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 새 불씨 ‘일본기자단’*
  • 남유철 기자 ()
  • 승인 2006.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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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 사활’ 보도분쟁이 무역분쟁으로... 중요 정보 日 기자에 먼저 제공


 

 우노 전 일본 총리는 지난 89년 기생과의 불륜관계가 폭로되면서 결국 사임까지 해야 했는데 그 성추문사건은 미국 언론인들의 호기심을 유발했다. 일본의 한 주간지가 특종 보도한 이 사건을 당시일본의 유력한 언론들은 담합이라도 한 듯 일제히 무시했다. 그러나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외신기자들이 이를 보도하자, 침묵하던 이들도 떼를 지어 가세하기 시작했다.

 당신 미국 언론은 일본의 주류 언론이 총리의 성추문이라는 대사건을 왜 사건발생 초기에 의도적으로 외면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게다가 더욱 큰 의문은 그들이 어떻게 '행동통일‘을 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었다. 언론사 간에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미국 에서는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러나 얼마 후 미국 언론 비평지 <<콜롬비아 저널리즘 리뷰>>에 의해 의문의 열쇠는 일본 기자단에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일본의 중앙 일간지와 방송은 정부기관은 물론 민간협회와 기업에 이르기까지 배타적인 기자단을 거미줄처럼 형성하고 독점적으로 정보를 향유하고 있다. 서울주재 한 외신기자가 “이 지구상에서 한국만이 모방했다”고 표현한 ’記者구락부‘로 불리는 일본 기자단이 미국과 일본 양국의 무역분쟁에서 핵심 현안으로 조만간 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도쿄에 주재하는 미국 특파원들이 배타적으로 차별하는 일본 기자단을 공정 무역 차원에서 문제삼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 신생 경제통신사 블룸버그는 도쿄증권거래서 일본 출입기자단이 차별대우를 함으로써 기업의 사활까지 문제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주일 미국대사관에 최근 이 문제를 해결해주도록 협조를 요청했다. 이 문제에 관여하고 있는 주일 미국 외교관은 ≪시사저널≫과의 국제전화 인터뷰에서 “미국 대사관은 이 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외교관에 따르면 내년초 클린턴 행정부가 들어서면 “일본 기자단 문제가 무역현안으로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주일미대사관은 아직 공식 경로를 통해서는 워싱턴에 보고하지 않았으나, 미 무역대표부는 “기자단과 관련한 제반 문제를 이미 잘 알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외신기자들은 일본 기자단으로 인해 취재에 심각한 제약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일본 정부나 기업은 출입기자단에게만 배타적으로 정보를 주면서, 일본의 비주류 언론이나 외신사를 정보로부터 원천적으로 배제시킨다고 한다. 기자단은 그 반대 급부로 결정적인 시기에 이른바 ‘보도협조’라는 명목으로 보도를 축소 혹은 자제함으로써 공조 관계를 유지해 나간다.

日신문협회, 기자단에 외국 언론사 가입 막아

 그러나 경쟁을 구조적으로 배제하는 일본 기자단은 변화하는 환경의 도전을 이겨내기 힘들 것 같다. 도쿄는 이미 세계경제의 중심도시로 부상했다. 도쿄발 뉴스에 대한 수요는 전세계에서 크게 증가하는 추세이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외신사는 2백개사를 넘어간다. 일본의 거대 언론사들이 직접 영자 매체사업을 확대해 나가면서 외신과 일본 언론사 간의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반 일본 기자단’ 캠페인에 적극 나서고 있는 블룸버그와 같은 세계적 경제통신사는 단 1~2초 차이로 특종과 낙종이 가려지는 첨단 취재전쟁을 벌이고 있다. (46쪽 상자기사 참조).

 블룸버그의 데이비드 버트 도쿄지국장은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모든 기자단에 정회원으로 가입하기를 원한다. 일본 기자단이 외국 언론사를 회원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면 기자단을 해체해야 한다.”고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주장했다. 그는 “이 문제는 더 이상 언론자유 문제가 아니다. 공정무역에 관한 문제이다”라고 강조했다. 버트 지국장에 따르면 도쿄증권거래소의 경우 일본 출입기자들은 기업 매출이익 보고서가 나오면 외신사보다 5분에서 15분 정도 앞서 자료를 넘겨받는다. 1~2초를 놓고 경쟁하는 경제통신사 간에 5분이란 50년을 의미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도저히 경쟁사인 닛케이 텔레콤(<日本經濟新聞社>가 운영하는 경제통신)을 이길 방법이 없다.”

 미국 언론사가 받는 제약은 이 뉴스를 구독하는 미구의 신문 및 기업 투자자에게 직접 피해를 주는 것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그러나 도쿄증권거래소 이시히 다이치 대변인은 “증권거래소는 어떤 언론사도 차별하지 않는다. 기자단이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기업관련 정보도 기업이 와서 기자단에게 먼저 배포하므로 거래소로서는 어쩔수 없다”고 한다.

