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생존 외면한 '지진 논쟁'
  • 김은남 기자 ()
  • 승인 1997.07.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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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자원 연구소·이기화 교수, 양산 단층의 활성 여부 놓고 14년간 '티격태격'

그날 과학자들은 들떠 보였다. 지진학·지질학·측지학·내진공학, 지진과 관련된 여러 학문 분야에서 제각기 성취를 이룬 전문가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지난 5월 30일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산하 과학기술정책연구소(서울 중구 흥인동)에서 열린 공청회 풍경이다. '순수 지진 연구와 공학 기술의 유기적·체계적 결합을 위한 역사적인 첫걸음'이라는 주최측(과학기술처)의 설명을 들으며 참석자들은 기대에 부풀었다. 이른바'지진 재해 대응 기술 기획'이라는, 8년(1997~2005년)에 걸쳐 4백 50억여원을 쏟아부을 대형 프로젝트는 이렇게 출발했다.

그러나 이같은 기획은 한 달도 못되어 위기를 맞았다. 6월26일 새벽(3시50분14초)영남 지역을 뒤흔든 지진이 계기가 되었다. 올해 들어 발생한 지진 가운데 가장 규모(4.3)가 컸던 이 지진은 건물에는 거의 해를 입히지 않았지만 프로젝트 참가자 사이에 심각한 균열을 일으켰다.

문제의 핵심은 진앙지 추정이었다. 1주일 사이에 진앙지를 세 차례나 수정 발표한 기상청의 공신력은 땅에 떨어졌다. 처음 발표한 지점과 2백㎞가 넘게 차이가 난 진앙지는 '지진 관측 장비가 낡은 아날로그 식이다 보니 생긴 오차'라는 기상청의 변명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아날로그 지진계가 디지털 지진께보다 정밀성이 떨어진다고는 하지만 오차 범위응 대개 5㎞ 안팎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말이다. 더 치명적인 잘못은 한국자원연수소의 발표(경주 남동쪽 6㎞ 지점)가 있은 뒤에야 진앙지를 최종 수정한 점이었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이번 사건은 해석상의 단순 착오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그러나 이 같은 분석은 통하지 않았다. 언론들은 일제히 '기상청이 일부러 진앙지를 은폐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의심이 간다며 물고 늘어졌다. 원인은 한 가지 , 이번 지진의 진앙지가 월성원자력발전소와 인접한 지역 북서쪽 19㎞)이었기 때문이다.

양산 단층, 대형 지진의 절반 이상 일어난 지역
이번 사건은 한국 지진 연구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한국에서 지진 연구가 시작 된 것은 1905년 인천에 최초로 지진계가 설치되면서부터이다. 이 해를 기점으로 지진 연구는 '역사 지진 자료'에서 '계기 지진 자료'로 대상을 바꾸었다. 곧 <삼국사기><고려사><조선왕조실록>을 조사하는데서 나아가 지진계로 지진을 관측하고 연구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광복 이전까지 이 같은 연구는 조선총독부 관상대가 주도했다. 그 목적은 동북아 일대의 광범한 지진 데이터를 수집하는데 있었다. 건국 이후 지진 연구 또한 일정한 목적을 갖고 출발했다. 한국자원연구소가 펴낸 <지진 연구>에 따르면 '1970년대 원전 부지의 지진 안전성 확보를 위해 부지 별로 지진 위험도를 검토하기 시작하면서 부터'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에 따른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장 큰 부작용은 경상 분지가 지진에 안전한지를 둘러싸고 15년 가까이 되풀이해 온 논쟁이다. 영남 일대를 지질학적으로 일컫는 경상 분지는 고리·월성 원전 뿐 아니라 주요 산업 시설이 밀집한 지역이다. 이제까지 원전 사업자인 한전과 이를 허가한 과기처·통산부의 공식 입장은 이 지역을 지진 위험 지대로 볼 어떤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만 이기화 교수(서울대·지질학)가 경상 분지에 위치한 양산 단층이 활성 단층이라는 주장을 제기한 83년 이래 잡음이 끊이지 않으므로 정밀 조사를 통해 진실을 규명하겠다는 식이었다. 활성 단층이란 가까운 과거(수만 년 혹은 수십만 년 이내)에 움직인 흔적이 있는 단층을 운동이 끝나지 않았음을 의미하며, 단층이 운동을 다시 시작할 때 지진이 발생한다.

그러나 이같은 공식 입장과 달리 통산부는 내부적으로 양산 단층이 활성 단층인지를 일찍부터 주목하고 있었다. 82년 한국자원연구소에 양산 단층연구 용역을 주었던 것이 대표적인 증거이다. 당시 연구에 참여했던 한학자는 '80년대 들어 랜드 새트 위성(세계 최초의 자원 탐사 위성)이 찍은 한반도 사진을 받아본 뒤 양산 단층의 활동성 여부에 대해 논란이 시작됐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위성 사진에 찍힌 약 1백70㎞ 길이 양산 단층은 거대하고도 선명했다.

