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권리장전 유엔서 만들자”
  • 워싱턴 · 이석열 특파원 ()
  • 승인 1992.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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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운동가 장 미셀 쿠스토

 텔레비전 프로그램 <자크 쿠스토의 바다 밑 세계>는 한국 시청자에게도 친근한 해양탐사 영화다. 30년 전 20대 청년으로 아버지 자크-이브 쿠스도(82)가 만들던 이 영화에 뛰어들어 뒷바라지를 시작한 장 미쉘 쿠스토는 뉴욕에 본부를 둔 쿠스토협회를 창설해 이끌어가는 ‘쿠스토왕국의 제왕’이 됐다.

 올해 취항 50돌을 맞은 탐사선 칼립소호와 바람의 힘으로 가는 알시온호를 주축으로 소형 헬리콥터 1대와 ‘바다 벼룩’으로 불리는 소형 잠수함 3척을 가지고 바다 속을 살피는 쿠스토협회는 주로 미국과 프랑스인 회원 35만6천명이 내는 회비로 살림을 꾸려가고 있다.

 73년 창립된 쿠스토협회는 바다를 대상으로 한 각종 조사결과를 엮은 책 40여권을 낸 것을 비롯해 기록영화 8편,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75편을 만들어 방영했다.

 지금 쿠스토협회가 심혈을 기울여 추진하는 사업은 ‘다음 세대를 위한 권리장전’ 운동으로 후손에게 살기 좋은 지구를 물려주자는 것이다. 인권선언처럼 유엔헌장에 이 권리장전을 집어넣고 이를 실천하도록 여러 나라 사람들이 진정서에 서명할 것을 쿠스토협회는 권유하고 있다. 현재 2백50만명이 서명했는데 한국 사람들의 참여도 바라고 있다.

 장 미쉘 쿠스토와의 회견은 다뉴브강 탐사가 진행중에 있고 앞으로 메콩강 조사를 계획하고 있는 쿠스토협회의 사업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주미 프랑스 대사관이 마련한 한 모임에서 1차로 이루어진 후 다음 예약장소인 하와이로 떠나기 위해 비행기 시간에 맞춰 호텔을 떠나 공항으로 가는 택시 안까지 연장되어야 했다.

 <시사저널>이 국내 독점으로 개제하고 있는 ‘쿠스토 환경칼럼’은 이 협회가 지구환경보호 운동의 일환으로 작성하는 것이다.

이번 미국방문의 목적부터 알고 싶습니다.
 나는 미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물론 프랑스 국적을 갖고 있지요. 어젯밤 워싱턴의 프랑스 대사관저에서 나를 만났을 때 보았듯이 기금을 모으러 다닙니다. 지난 23년 동안 미국에서 쿠스토협회를 만들어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쿠스토협회가 펼치는 사업을 소개해주십시오.
 지금까지 우리가 해온 일 외에도 올해에는 몇가지 의욕적인 일을 할 계획입니다. 우선 4월부터 메콩강 탐사작업을 시작합니다. 베트남 캄보디아 미얀마 라오스 태국 중국이 관련돼 있는 메콩강 탐사에는 올해로 취항 50주년을 맞는 탐색선 칼립소호가 동원됩니다. 약 6개월 걸릴 큰 작업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이미 착수한 다뉴브강 조사가 있습니다. 유럽 8개국에 걸쳐 있는 다뉴브강 탐사는 두가지 점에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하나는 강물 유기체 내의 화학물질과 중금속류의 축적상황인데, 강에서 홍합을 잡아 조사합니다. 또 하나는 강을 따라 주변을 공중조사하는 것인데, 방사성 물질이 어디에 집중돼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이번 탐사에서 가장 중요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방사능환자가 나왔다는 이 부근 여러 병원의 보고를 바탕으로 이를 추진중입니다. 오랫동안 소련군대가 있다가 떠난 지역에서 주로 이런 문제가 생기고 있습니다. 모든 것 다 제쳐두고 ‘다음 세대를 위한 권리장전’운동에 가장 큰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 사업이 제일 큰 사업입니다. 이 운동을 통해 90년대가 큰 열매를 맺는 시기가 되도록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다음 세대를 위한 권리장전’ 운동이란 무엇입니까?
 마치 유엔이 헌장으로 인권선언을 채택했듯이 다음 세대가 누릴 권리를 유엔헌장에 따로 집어넣자는 것이 바로 이 운동입니다. 우리는 내년 10월 유엔 총회에서 이 결의안이 채택될 수 있도록 여러 나라에서 서명운동을 벌이는 것을 비롯해 모든 준비를 다하고 있습니다.

