未堂 徐廷柱
  • 김 훈 편집위원 ()
  • 승인 2006.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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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露女 손톱에 뜨는 반달이”

 

 러시아 유학과 코카서스 장수촌에서의 집필생활을 목표로 지난 7월 출국했던 시인 未堂 徐廷柱씨(78) 내외가 11월 초순 돌연 귀국했다. 未堂은 러시아 변방의 혼란과 부인 方玉淑 여사 (73)의 발병으로 유학을 포기하고 귀국했다고 밝혔다. 未堂을 만나 그가 본 러시아와 앞날의 계획에 관해 알아보았다.

 돌아오신 뒤 ‘러시아 미녀’에 대해서 시를 몇편 쓰셨더군요. 러시아 여자들은 어땠습니까?

 정말 대단해. 생명의 아름다움이란 이쪽이나 저쪽이나 다 같은 거야. 어느 산골 관광지에서 산딸기를 파는 러시아 행상 여자를 봤는데, 난 그만 넋이 빠지고 말았어. 한 스물이나 됐을까. 그 푸르고 투명한 손톱 밑으로 분홍색 살이 내비치고 손톱 아랫쪽에는 열 손가락마다 반달이 떠오르는 거야. 그런데 손톱 끝에는 시커먼 때가 끼어 있더군. 반달도 예쁘고 때도 예뻤어. 저걸 내가 데려다가 좀 씻겨서 때를 빼주고 싶더군. 그래서 딸기 백루불어치를 내가 사주었지. 돌아와서 그 여자를 생각하면서 두어 줄 쓴 거야.

 러시아 여자들하고는 살을 대 보셨습니까?

 이 사람아 내가 지금 몇살인데 그게 되겠나. 더구나 난 내 할망구를 데리고 다니는 신세가 아닌가.

 호텔마다 여자들이 많지요?

 그렇더군. 내가 혼자서 호텔 바에서 술마시고 있는데, 웬 러시아 창녀가 나에게 접근해왔어. 날 보더니 국민학교 동창생이라도 만난 듯이. 화사하고 신뢰에 가득찬 웃음을 웃으며 가까이 오더군. 그 여자에게서 이상한. 낯선 향기가 풍겼어. 난 그 여자의 그 웃음을 아직도 해석할 수가 없어서 안타깝네. 내 주머니의 달러 몇푼을 우려먹으려고 그런 웃음을 웃었을까? 아마 그렇지는 않을걸세. 인간의 이런 확실한 아름다운 웃음을 난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네. 그러니까 또 시를 써 보는 거지.

 그래서 그 여자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나를 막무가내로 따라오는 거야. 그래서 ‘내 방에서 내 아내가 기다리고 있다’고 말해주었어. 슬픈 표정으로 돌아서더군. 슬픈 일이지

 요즘 사모님하고는 어떻게 지내십니까?

 시에도 썼지만, 내가 한 평생 마누라 속을 엄청 썩였거든. 그래도 본질적인 배신은 하지 않았어. 이젠 뗄 수 없는 친구처럼 되었지. 늘 둘이서 나란히 누워 잠들지. 어쩌다가 그짓 비슷한 엉킴이 있기도 하지만 본격적으로는 전혀 안되네. 할망구는 언제나 내 손목을 꼭 쥐고 잠들지. 할망구 손목을 쥐어야 할 절실함이 나에게는 사실 없네. 그러나 할망구에게는 그 절실함이 살아있네. 난 삶에 있어서 그리고 문학에 있어서 이런 절실함을 늘 옹호해왔지. 내시라는 것이 모두 이런 삶 속의 간절함을 위하여 쓴 것이 아닌가.

 지금 아름다운 것들이나 아름다운 여자들을 보시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난 이제 이쁜 여자를 봐도 아름다운 자연풍경을 보는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네. 자연의 일부로서 사랑할 뿐이야. 그래도 역시 안타까움은 남지. 난 이제 내 할망구 몰래 딴 여자하고 연애할 생각은 진짜 없지. 믿어주기 바라네. 그건 아름다운 것을 추잡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해.

 요즘에도 선생님 바람나지 말라고 사모님이 냉수 떠놓고 비시나요?

 그렇지는 않아. 그럴 일이 없거든. 그런데 러시아에서 한번 그와 비슷한 일이 있었어. 날 안내해주는 러시아 여자가 마리아 이바노브라라는 미녀였어. 내 맘에는 들지 않는 여자였는데, 러시아에서는 미녀행세를 하더군. 이 여자가 나한테 하도 싹싹하게 굴어서 내가 팁을 듬뿍 주었지. 그랬더니 내 할망구가 뾰로통해 가지고 하루종일 말도 안했어. 그 늙은 나이의 질투라는 것은 또 얼마나 간절한 것이겠는가. 난 이런 것들을 사랑하지. 그래서 자꾸 시를 쓰게 되는 것인가 봐.

