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동 박철언 금진호 적인가 동지인가
  • 대구·김재일 정치부 차장 ()
  • 승인 1992.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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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의 친인척 세 사람이 뛰고 있다. 흔히 ‘친인척 3인방’ 혹은 ‘로열 패밀리’로 불리는 朴哲彦 의원과 金復東·琴震鎬씨가 14대 국회 진출을 위해 표밭갈이에 여념이 없다. 김복동씨와 금진호씨는 대통령의 해금조처로 정치활동 규제가 풀려 각각 대구 동 갑구와 경북 영주·영풍에서 민자당 후보로 출마했다. 전국구로 13대 국회에 진출했던 박의원은 대구 수성 갑구에서 출마, 본격적인 직업 정치인의 길을 닦고 있다.

 김복동씨는 대통령 부인 김옥숙 여사의 오빠로 盧泰愚 대통령의 처남이고 금진호씨는 노대통령의 손아래 동서다. 박철언 의원은 김옥숙 여사의 고종사촌이다. 대통령은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세 사람에게 자문을 구한다. 대통령의 신임을 바탕으로 이들은 하나같이 6공화국의 실세로 통한다. 그러나 3인의 정치적 입장과 목표는 서로 다르다. 세 사람은 대통령 친인척이라는 같은 테두리에 속해 있으나 각각 다른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친인척 3인, 최다 득표·최고 득표율 노려
 박철언 의원은 상대방 없는 ‘섀도 복싱’에 열중하고 있다. 너무 센 상대이기 때문인지 아예 야당 후보가 나서지 않고 있다. 대구 만촌동 성임빌딩 사무실에서 당원교육을 끝내고 나온 박후보는 생기가 넘치는 표정이었다. “고향에서 많은 어른 선배 후배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는 데 보람을 느낀다. 즐겁기 때문에 피곤하지도 않다.” 박의원은 “기성 정치권이 국민에게 실망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하고 예의 ‘개혁정치’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가 내건 구호는 “수성의 내일, 한국의 내일을 박철언과 함께” “통일 시대의 새 일꾼 박철언”등으로 주로 그의 미래지향성과 북방외교를 통한 통일노력을 이미지화하고 있다. 그는 “당의 운영이 쇄신되고,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해 젊은 세력을 포용할 수 있어야 국민의 기대를 모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이기택 정주영 김동길씨 등을 포용하지 못한 당 지도부를 비판했다.

 박의원은 북방외교의 밀사로 활약하는 등 6공화국 초기부터 실세로 등장했다. 그는 3당 합당을 주도했을 뿐만 아니라 합당 후 김영삼 민자당 대표와의 심각한 권력투쟁의 결과로 90년 4월 정무장관직을 물러날 때까지 노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서 권력의 중앙에 자리했던 인물이다.

 대구 동 갑구에 출마한 김복동씨. 그의 지구당 사무실이 있는 신천4동 소재 내외빌딩에는 의당 걸려 있을 법한 현수막조차 눈에 띄지 않았다. 그는 ‘초호화판’ 창당대회 행사와 관련,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았다. 그는 보좌관을 통해 기자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도저히 언론과 만날 기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대회 참석자들에게 선물로 모자와 스카프를 돌리고 술을 대접한 혐의로 검찰에 입건돼 조사를 받고 있다. 창당대회에는 5천여명이 참가했다. 여기에는 박준규 국회의장, 이종찬 박철언 유수호 의원 등 약 30여명의 국회의원과 백선엽·소준열씨 등 예비역 장성 등이 참석해 김씨가 6공의 실세임을 입증했다. 식장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폐쇄회로 모니터가 설치됐고 분위기를 잡기 위해 꽹과리부대가 동원됐다. 이 지역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한 임대윤 후보는 국민당 창당대회 기획팀이 김씨의 창당대회를 맡았다고 귀띔했다.