왜 이같은 운동을 벌이게 됐습니까?
 이것은 환경문제와 직결된 것으로 아직 태어나지 않은 다음 세대에 살기 좋은 환경을 물려주자는 운동입니다. 우리 후손이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것과 같은 삶의 질을 보장받도록 지금 우리가 나서서 준비를 해두자는 것이지요. 우리는 흥청망청 모든 것을 다 써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나쁜 버릇이 있습니다. 누가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 생각조차 하지 않고 낭비를 일삼고 있습니다. 나라마다 쌓여 있는 빚더미를 보십시오. 마치 외상으로 물건을 가져다 잔치하는 것과 다를 게 없지요. 자손들 몫까지 다 써버려서야 되겠습니까. 우리 자손들은 우리 못지않게 삶을 즐길 권리가 있습니다. 그들의 그런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무엇인가 일을 해야 합니다. 나는 지금이야말로 온 인류가 한 목소리로 “우리 자손들도 잘 살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고 외칠 때라고 믿습니다.

지금까지 몇 명으로부터 서명을 받았습니까?
 약 2백50만명이 서명했습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서명운동은 주로 남미 여러 나라에 파급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더욱 많은 사람들이 적극 참여해 여론의 힘이 더욱 커지기를 바랍니다. 이런 과정에서 먼저 각국 정부나 기업체들이 생각을 고치게 되고 환경문제에 대한 각성이 차츰 커진 것도 계산에 넣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매우 성공적입니다.

환경보호에 대한 유엔의 역할을 크게 기대합니까?
 유엔이 어떤 방침을 세워 이를 앞장서서 지켜나가도록 힘쓴다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지요. 과거와는 달리 유엔이 환경문제에 좀더 관심을 두는 것은 다행한 일입니다. 그러나 유엔이 주관하는 리오데자네이로에서의 환경회의 같은 것은 얼핏 겉만 번지르르한 실속없는 모임 같은 감이 듭니다.

쿠스토협회의 일년 예산은 얼마나 됩니까?
 주로 미국과 프랑스에서 회비로 걷히는 2천8백만달러 정도를 갖고 일합니다.

그 액수로 그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까?
 돈을 쓰자면 한이 없지만 우리는 많은 자원봉사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일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아버지 경우만 해도 올해 82세지만 하루 12시간씩 쉴 새 없이 일합니다. 우리가 전화만 걸면 아무 때고 나와서 일을 거들어주는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여기저기에 있습니다. 예산 2천8백만달러는 주로 교육용 텔레비전필름 만들기, 탐색선 칼립소와 알시온을 유지하고 선원들에게 급료를 주는 것 등 고정비용에 쓰입니다. 산을 움직이는 기적을 낳는 일 치고는 돈이 아주 적게 듭니다.

자원봉사자 말고 정식 직원 등 급료를 받는 사람은 몇이나 됩니까?
 정식으로 월급을 받는 직원은 모두 1백50명입니다.

쿠스토협회 회원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아시아에는 몇 명의 회원이 있습니까?
 쿠스토협회 미국인 회원수는 약 25만6천명입니다. 이들이 내는 회비로 살림을 꾸려나가고 있습니다. 프랑스에도 비슷한 회원제가 있습니다. 벨기에 멕시코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도 회원은 있습니다만 극소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일본에도 몇 명 있지요. 아시아 여러 나라의 회원을 확보하는 일을 궁리하고 있는데, 언어가 통하지 않는 등 생각보다 어려움이 많습니다.

