, 법조인 22명, 언론인 30명이 살고 있고 ‘파악대상’에 들지 않는 교수나 의사는 각각 1백여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비교적 큰 평수의 아파트 1개동이 어떤 직업군의 입주로 구성돼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현대아파트 54평형 ○○동을 표본으로 선정, 입주자들의 두터운 ‘방어벽’ 속에서 끄집어낸 결과 <표1>과 같이 나타났다. 이를 보면 개인사업자와 대기업 부ㆍ차장급 회사원이 30%씩으로 가장 많고 중소기업 규모의 사장(대표이사)과 임원, 의사 교수 언론인 등 전문직업인이 4~7%씩이다.

 <표2>에서 보듯이 현대아파트 65평형 ○○동 98명의 가구주를 출신도별로 조사한 결과 서울이 58명으로 압도적으로 많았으며 그 다음은 경남ㆍ북(15명)이었다. 경기는 5명, 강원ㆍ충남ㆍ전북은 각각 4명이었으며 광주를 포함한 전남은 3명이 살고 있었다. 이는 출신지역별 분포가 거의 역순으로 나타난 <시사저널> 60호 46면의 봉천9동 19통3반 가구주 조사결과와 비교할 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12월말 현재 압구정동 아파트시세는 평당 평균 1천1백만원. 48평짜리가 6억, 52평이 6억5천만원을 호가한다. 이들 아파트는 3년 전 2억원선에 거래됐던 것이다.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전문직업인의 경우 월소득이 최저 2백만원. 다른 동ㆍ부동산이 없다 하더라도 6억대의 자산소유자인 이들의 생활양식은 어떤 것일까.

 

양보다는 질. 질보다는 모양 ‘소비패턴’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의 단서는 압구정동 여성들의 모습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여성 오너드라이버가 눈에 띄게 많으며 그들의 패션이 매우 앞서 있다는 점이다. 이 지역의 한 협의회장에 따르면 주부들의 90% 가량이 대졸 이상 학력으로 파악되고 있는데, 샐러리를 받는 직장생활보다는 사회단체ㆍ정당ㆍ학교ㆍ종교 등과 관련된 사회활동을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차량보유대수가 평형별 또는 주부의 활동 여부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나긴 하지만 가구당 1.5~2대꼴이 된다. 어느 동엘 가봐도 낮시간 주차장에 세워진 차종이 대부분 소나타 이상의 고급차이다. 사진기자를 내쫓을 만도 하다. 그랜저를 몰고 상가에서 쇼핑을 하고 오거나 학교에서 자녀들을 데려오는 것은 압구정동 단지 내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주차난이야 말할 것도 없고 단지 안의 도로가 도심처럼 항상 붐비는 것도 아마 압구정동 아니고서는 쉽게 구경할 수 없는 풍경일 것이다.

 배달영업을 주로 하는 한 상인은 “생선가게에서 값을 깎는 것을 보면 평범한 주부같기도 한데 집에 배달을 가보면 그게 아니다”라면서 “그냥 쎈 게 아니라 엄청나게 쎄다”고 말한다. 그의 얘기는 거실의 꾸밈새와 집기류의 수준에 한정돼 있다.

 ‘압구정동 여자’들의 소비패턴은 양보다는 질이요, 실용성보다는 센스와 패션이다. 서울시내의 한 기업체가 압구정동 상권에 진입하기 위해 올 상반기중 전문여론조사기관에 의뢰, 이 지역 주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가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마음에 들면 비싸더라도 구매한다(60%)고 응답, 가격이 구매의 제약요건은 되나 구매의 결정기준은 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유명상표에 관심이 있고(71%), 메이커를 중시하나(71%), 외출복 구매시에 반드시 유명브랜드에 구애받지는 않는다(62%)고 하여 디자인과 색상만 좋으면, 예컨대 싸구려 보세품이라도 개성과 멋이 있다면 즐겨 사입는다.

 압구정동의 주부들이 패션에 얼마나 민감한지는 패션잡지 구독률이 68%에 달하고 집안에서도 옷에 신경을 쓰며(53%) 품질보다 모양ㆍ색상ㆍ감촉이 더 중요하다(62%)고 생각하는 데서도 엿볼 수 있다. 패션의류는 값이 비싸더라도 마음에 들면 구입한다는 사람이 75%나 되고 있다. 패션과 감각에 대한 이들의 관심은 가구와 커튼의 색깔을 맞추는 데서부터 주방용품에 이르기까지 철저하다. 음식을 담을 때는 음식에 어울리는 그릇을 사용하고(86%), 값이 비싸도 수입상품을 구입한다(43%).

 건강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 보리차를 마시지 않고 약수나 생수를 사 마신다(80%). 단지 내에서는 다이아몬드생수 등 3개 회사의 생수가 배달되고 있는데 한 배달원은 “48평형의 경우 한 통로의 24세대당 20세대가 일주일에 3천5백원짜리 물 한통을 사먹고 있다”고 말했다.

 압구정동 사람들은 가족과 자주 외식을 하며(80%) 유명음식점을 일부러 찾아가 식사를 즐긴다(66%). ‘피자인’ ‘중국성’ ‘늘봄공원’ 같은 인근 고급음식점도 찾지만 승용차를 이용해 이름이 널리 알려진 곳을 찾거나(44%) 호텔(24%)을 더 많이 이용한다.

