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북한 정치범 수용소’ 기사 논란 /‘충격 보도’, 오보인가 사실인가
  • 남문희 기자 ()
  • 승인 1997.07.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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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보자 말 인용 “틀림없다” 주장에 KBS · 탈북자 등 “수재민 난민촌 가능성 높다”

<동아일보>가 지난주 세 차례에 걸쳐 보도한 ‘북한 정치범 수용소’ 관련 기사가 사실이라면, 북한은 제정 러시아나 스탈린 시대보다 못한 인권 유린 국가로 지탄 받아 마땅하다. 6월19일자 충격적인 보도에 접한 김학준 인천대 총장은 20일자 기고문에서 ‘감옥의 수준이 국가의 수준과 정군의 수준을 결정한다’는 톨스토이의 ‘감옥 결정론’까지 인용하면서 이같이 규탄했다. 또한 20일자 <동아일보> 보도에 의하면, 정부 당국이나 정치권이 이 문제를 국제 기구에 상정하기 위해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국제 사회에까지 북한 정치범 수용소 파문이 확대될 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만일 문제의 현장이 <동아일보> 보도처럼 정치범 수용소가 아니고 다른 엉뚱한 시설이라면, 사태의 양상은 매우 달라진다. 체면이 손상되는 쪽은 북한이 아니라 국내 유력 언론인 <동아일보>와 거기에 등장한 ‘저명한 정치학자’ 및 당국과 정치권이다.

<동아> · KBS 제보자는 동일인
  공교롭게도 지난주 <동아일보>의 일련의 보도는 한국방송공사 (KBS)의 강력한 도전에 직면한 바있다. ‘북한의 정치범들은 막사나 수용소에 살고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짐승이나 원시인처럼 토굴을 파고 혈거 생활을 하고 있다'는 19일자 <동아일보>의 충격적인 보도가 나간 당일 KBS는 충격적인 보도가 나간 당일 KBS는 <9시 뉴스>에서, 그 현장은 정치범 수용소가 아니라 ’수재민 난민촌‘이라고 못박아 보도한 것이다. <동아일보>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제보자로부터 거의 동시에 (KBS는 먼저 받았다고 주장한다) 현장 비디오 테이프를 제공받은 것으로 알려진 KBS는, 이날 오전의 <동아일보> 보도를 의식한 듯, 탈북자인 윤 용씨의 증언을 인용해 문제의 현장이 정치범 수용소일 가능성을 강력하게 부인했다.

  윤씨는 현장 테이프에 나타난 대학생 노력 동원 장면을 지적하면서 “대학생이 정치범 수용소에 노력 동원된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라며 <동아일보>의 보도 내용을 일축했다.

  KBS는 또 이 날 보도에서, <동아일보>의 자료 확인상의 실수(?)를 정확하게 지적하기도 했다. 이 날짜 <동아일보> 3면에는 ‘방치된 주검’이라는 제목의 사진이 등장하는데, 이 사진이야말로 정치범 수용소의 처참한 실상을 적나라하게 상징하는 사진이었던 것이다(13쪽 왼쪽 사진). <동아일보>는 이 사진에 대해 ‘정치범 수용소내 토굴 주변에 버려져 있는 시체. 굶주림에 지쳐 쓰러져 죽은 여성 수용자로 보인다. 아무도 이 시체에 관심을 갖지 않은 채 먹을 것을 찾아 수용소내 갯벌만 돌아다니고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KBS의 동화상 필름에 의하면, 이 사진은 주검 사진이 아니라 할머니로 추정되는 여인이 손주를 재우기 위해 토닥이는 살아 있는 사람의 사진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정치범 수용소의 참혹한 현실을 압축해 보여준 이 사진이 주검 사진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을 잘못 본 것이었다면, <동아일보> 첫날 기사의 많은 부분이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KBS의 ‘예상치 않은 공격’에 <동아일보>는 21일자 상자 기사에서 미디오 테이프 제보자의 말을 다시 인용해 문제의 현장은 정치범 수용소가 틀림없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 제보자는 ‘사업차 자동차를 타고 남포 인근을 지나다가 안내인이 정치범 수용소라고 말한 현장을 비디오 테이프에 몰래 담았다’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날짜 <동아일보> 기사는 분명 19일자 첫 기사보다는 강도가 훨씬 약해 보였다. 즉 문제의 시설이 정치범에 대한 항구적 수용시설이 아니라 강제 노역에 동원된 정치범들의 임시 움막일 가능성을 인정하는 등 후퇴한 것이다.

