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큰 일’ 낼 것이다
  • 앙드레 퐁텐느 ()
  • 승인 1992.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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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 윌리엄 파프는 “1992년 미국은 강대국이라는 칭호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인들은 최근 사쿠라우치 요시오 일본중의원 의장으로부터 “미국 근로자들은 게으르고 무식하다. 그들의 나라는 일본의 하청업자다”라는 모욕적인 말을 들었다. “이같은 발언에 대해 우리는 분노하기보다는 두려워해야 했다. 왜냐하면 존경을 받지 못한다면 리더십도 잃게 되기 때문이다”라고 파프는 주장했다.

 이 미국 언론인의 말에 많은 유럽인들은 동감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언어·음악·텔레비전 시리즈·음식·의복문화가 점차 이 구대륙을 침략하고 있는데 대해 유럽의 어느 지도자도 일본 지도자와 같은 어투로 표현한 일이 없다. 심지어 철의 장막 뒤에 있던 동유럽에서조차 미국 이외의 어느 나라도 신뢰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일본에서는 이와 아주 다르다. 중의원 의장의 발언 이후 미야자와 기이치 총리는 차후에 애매모호하게 사과는 했다지만, 사견임을 전제로 미국 대학 졸업자들에 대해 “땀흘려 일하는 직업윤리가 부족하다. 그들의 동료시민도 재화를 생산하고 수년 동한 극히 저조해진 가치를 창조할 결심이 부족하다”고 비난했다. 환영만찬회 때 자기를 향해 토하며 쓰러진 조지 부시 대통령의 미국을 특별히 존경할 이유가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께다.

 미국 사람들은 걸프전 덕택으로 자기네 나라가 다시 세계 최강대국이 되었음을 확신하고 있다는 표현을 해왔는데 이제는 그 말을 받아들이기 어렵게 되었다. 걸프전 외에 소련의 붕괴는 많은 나라로 하여금 미국의 정치·경제적 가치를 답습하게 만들었다.

 그외에 또 있다. 고르바초프의 한 측근이 예언한 대로 이라크와 소련의 붕괴로 적이 없어진 미국은 여러 면에서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 독일·석유왕국·일본이 빌려준 13억달러가 없었다면 미국은 걸프전 경비를 충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일본이 없었다면 미국인들은 점차 커져만 가는 재정적자를 메우기 힘들었을 것이다. <르 몽드>는 최근 한 일본인이 ‘엉클 샘’의 모자에 그려진 미국 국기의 푸른색 선을 떠오르는 태양(일장기)의 붉은 선으로 하나씩 바꾸는 팡쇼씨의 삽화를 소개한 적이 있다.

 ‘미국의 꿈’을 상징하는 뉴욕의 록펠러센터와 컬럼비아 영화사에도 주저하지 않고 투자하는 것에서 보듯이 미국 경제에 대한 일본의 투자 비중이 커지는 예는 얼마든지 들 수 있다. 보잉기가 온통 일제 부품으로 제작된다는 사실, 91년 하해 동안 미국에서 팔린 자동차의 15%가 미국땅에 설립된 일본 회사에서 생산된 사실은 제외한다 치더라도 말이다. 미국인들은 이같은 사실을 시인하고 싶지 않을지 모르지만 두 나라 사이의 무역불균형은 91년에만 38억달러에 이르렀다. 더 많은 미국 제품을 수입해달라는 조지 부시 대통령의 요청을 도쿄정부가 충분히 받아들였다고 말할 수는 없다. 드 골 장군은 “강대국 클럽에서 나는 회원들을 만난 것이 아니라 지독한 이기주의만을 만났을 뿐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일본은 이같은 이기주의의 지독한 예로 꼽힐 것이다.

일본의 엄포 “세계의 은행역할 포기할 수도 있다”
 그런데 미국 사람들은 모든 나라의 사랑을 받고 싶어한다. 미국인들은 스스로에 대한 반성보다는-물론 미국 사람들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그들이 고통받고 있는 문제에 대한 책임자, 즉 그들이 경기침체니 실업이니 하고 부르는 악에 대한 책임자를 찾고 있다. ‘재팬 베이싱’, 즉 일본타도를 외치는 소리는 11월 선거가 다가옴에 따라 갈수록 커지고 있고 이에 대한 일본인들의 반응은 점차 격해지고 있다.

 일본인들의 격한 반응은 미국인들을 회화적으로 표현하는 언론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2월 초순 뉴욕에서 열린 유엔안보리 이사국 정상회담은 일본이나 독일과 같은 강대국이 비토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돼 있는 현행 유엔체제를 일본 대표단이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자리가 되고 말았다. 일본은 몇년 안에 이같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앞으로 자유세계의 은행역할을 더이상 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기도 했다.

 분명 일본의 변화는 그 속도나 과감성에 있어 러시아연방이나 동유럽, 남아프리카의 변화와는 다르다. 일본 국민만큼 전통에 집착하는 국민도 드물다. 그러나 이본은 점점 공개적으로 최대의 우방인 미국이 발목을 잡아당기고 있으며 일본의 막강한 경제력이 정치력으로 변하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 성장을 향한 강요된 행진을 추구하는 집단적 야심, 이 이외의 다른 용어로 일본의 야심을 정의할 말이 없다. 그처럼 큰 힘과 그같은 잠재적 패권을 지닌 일본이 언젠가 이를 소진하거나 아니면 남용할 곳을 찾을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면 오히려 놀라운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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