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통신
  • 도쿄·채명석 편집위원 ()
  • 승인 2006.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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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과 추문으로 얼룩진 新造語

 

 일본인들은 망년회의 달 12월을 ‘시와스(帥走)’라고 부른다. 평소 의젓하게 걷던 선생들이 뛸 정도로 바쁘게 돌아가는 것이 12월이라는 뜻이다.

 시와스가 되면 ‘일본신어·유행어대상선정위원회’라는 단체는 해마다 그 해의 신어·유행어를 발표한다. 올해 그랑프리를 차지한 유행어는 ‘킨(金)상 긴(銀)상’, 신어부문 ‘호메 고로시’ 표현부문 ‘복합 불황’이 금상을 차지했다. ‘킨상 긴상’이란 나고야에 사는 1백살 쌍둥이 할머니의 이름이다. 이들이 ‘백살 백살’이라고 외치는 방송광고가 큰 인기를 얻자 ‘킨상 긴상’ 붐은 순식간에 일본 전국을 석권했다.

 1백세가 넘은 노인만 해도 4천1백52명에 이르는 일본에서는 1백살 쌍둥이 할머니도 흔한 ‘보통 노인’이다. 그런데도 하루아침에 전국적 인기를 모으는 ‘노인 탤런트’가 된 것은 일본 매스컴의 극성 때문이다. 한 예로 일본의 민간 텔레비전 방송국들은 이들이 감기로 입원하자 매일 그 용태를 중계할 정도로 극성을 떨었다.

 ‘킨상 긴상’ 열기에서 보는 것처럼 올해 일본에서는 유난히 매스컴이 극성을 떨었다. 예를 들면 8월의 통일교 합동결혼식, 스모선수와 미야자와 리에와의 약혼 그리고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너 왕세자비의 이혼 소동. 반면 자기 나라 왕세자의 결혼 상대에 대해서는 ‘보도 자숙’이라는 자물쇠를 걸어놓고 있는 것이 일본 언론이다. 광고 불황이 과열보도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는 의견도 있는데 압권은 캄보디아에서 벌이고 있는 소동이다. 해외 파병된 자위대원 6백명을 취재하려고 프놈펜에 몰려간 일본 취재진은 언제나 2백~3백명을 헤아린다. 이는 프놈펜에 파견된 전체 외국인 특파원의 절반을 넘으며 이들이 뿌리는 엔화로 자위대 주둔지 다케오 지방의 물가가 천장부지로 뛰어오르고 있다고 한다.

 올해 일본에서는 정치 스캔들이 꼬리를 물고 터졌다. 교와사건, 도쿄사가와큐빈사건으로 이어진 정치 추문은 ‘호메 고로시’라는 올해 최대의 유행어를 낳았다. ‘호메 고로시’란 칭찬하여 죽인다는 뜻이다. 즉 칭찬하는 척하면서 역으로 공격한다는 말이다.

 이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 10월. 도쿄사가와큐빈사건 공판이 진행되는 도중 우익단체 ‘호메 고로시’의 공격을 다케시타 진영이 돈으로 막았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부터였다. 지난 87년 1월 우익단체 ‘일본 황민당’은 다나카를 배반하고 따로 살림을 차린 다케시타를 공격하기 위해 ‘호메 고로시’라는 신무기를 개발했다. 6개월간 이들이 집요하게 가두선전을 하면서 외친 구호는 ‘돈 잘버는 다케시타를 총리·총재로 모시자〃는 것이었다.

 총리·총재 지명을 앞둔 다케시타 진영은 도쿄의 야쿠자 조직 ‘이나가와카이’ 회장에게 우익을 설득해 달라고 부탁했다. 중개역을 맡은 도쿄사가와큐빈의 와타나베 사장은 이때 진 빚 때문에 ‘이나가와카이’ 회장 이시이에게 거액의 채무보증을 했고 거품경제가 파탄 나자 연초 이 사건이 표면화된 것이다.

내년 어려움 전망한 유행어까지 등장

 ‘호메 고로시’가 올해 최대 유행어로 선정된 것은 이 사건의 파장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유행어가 등장한 이후 일본인들이 “이제는 남을 함부로 칭찬하기 힘들어졌다”고 한숨짓는 모습을 보면 이 말이 일과성 유행어는 아닌 성 싶다.

 경제적으로도 올해의 일본은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거품경제의 반동으로 찾아든 불황이 전산업을 직격해 GNP 성장률이 6년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이때문에 보너스의 일부를 현물로 지급하는 일류 회사도 나타났다.

 표현부문에서 금상을 탄 ‘복합불황’도 바로 이 불황과 관련된 유행어이다. 이 말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교토대학 명예교수 미야자키 요시가츠의《복합불황》이란 책이 베스트 셀러로 등장한 여름 이후. 그전의 ‘헤이세이 불황’ ‘버블붕괴 불황’ ‘포스트버블불황’ 등을 압도하는 새로운 용어로 각광받고 있다.

 일본 금융가에 떠도는 유행어 중에는 ‘시치 고 산(7·5·3)’이란 말이 있다. 즉 이 복합불황을 벗어나는 데 부동산은 7년, 은행은 5년, 증권은 3년이 걸린다는 말이다. 말을 바꾸면 내년도 다사다난한 한 해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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