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개혁,검찰손에 달렸다
  • 편집국 ()
  • 승인 1996.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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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소극적 총선 수사

 
70년대 한국 국민들에게 가장 큰 사랑을 받았던 스포츠는 무어니 무어니 해도 축구였다. 그 무렵 축구 해설자의 입에서 제일 자주 터져나온 말은 “아, 또 뜨고 마는군요. 어림없는 볼로 끝났습니다.”라는 말일 것이다.

 우리는 요즈음 4·11선거 사범 수사과정을 지켜보면서 ,과거 한국 축구가 뒷심이 부족했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손에 땀을 쥐고 마음을 졸이며 지켜보던 관중을 맥풀어지게 만들던 그 고질 말이다.

 이번 4·11총선의 핵심화두는 누가뭐라해도 공명선거, 돈 안쓰는 깨끗한 선거였다. 정치 선진화를 이루려면 금권 선거·부패 선거의 문턱을 반드시 넘어야 한다는 대명제에 누구나 서슴지 않고 동의했다. 그것은 하나의 엄숙한 사회적 요청이었고, 분명한 국민적 합의 였다. 선거를 둘러싼 주변 환경 또한 어느때보다도 그러한 합의를 실천할 만했다.

 우선 선거법 자체가 달랐다. 엄격하기로 이름난 영국의 부정부패방지법을 본따서 만들었다는 통합선거법이 총선 사상 처음으로 적용되었다. 통합선거법이 ‘당사자 엄벌주의’는 물론이고, 선거 사무장이나 선거 사무원이 잘못을 저질러 유죄 판결을 받더라도 당선이 무효되는 “연좌제”까지 택한터라, 지켜보는 관중의 기대는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검찰은 지난 2월 사정기관장 회의에서 선거 사정이야말로 올 사정 업무의 최대역점 과제임을 선언했다.

 하지만 게임 후반에 갈수록 관중은 어쩐지 맥이 풀리는 느낌을 받는 것 같다. 물론 선거법 위반 사범 공소 시효가 끝나는 10월11일까지는 사정의 칼날을 언제든지 휘두를 수 있으므로 ,관전을 포기하기는 이르다.

 그러나 인내심이 바다났거나 게임의 진행을 통할력 있게 내다본 사람들은 벌써 자리를 떴거나, 뜰 준비를 한다. 이번에도 한국팀이 골 넣기(불법선거엄단)는 틀렸다는, 불평 섞인 목소리가 관중석 여기저기서 터져나온다. 뒷심이 없기로는 뛰는 선수(검찰)나 관중(국민)이나 마찬가지다.

 잔뜩 기대를 가졌던 관중이 이렇게 일찌감치 관정을 포기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 검찰이 과연 엄정하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철저한 수사를 진핼할 의지를 갖고 있는냐라는, 지극히 본질적인 의문 때문이다. 이런 의문이 나오게 된 계기는 크게 두 가지다. 그 하나는 “정치권과 전쟁하는 각오로 조사했다”는 중앙선관위의 선거 비용실사 결과가 검찰로 넘어간뒤 꽤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아무 소식이 없음이다.

부족한 것은 인력인가 수사 의지인가

 또 하나는 여권의 거물 당성자에 대한 검찰의 미온적인 수사 태도다. 총선 직후에 불거져나온 김석원 의원(대구 달성)의 사과상자(전씨의 비자금 61억원을숨긴 사과상자와, 주간지와 선거소품을 담았다는 또다른 사과상자)에 대한 검찰의 수사진행은 답답하다 못해 공분을 자초할 지경이다. 검찰은 정기국회를 코앞에 둔 이달 초에야 비로소 김의원은 뒤늦게 국회 회기를 이유로 검찰 소환에 응하지 않았다.

 더욱 납득하기 힘든 것은 이명박 의원(서울종로)에 대한 검찰 수사다. 선거전에 직접 뛰어들었던 측근이 명백한 증거 자료를 제시했고, 이의원이 유급자원봉사자를 활용했다는 부분적인 범법 사실은 언론에 의해 충분히 입증 되었다. 그런데도 검찰은 수사력이 달린다는 이유로 “한총현 수사가 끝나는 17일 이후에 수사에 착수하겠다”고 발혀 지켜보는 이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검찰 인력이 모자라는 것인가,검찰의 수사의지가 모자라는 것인가.

 검찰은 이제라도 ‘선거 사정이야말로 올 사정의 핵심“이라고 공언했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모든 정파적 이해 관계와 정치적 고려에서 벗어나서,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선거 사범 수사에 임해야 한다. 나팔소리가 요란했던 이번 선거 사정마저 용두사미로 끝나거나 형평성 논란에 휘말린다면, 건거개혁과 정치 개혁은 끝끝내 이루기 힘들 것이다. 그보다는 황하의 강물이 맑아지기를 기다리는 편이 더 빠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검찰이 막바지 뚝심을 발휘하기를 손에 땀을 쥐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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