 민자당 대구시지부의 한 간부는 이번 물의가 김씨의 세 과시욕과 참모들의 과잉충성 때문에 빚어졌다고 말한다. 그는 “선거 분위기가 달아오르면 여당에 불리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며 김씨의 경험미숙을 탓했다.

 김씨는 6공 출범과 더불어 대통령의 ‘친인척 배제’ 방침에 따라 정치권 진입을 포기했다. 그러나 김씨는 13대 국회의원 출마가 봉쇄된 이후에도 후계구도와 관련, 끊임없이 세인의 입에 오르내렸고 그만큼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경북 영주·영풍에서 출마한 금진호씨는 집중적인 당원교육을 하고 지역 유지들을 만나러 다니느라 분주하다. 지구당 사무실은 영주시 하망3동의 허름한 2층 거물에 있다. 건물 앞에는 그랜저 승용차 2대가 위풍당당하게 서 있어 낙후된 동네 모습과 사뭇 대조를 이룬다. 금진호씨는 “지구당 창당대회를 앞두고 일정이 너무 빡빡해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다”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그가 내건 선거 구호는 “왔다 큰 일꾼, 마음껏 부려보자” “낙후된 영주·영풍, 금진호와 함께”이다. 선거 전략의 초점을 지역발전에 맞추고 있다. 한 선거참모는 금씨의 노모가 아직 영주에 사는 등 지역연고가 확실한 만큼 금씨의 당선은 틀림없다고 말한다. 해보나 마나한 싸움이라는 것이다.

 금진호씨는 김복동씨와 함께 13대 국회진입이 봉쇄된 후 그동안 폭넓은 대인관계와 치밀한 인간관리로 정·관·재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그에게는 ‘상공부 대부’ ‘재계의 황제’라는 별칭이 붙어 있을 정도다.

 위에서 살펴본 친인척 세 사람은 6공의 실세답게 막강한 조직과 자금력을 이용해 바닥에서부터 표를 긁어모으고 있다. 대구·경북 지역의 선거 관계자들은 돌발사건이 없는 한 3인의 당선은 무난할 것으로 내다본다. “최다 득표를 한다고 국회의원 임기가 8년이 되느냐. 오히려 선거가 과열되지 않도록 무리하지 말라고 참모들에게 강조하고 있다”는 박의원의 말에도 불구하고 시도지부의 관계자들은 친인척 세 사람이 선거 후 각자의 정치적 입지 강화를 위해 최다 득표 내지는 최고 득표율을 겨냥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선거 관계자들의 관측대로라면 그들은 ‘친인척’호를 타고 무난히 14대 국회에 진출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정치적 입장과 야심은 서로 다르다. 정치 관측통들은 특히 김복동씨와 박철언 의원의 경우 자신들의 향후 위상을 소위‘대권’과 연관시키려는 욕망이 강한 것 같다고 말한다. 

 세 사람은 우선 후계구도에 관한 시각이 각각 다르다. 금진호씨가 차기 대통령후보 문제와 관련, 김영삼 민자당 대표와 긴밀한 공조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지난 연말과 올 연초 후계구도와 관련된 민자당 갈등 과정에서 박철언 의원과 김복동씨와는 달리 김대표를 지지하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금씨는 그 과정에서 노대통령과 김대표 사이의 충실한 중개인으로서 퇴임 후의 위상·권력배분·공천·당 운영 문제 등에 관해 두 사람이 솔직한 의견 조정을 하도록 중간 역할을 담당했다.