이에 따라 한국자원연구소는 단주기 지진계를 들여다 경상분지에 임시 관측망을 구성했다. 지진계는 휴대용아날로그 기록 방식이어서 사람이 직접 배터리나 기록지를 갈아야 했으므로, 1년에 한두 달 현지 조사를 벌인 것이 고작이었다고 한국자원연구소 전명순 박사(지진학)는 회고했다. 양산 단층이 활성단층이라는 이기화 교수의 주장은 이때 측정한 지진 자료를 토대로 하여 나온 것이다. 그러나 전박사는 당시 관측망 배치나 운영이 엉성했던 점을 들어 이교수가 인용한 자료 자체를 신뢰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양산 단층에 대한 연구는 80년대에 띄엄띄엄 이어졌다. 91~92년 한국자원연구소가 일본과 공동으로 진행한 '포세이돈 프로젝트'에서도 양산 단층은 주요 조사 대상이었다. 이에 따라 한전은 95~98년 3년 일정으로 8억 3천만원을 들여 양산 단층 활동성 조사를 수행하고 있다.

양산 단층에 대한 연구가 지속된 이유는 정부 보고서에 잘 나타나 있다(<지진 연구>92~96년, 한국자원연구소). 무엇보다 양산 단층은 역사에 기록된 지진 가운데 진도 8이 넘는 대형 지진의 절반 이상이 집중적으로 일어난 지역이며, 월서원전은 양산 단층이 비활성이라는 전제 아래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진도 8은 건물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며 굴뚝이다 탑이 무너지는 정도의 지진을 가리킨가(흔히 지진을 리히터 지진께로 잰 '규모'와 사람이 느끼는 '진도'로 표시하는데, 지진계가 없었던 과거의 지진은 진도로 표시한다).

정부 10년 조사하고도 결론 못 내려
문제는 조사를 시작한지 10년이 넘도록 뚜렷한 결론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기화 교수는 이것이 정부와 국책 연구기관의 무책임한 태도에서 말미암았다고 비판했다. 원전 등 이미 벌여놓은 국책 사업 때문에 애초의 잘못을 인정하고 시정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교수야말로 단층 자체의 물리적 특성이나 변형 과정에 대한 면밀한 조사없이 지진 자료에 의존해 무책임한 주장을 일삼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에 이기화 교수는 지난 5월 일본의 활성 단층 전문가인 오카다 교수(교토대·지질학)등과 함께 울산시 삼남면 인근 세 군데에서 활성 단층임을 입증할 만한 뚜렷한 지형·지질학적 증거들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국자원연구소 최위찬 소장은 이것이 현지 조사 결과일 뿐 아직 활성 단층 여부를 판단하는데 필수인 절대연령 측정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이므로 어떤 결론도 내릴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럼에도 의문은 남는다. 95년 굴업도 핵폐기장 예정 부지 인근의 해저 단층이 활성 단층으로 판명 나는데 걸린 시간은 겨우 6개월이었다. '퇴적층이 비교적 온전히 보존되어 있어 활성 단층 여부를 쉽게 식별할 수 있는 바다 밑과는 사정이 다르다'는 것이 최위찬 박사의 설명이지만, '양산 단층 조사도 진작부터 사실을 밝히겠다는 의지를 갖고 덤볐으면 5년 안에 충분히 끝났을 것'이라는 한 조사 참가자의 말은 의미 심장하다.

'잘못 끼운 첫 단추'가 연구 가로막아
양산 단층 논쟁은 오늘날 지진 연구의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어 있다. 95년부터 경상 분지 일대에 첨단 디지털 관측망을 운영해 온 한국자원연구소는 2년간 관측한 결과 월성 지역에 지진이 집중 발생하고 있으며, 월성 쪽으로 갈수록 진양의 심도가 점점 깊어지는 양상을 보인다고 복서에서 밝혔다(49쪽 그림 참조). 한 예로 지난해 발생한 지진 55회 가운데 (규모 3 이상) 3분의 1은 월성 원전으로부터 반경 20㎞ 안에서 일어났다. 이와 관련해 김성균 교수(전남대·지질학)는 양산 단층보다 월성에 더 인접한 울산 단층이 활성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실제로 앞서의 보고서는 '양산 단층 선성에 뚜렷한 지진 발생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히고 있다.

추가령 단층대나 옥천 단층대·광주 단층대가 양산 단층 못지 않게 위험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 단층대들은 모두 학계가 활성 단층 가능 지역으로 분류하고 있다. 옥천 단층대은 지난해 12월 13일 발생한 규모 4.5의 영월 지진과 연관되어 있고, 광주 단층대에는 전남 영광 원전이 놓여 있다. 수도 서울을 관통하는 추가령 단층대의 경우 역사적인 지진 다발 지역임에도 지난 2백여 년간 지진 발생이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그간 지진 에너지가 축적되어 있을 경우 대규모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오른쪽 딸린 기사 참조).

그러나 이 지역들에 대한 지진 연구는 한치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제일 지진이 빈발하는 지역에 원전을 세웠다는 '잘못 끼운 첫 단추'가 한민족의 생존이 걸린 기초적인 과학 연구 발전마저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金恩男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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