 블룸버그는 가장 문제가 심각한 도쿄증권거래소 출입기자단에 일단 가입을 신청했다. 그러나 日本新聞協會의 회원사만이 출입기자단에 가입할 수 있으니 우선 협회에 가입하고 오라는 통보를 받았다. 블룸버그는 다시 일본신문협회에 회원가입 신청을 했으나 외국인 소유 언론사는 회원이 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 협회의 타도코로 이주미 사무국차장은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블룸버그는 가입 자격이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 그는 “외신사라도 만약 일본에서 현지법인화되어 있고, 그 회사의 뉴스를 협회 회원사들이 구독하고 있다면 특별히 고려해 볼 수도 있으나, 블룸버그는 이러한 조건도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노리이다. 또한 “협회는 특정 기관의 출입기자단에 대해 어떤 언론사의 가입을 권유하거나 막을 입장이 못된다”고 한다. 그러나 도쿄증권거래소 출입기자단 간사인 <朝日新聞>의 오기노 히로시 기자는 “매우 복잡하고 민감한 사안이라 전화로는 얘기할 수 없다”는 입장만을 밝혔다.

日 본뜬 한국의 기자단 제도도 병폐

 일본외신기자클럽 회장직을 맡고있는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의 클레이튼 존스 도쿄지국장은 “일본 기자단이 지닌 문제는 비단 일본 언론사나 기자들만의 책임은 아니다. 공정한 경쟁을 통한 다양한 기사를 요구하지 않은 일본 독자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전화 인터뷰에서 밝혔다. “공적인 정보는 모두에게 공개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존스지국장은 조만간 외신기자 총회를 열어 이 문제에 대해 본격적인 대처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도쿄의 미국 특파원들이 생각하고 있는 대처 방안의 하나는 워싱턴에서 일본 기자단을 큐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 언론이 이 문제를 기사화해 국제적인 압력을 가한다는 전략이다. 도쿄의 한 미국 외신기자는 “일본은 창피해서라도 뭔가 변화를 추구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일본측에도 변화의 조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본 외무부는 최근 출입기자단을 외신기자들에게 개방했다. 지난 11월17일 기자단 가입신청을 하라는 연락을 받았다는 AP통신의 마이클 허시 특파원은 “외무부 출입기자단을 개방한 것은 바람직한 변화이다. 그러나 일본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지적한다. 도쿄주재 외신기자들은 외무부는 성격상 국제화가 가장 앞선 곳이고, 외무부 기자들도 개방을 강력히 희망해서 개방이 이루어진 예외적인 경우라는 입장이다. 또한 개방은 했지만 일본기자들과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있을 것으로 외신기자들은 믿고 있다.

 일본주재 미 외교관은 외무부와 달리 도쿄증권거래소를 개방하는 것은 일본에게도 “매우 중대한 의미가 있다”고 지적한다. 한번 개방의 물결이 닥치면 일본언론의 취재관행과 환경이 걷잡을 수 없이 변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정부 출입기자실은 모두 정부 빌딩 안에 있다. 그 운영도 정부의 긴밀한 협조 아래 운영된다. 이런 이유만으로도 일본정부가 궁극적으로 정부 출입기자단에 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없을 것으로 미 대사관과 외신기자들은 믿고 있다. 미 외교관은 일본 외무부도 “기자단 문제에 관한한 우리와 상당히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日本經濟新聞>의 요시카와 가즈키 서울특파원은 일본내 기자단 문제와 관련해 “언론사측에도 문제는 있지만 정보유통 관리를 위해 정부쪽에서도 이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한국의 취재원은 외신기자에게 잘해주는 편이라 큰 불편은 없다. 그러나 한국정부의 경우 최소한 외무부나 통일원의 기자회견에는 참석하고 싶다”는 것이 그의 희망이다. 그는 “국제화 시대에 일본에서나 한국에서나 폐쇄적인 기자단 운영은 크게 잘못됐다”고 말한다.

 도쿄 근무를 마치고 서울에 부임한 데이먼 달린 <윌 스트리트 저널> 서울 특파원은 “일본과 한국의 폐쇄적인 기자단 운영은 거의 비슷한 것 같다”고 한다. 그는, 서울에서 활동하는 외신기자 수는 도쿄에 비하면 아직 절대적으로 적은 수이나, 시장개방이 이루어지면서 곧 많은 외신기자들이 서울에 진출할 것으로 내다본다. 한국외신기자클럽 회장 沈在薰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 서울지국장은 “아무쪼록 한국은 일본 기자단의 무역분쟁화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며 “한국 언론의 최고 고질병이 바로 기자단”이라고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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