 지난 20일 오전 한국담배인삼공사 영주 제조창 강당에서 열린 지구당 개편대회에서 “민주화의 기수, 김영삼”이라고 쓰인 피켓과 “김영삼” 연호는 그의 ‘친김영삼’ 성향을 대변해 준다. 김대표는 “금위원장은 내가 오랫동안 존경과 사랑을 보내온 특별한 관계에 있는 분”이라고 금씨를 추겨세우고 “3당 통합 직후 내가 노대통령에게 금위원장의 정계진출을 건의했고 대통령도 이를 받아들였다”고 말해 금씨와의 각별한 관계를 강조했다. 김대표가 집권할 경우 금씨의 부총리 등용을 점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반면 박철언 의원은 ‘반김영삼’ 세력의 최선봉에 서 있다. 1월 초 민자당 갈등 과정에서도 그는 김대표로의 후보 확정 움직임에 대해 강력하게 제동을 걸었다. 그는 김대표와의 관계에 대해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 다만 중요한 정책과 노선을 두고 의견을 달리하는 경우 서로가 논쟁을 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3당 통합의 약속과 대의명분은 지켜져야 했었다. 통합이 시대적 과제 해결을 위한 구국적 차원의 결단이었지 특정인에게 특정 자리를 주기 위한 야합이 아니었다”며 김대표를 겨냥한 듯한 노골적이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대통령 자리에 도전할 의사가 있느냐 하는 물음에 대해 그는 “그 문제에 대해 한번도 스스로 이야기해본 적이 없다. 나 자신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뿐 특정 자리를 목표로 일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총선 후에 생각해볼 문제”라고 덧붙여 대권에의 집념을 포기하지 않은 듯한 뉘앙스를 짙게 풍긴다. 그러나 박의원이 정작 노리는 것은 차기가 아니라 그 다음일 것이라는 관측통들의 분석도 있다.

금씨는 親YS·박씨는 反YS·김씨는 중립
 금진호씨가 친김영삼, 박철언 의원이 반김영삼 입장으로 확연히 구분된다면 김복동씨는 김대표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언론에서 대통령후보 문제와 관련시켜 아무리 김대표에 대해 물어도 그는 명확한 대답을 하지 않는다. “능력이 되면 할 수 있는 것이지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된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는 원칙론 표명이 고작이다. 주위 사람들의 관측에 따르면 그는 선거 이후 정치의 전개 양상에 따라 스스로 대권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올 수도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총선 결과가 시원치 않으면 김대표의 당내 위상이 흔들릴 것이고, 김씨는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민자당 대구 서 갑지구당 조용목 사무국장은 “김씨가 아직 대통령에의 미련을 버리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이다”고 말한다.

 그가 내건 “용기와 결단의 지도자” “새시대를 여는 김복동” “21세기 신한국 7천만 겨레를 위해” 등의 구호는 대통령감으로서의 이미지를 은근히 부각시키는 것 같다. 그러나 대구시지부의 한 간부는 “노대통령이 김복동씨의 손을 들어준다면 그가 대통령후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절대로 그렇게는 안할 것이다”라고 단언해 정치환경 변화에 따른 김씨의 대통령후보 부상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러나 김씨가 김대표와 손잡을 가능성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김씨의 보좌역은 그가 김대표와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부담없이 만날 수 있는 사이”라고 말한다. 관측통들은 그의 지구당 창당대회에 민정계 관리자인 박태준 최고위원이나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터운 김종필 최고위원이 아닌 김대표가 참석한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김씨의 한 측근은 김씨 스스로 김영삼 대표의 내방을 원했다고 말한다. 지구당 창당대회에서 김대표는 “김복동 위원장은 민주주의에 대한 투철한 신념을 가진 소신있는 장군 출신”이라고 김씨를 극찬했다.

 한 소식통은 지난 연말 청와대 친인척 모임에서 김씨는 김대표로의 후보 확정을 반대한 것이 사실이나 그 이후 두 사람의 관계가 호전됐다고 말한다. 그는 김씨가 김대표와는 1년6개월 전에 이미 교감이 있었다고 전했다. 김대표·박준규 국회의장·김복동씨 세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박의장은 김대표에게 “원래 김씨가 대구 동구를 맡을 사람인데 노대통령의 친인척 배제 방침에 다라 내가 나왔다. 다음은 김씨가 맡을 차례다”라고 말했고 김대표는 미소로 응답했다는 것이다.