 취미ㆍ레저 활동 역시 이들의 생활 가운데 중요한 부분이다(89%). 골프 스키 수영 볼링 테니스 등을 즐길 만한 돈과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이 지역 한 백화점 관계자는 “평일에 비해 휴일에 매출액이 오르지 않는 유일한 지역이 압구정동”이라면서 이것은 주민들이 그만큼 공휴일에 어디로든 많이 떠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풀이한다.

 이들의 가장 큰 관심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자녀교육이다. 구정고등학교의 한 교사는 “이 학교의 전교생이 진학을 희망하고 있고 지난해 4년제대학 진학률이 50%를 넘어 전국에서 1위를 차지할 만큼 학생들의 수준이 높긴 하지만 그것이 강요된 ‘억지공부’일 따름이어서 학생들은 공부에 지쳐 있다”고 말한다. 학생들이 공부를 잘하는 게 아니고 부모들이 그렇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과외를 하지 않는 학생이 거의 없어 학교 수업시간에는 졸거나 과외숙제를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국민학교 어린이들도 마찬가지여서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볼 수 없다”는 것이 단지내 상인들의 얘기이다.

 

“탈법 투기쪽으론 가지 않는 것 같다”

 패션에서 남보다 앞서가고, 중형승용차를 몰고 사회활동을 하고 다니며, 자녀들 교육비투자에 ‘절제’가 없는 이들의 월 생활비는 도대체 얼마나 될까. 평균 2백만원은 족히 넘는다는 것이 이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이지역 상인들의 어림짐작이다.

 단지 안의 한 은행지점장에 따르면 이 지점의 1구좌당 평균 예금잔액은 3백만원을 웃돈다. 저축성예금이 아닌 유동성예금통장의 잔액이 이 정도라면 월 지출액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구좌당 평균잔액 3백만원은 변두리 주택가의 그것보다 10배가 넘는 수준이다. 이 지점장은 “압구정동 주민들의 금융상품에 대한 정보와 지식은 은행직원보다 빠르고 정확하다”면서 “주가ㆍ부동산시세 등의 변화에 대단히 민감한 것이 이 지역 예금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이익이 나는 쪽으로 재빨리 이동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공인중개사의 말을 빌면 이들이 경기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긴 하지만 단지내 복덕방에서 땅거래 등이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탈법적인 투기쪽으로 가지는 않는 것 같다는 것이다. 이 공인중개사는 “경제적으로 안정된 계층이고 신분상 안전한 수단을 찾아야 하기 때문에 단자ㆍ투신ㆍ증권쪽의 상품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한다.

 지은 지 10년이 넘었고 주변환경이 오염되고  있기 때문에 압구정동 아파트는 현재는 아시아선수촌아파트(평당 1천2백만원)에 ‘최고’ 자리를 내주었다. 주민들은 그래서 압구정동 아파트가 과연 앞으로도 ‘명문’으로 계속 인기를 유지할 수 있을지 우려하고 있다.

 

패션의 새로운 중심지


 동사무소 관계자에 따르면 ‘학교가 끝난’(자녀가 8학군 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더 큰 평수를 찾아 새로 지은 아파트로 빠져나가고 있으며 원래 입주자는 20%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들이 찾는 새 주거지는 <표3>에서 보듯 거의 강남지역 안에서 녹지가 많고 주변환경이 좋아 새 명문아파트로 부상하는 곳들이다. 특히 88년 12월 이후 방이동 올림픽선수촌ㆍ기자촌아파트와 서초동 삼풍아파트로 옮겨간 가구가 많았던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 85년 현대백화점이 들어서고 신사동 네거리 일대에 카페 등 유흥가가 형성되면서 시작된 압구정동 주변지역의 변화는 최근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신사동의 술집거리가 압구정동과 청담동을 넘어 테헤란로까지 뻗치고 있으며 압구정동 동쪽, 갤러리아백화점 동관 맞은편 거리가 패션가로 나날이 번창하고 있다.

 이 길은 ‘로데오거리’로도 알려져 있는데 신촌 이대앞 상가가 그대로 옮겨진 모습으로 캐주얼의류 보세신발 전문매장들로 들어차 있다. 여기에 고급패션의류가게인 전문부티크(디자이너숍)도 속속 자리를 잡고 있어 압구정동은 이대앞과 명동이 그랬듯이 패션의 중심지로 지역의 특성을 굳히고 있다.

 이에 따라 ‘외지인’들이 237-1번 시내버스를 타고 떼지어 몰려와 쇼핑을 하는 등 압구정동 거리는 크게 어지럽혀지고 교통체증도 극심하다. 주거환경은 갈수록 나빠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서초지역이 앞으로 행정타운으로 발전될 전망이고, 테헤란로 주변이 오피스빌딩 중심의 업무지역으로 변화하고 있어 그같은 우려가 더욱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신사동과 압구정동이 그 배후지역으로서 유흥ㆍ위락산업과 패션산업만이 집중적으로 발달하게 돼 압구정동의 주거기능은 위협받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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