 러시아에 계실 때 레닌혁명의 유적지도 가보셨습니까?

 난 그런 쓸데없는 짓은 하지 않네. 물질의 균배가 혁명이라니,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난 레닌 쪽으로는 얼씬도 하지 않았네. 역사의 쓸데없는 과정을 통과해 나간 작자였다고 생각하네.

 그럼 로마노프 왕가의 유적들은 가보셨습니까?

 그것도 역시 지루한 허접쓰레기일 뿐이지. 다 필요없는 것일세. 난 레닌이고 로마노프고 쓰레기더미 쪽으로는 가지 않았네. 나에게 절실한 것들을 찾아다녔을 뿐이야.

 늙은 시인의 눈에는 러시아 국민의 모습이 어떻게 비쳤습니까?

 가난이 그들을 아름답고 건강하게 만들어주고 있더군. 그들은 가난한 국민이지만, 결핍 앞에서 비천하거나 비루하지는 않았어. 오히려 그들은 그 결핍된 물질 앞에서 경건했어. 가진자들의 오만과 남아돌아가는 자들의 흥청망청이 얼마나 비천한 것인지, 러시아에 가보니까 알겠더군. 인간들이 각박하지 않고 늘푼수가 있더군.

 애초에 코카서스 쪽으로 행선지를 정한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내가 지금부터 써야 할 것은 단군에 관한 장편 서사시일세. 이것은 내 생애의 중대한 작업이지. 그래서 우리 민족의 고대사 속에서의 이동경로와 삶의 궤적들을 찾아보려고 중앙아시아 우랄산맥 이쪽을 답사하려 했던 거지. 그리고 또 그 일을 다하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좀 걸리겠기에 오래 살아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장수마을이라는 코카서스에 거점을 정하려 했던 거지.

 그럼 장편 서사시 ‘단군’은 언제 착수하십니까?

 할망구가 도중에 병이 나서 돌아온 거야. 한두달 쉬면 회복되겠지. 내년 초에 다시 원고 보따리 싸들고 코카서스로 가기로 다 되어 있어. 그때 가서 본격적으로 답사도 하고 글도 써야지.

 ‘단군’ 같은 테마로 글을 쓰시면 언어의 감각적 힘을 살려내기가 매우 어려우리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래, 그게 바로 문제야. 언어가 감각적 힘을 잃으면 다 망치는 거지. 그래서 여행도 하고 답사도 하면서 말의 힘을 키우고, 말을 늘려나가는 거지. 공부할 수밖에 없네.

 <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실린 평론가 염무웅씨의 글을 보니까, 50년대의 리얼리즘을 논하면서 “서정주의 시가 50년대 시들 가운데 유일하게 훌륭한 성취를 이룩했다”라고 말했는데, 선생님은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계십니까?

 내 시를 내심 좋게 생각하면서도 자신의 정치적 지향성이나 환경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고민은 사실 좀 옹졸한 것이기는 하지만, 내가 그걸 이해 못할 바도 아닐세. 어쨌든 그 사람이 그렇게 말했다니 기분 좋은 일 아닌가.(웃음)

 “서정주의 시는 그의 어처구니없는 정치적 오류에 대해서조차 우리를 눈멀게 한다”고 염무웅씨가 썼더군요.

 나의 정치적 과오란 전두환 시절에 내가 범세계예술가회의를 결성한 것과 거기에 관련된 내 행적들을 말하는 것일 거야. 전두환 시절의 내 행적은 ‘정치적 행위’는 아니라고 난 생각하네. 난 그때‘정치적 행위’를 한 일이 없거든. 그리고 내 친일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내 자신의 글로 다 털어놓아서 더 이상 할 말이 없네.

 염무웅씨의 글을 보니까 선생님에 대한 긍정과 부정, 사랑과 증오가 참혹하게 교차하고 있는데, 선생님은 이 부분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인간사회’에 살고 있는 것일세. 인간사회에 살고 있으면서 정치나 경제만을 가지고 인간의 모든 국면을 정리하려고 드는 것은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지. 지금 인간의 그런 과오에 대한 반성이 전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네. 그러나 상황변화에 따라서 평가나 논리가 변하다는 것은 좀 가엾고 안쓰러운 일이기도 하지. 어쨌든 새로운 눈이 열리고 생각이 더 깊어져서 다들 인간의 쪽으로 돌아오기 바랄 뿐이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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