세 사람의 관계 “썩 좋지는 않은 편”
 친인척 세 사람은 이처럼 입장과 노선, 그리고 이해관계가 서로 다르다. 이에 따라 세사람의 관계 역시 썩 좋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박철언 의원과 김복동씨의 경우, 박의원이 전성기 때 두 사람간에 형성된 껄끄러운 감정이 해소되지 않은 것 같다. 박의원은 김씨와의 관계에 대해 “좋은 편이다. 나쁠 이유가 전혀 없다. 다만 김씨의 정치적 색깔이나 노선을 아직 판단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박의원의 한 보좌역은 “솔직히 말해 김씨가 무얼 했느냐. 대통령후보 운운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라고 혹평해 두 사람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음을 짐작케 했다. 한편 김씨의 한 보좌역은 “박의원이 김위원장을 무척 존경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가 원활하지 못하다고 보는 시각은 박의원이 처음부터 각광을 받은 데 비해 김위원장은 이제 정치를 시작하는 배경 때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들 세 사람에 대한 현지 여론은 어떤가. 대구와 영주 등 현지 사람들은 친인척 세 사람을 거물로 인식할 뿐만 아니라 그들에 대해 호기심과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들에 대한 반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왜 친인척 배제를 임기 끝까지 못하느냐”는 야당측의 공격과 “너희끼리 다 해먹어라”하는 일부 젊은층의 불만이 그것이다. 그러나 현지 여론의 주류는 “이제는 할 때가 됐다”는 쪽이다. 한 택시 운전사는 “대통령의 말마따나 능력있으면 나오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다. 민자당 대구 달서 갑지구당의 한 간부는 “친인척 3인에 대한 반감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다만 지구당 창당대회의 규모 등을 들어 다소 요란하다는 반응이 많다. 그럴수록 조용하게 치렀어야 했다”고 말한다.

총선 후 3인의 위상 어떻게 변할 것인가
 세 사람에 대한 대구지역의 민심은 이 지역에서 정치적 폭발성을 가진 정호용씨에 대한 동정 여론과 대칭되는 미묘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특히 김복동·금진호씨와 정호용씨는 묘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 6공 정부는 친인척 배제 방침에 따라 김씨와 금씨의 정계 진출을 막았기 때문에 5공 청산 과정에서 정씨를 정치적으로 거세할 수 있었는데, 두 사람의 정치적 해금에 따라 정씨의 출마를 막을 명분이 없어졌다. 정씨 역시 “친인척 배제라 해놓고 다 나오는 데 나라고 못 나올 이유가 있는가”라고 항변하고 있다.

 총선 후에는 권력의 핵을 이루고 있는 대구·경북 세력의 재편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공천 과정에서 활약한 김윤환 사무총장이 급부상해 TK세력의 구심점이 될 것으로 보는 관측이 유력하다. 여기에서 친인척 세 사람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정치적 입장 때문에 힘을 합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는 시각 또한 강하다.

 친인척 배제 방침은 통치권을 원활하게 행사하기 위한 노대통령의 포석이었다. 그러나 임기를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노대통령은 친인척에 대한 규제를 거둬들였다. 노대통령은 친인척에게 기회를 줄 뿐만 아니라 퇴임 이후를 보장하는 안전판 역할을 이들에게 기대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노대통령 퇴임 후 친인척 세 사람의 위상은 어떻게 변할까. 현재의 막강한 세력이 급격히 쇠락할지 각자가 홀로서기에 성공할지 아직 속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각각 부침이 다를 것으로 관측하는 사람이 많다. 권력의 향배에 따라 각자의 정치적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들은 대통령의 친인척이라는 같은 범주에 속해 있으나 공동운명체는 아닌 것이다. 세 사람의 정치적 위상은 향후 정치 전개 양상, 특히 누가 집권하느냐에 따라 달리 설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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