  똑같은 테이프를 놓고 양대 언론이 이처럼 상반된 해석을 한 것은, 제보자의 증언에 무게를 둘 것인가, 아니면 관계 당국 및 전문가의 판단에 무게를 둘 것인가 하는 차이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동아일보> 편집국 간부는 이와 관련해 “제보자가 북한을 50여 차례 방문했고 믿을 만한 지위의 인물이라고 판단해, 그의 증언을 토대로 기사를 작성했다”라고 맑혔다. 또 이 간부는 “우리의 최종 입장은 ‘틀립없는 정치범 수용소’라는 21일자 상자 기사 내용과 같다.

  KBS도 22일 <일욜 스페셜>에서는 약간 후퇴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KBS 담당 PD는 ”우리도 제보자로부터 정치범 수용소라는 설명을 들었으나, 그가 확실한 근거보다는 소문에 의존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제보자의 증언보다는 관계 당국의 견해를 존중했다“라고 밝혔다.

  KBS측의 주장대로 현재 관계 당국이나 북한 전문가 및 탈북자들의 입당은 대체로 이 시설이 정치범 수용소라는 <동아일보> 보도 내용에 대해 부정적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의 고위 당국자는 “정치범 수용소라고 보기 어렵다. 한시적인 이재민 수용 시설, 또는 바다에서 채취 작업을 하기 위한 한시적 움막일 가능성이 높다”라고 밝혔다. 또한 정보기관의 실무 책임자 역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도 관심을 가지고 추적 중이나, 문제의 현장은 정치범 수용소와는 무관하다는 게 우리의 결론이다”라고 밝혔다.

  관계 당국이나 전문가들은 북한 체제에 대한 상식에서부터 현장 테이프에 대한 정밀한 분석 자료 등 광범위한 근거를 가지고 문제의 현장이 정치범 수용소일 가능성을 일축한다. 우선 상식으로 볼 때, 평양과 더불어 ‘절대 관리 지역’인 남포 인근, 그것도 도망하기 쉬운 해안 근처에 둔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는 지적이다.

  제보자가 문제의 현장을 남포 인근 지역이라고 진술한 것을 토대로 남포 출신 탈북자들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그곳은 남포와 온천이라는 지역 중간에 위치한 해안 마을이라고 한다. 이곳은 돌광산이 있을 정도로 돌이 많은 지역으로, 문제의 현장 뒤로 남포-온천을 잇는 철로가 있고, 또 멀리 남포항 부근의 부두 시설과 대동강 하구 모습이 화면의 배경 부분에 잡힌다고 한다. 반면 외부인의 접근을 통제하는 철조망이나 경비 초소 등은 보이지 않는다.

북한 보도의 ‘검증’ 중요성 입증
  또한 문제의 시설을 정치범 수용소라 한다면 외부인이 어떻게 그 시설을 촬영할 수 있었는가 하는 접도 의문이다.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는 국내 정보기관조차 주소지만 대충 알 뿐 아직 정확한 현장 사진하나 입수하고 있지 못할 정도로 접근이 통제되어 있다.

  이밖에도 남포 출신 탈북자들은 제보자의 증언에 대해 여러 가지 의문을 제기한다. 제보자는 ‘자동차 안에서 감시의 눈을 피해 촬영했다’고 했는데, 화면의 앵글이나 촬영 시간 등을 고려할 때 수긍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현장 주변을 달리는 기차의 무개화차에서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비교적 오랜 시간 찍은 화면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현장 화면 중 일부에 가드레일처럼 보이는 물체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무개화차의 안쪽 난간이라는 것이다(위 오른쪽 사진).

  촬영 시점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올해가 아닌 지난해 9월께 촬영한 화면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한다. 마을 뒤쪽에 있는 수목의 색깔이나 언뜻 보이는 옥수수 그루터기, 그리고 현장 이곳저곳의 수해 흔적 등이 그 근거로 제시된다. 또 한 전문가는 비닐이 다양하게 사용된 점을 강력한 근거로 제시하기도 했다. 지난해까지는 이것이 가능했지만 올해는 농사용 비닐도 부족해 농업용 이외에는 절대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문제의 현장을 지난해 이 지역이 집중적인 수해 지역이었다는 점과도 앞뒤가 맞는다고 지적한다. 즉 당시 수해를 당한 인근 해안 마을 주민들의 일시적인 거류지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물론 현단계에서는 당국이나 전문가들의 주장 역시 하나의 추정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제보자에게만 의존한 북한 관련 기사가 빠질 수 있는 함정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전문가 집단의 확인 정차는 반드시 필요하다. 문제가 되고 있는 <동아일보> · KBS의 보도에서 바닷가의 처참한 사진이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인가 아니면 수재민의 움막인가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따라서 이번 사태는 언론이 북한을 보도하는 데 검증 절차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입증하는 귀중한 사례가 될 것이다.
南文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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