아시아 회원 확보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밝혀주십시오.
 우리는 이미 일본에서 회원확보를 위한 조사를 해봤습니다. 미국처럼 간단하지는 않고 모든 것이 전혀 생소해 어떻게 해야 할지 연구하고 있습니다.

쿠스토라는 이름은 해양탐색의 선구자, 또는 바다를 보호하는 운동의 대변인으로 통합니다. 왜 바다가 그렇게 중요합니까?
 바다야말로 우리 생존과 직결돼 있습니다. 몸이 없다면 인간은 잠시도 살 수 없지 않습니까. 강물도 결국에는 바다에 괴게 되므로 우리가 쓴 수세식 변기의 물이나 설거지 물이 다 바다로 합치게 됩니다. 이러게 모아진 바닷물은 태양열을 받아 증발해 구름이 되고 다시 비가 되어 우리에게 되돌아옵니다. 오랫동안 우리는 바다를 오물처리장으로 여겨왔습니다. 이제는 바다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상태로 더러워졌습니다. 목까지 가득 찬 상태입니다. 바다 속 미생물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바다가 식량의 보고인양 잘못 인식해왔습니다. 바다에서 우리가 채취하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적은 수일망정 바다라는 유기체의 균형을 깨뜨리는 일입니다. 더군다나 번식기간에 잡는 일은 씨를 말리는 위험한 일입니다. 또 육지 근해에 온갖 공업용 폐수를 쏟아버림으로써 연안에서 서식하는 생물을 위태롭게 하고 있습니다. 해변가의 요트나 보트를 위한 계류장 건설 같은 것도 바다를 훼손하는 일입니다. 현대식 어망으로 바다 밑을 싹쓸이하듯 긁는 것도 생태계를 망치는 일입니다. 우리는 바다를 더 이상 학대해서는 안됩니다.

한국도 그렇듯이 경제발전은 환경파괴를 동반합니다. 공업화할수록 환경문제가 더욱 심각해지는 것을 어떻게 보십니까?
 가까운 예로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다는 미국의 경우 인구는 전세계의 5%밖에 안되면서 세계 전체 에너지의 20%를 소비하고 있지 않습니까. 서방 세계 몇 나라도 마찬가지고 일본이나 한국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나마도 다행스런 것은 이런 나라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해결방안이 있다면 이런 나라들끼리 모여 공동대책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15개국 정도가 이런 범주에 속하는데,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으니 무엇보다도 정부나 기업체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구의 온실화현상을 막을 방안도 마련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시급한 문제 가운데 하나가 지구가 더워지는 현상입니다. 60년대 이후 줄곧 인공위성이 찍은 사진을 보면 북극의 얼음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바로 지구의 온실화현상 때문이라고 과학자들은 말합니다. 북극얼음은 지구상의 민물 95%를 저장한 곳으로 만약 이런 현상이 악화되어 얼음이 녹으면 바다 수면이 높아져 로스앤젤레스 도쿄 리오데자네이로 같은 대도시가 물에 잠길 위험이 있다는 것이지요. 이런 것을 막기 위해서는 휘발유를 쓰는 자동차가 뿜어내는 배기가스를 줄여야 하고 원시림 벌목을 극도로 제한하여 공기를 맑게 하는 일이 시급합니다.

바다자원 보호를 위해 일정한 보호구역을 설정하자는 쿠스토협회의 주장이 과연 실현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관계당사국들이 협조만 한다면 큰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정 기간 한 구역에서 어떤 어종의 새끼를 낳아 큰 고기가 될 때까지 잡지 않는다면 자원의 재생산능력을 복돋아주게 될 것입니다. 지금처럼 아무나 마구 잡는다면 조만간 어떤 이종은 멸종될 위험이 있습니다. 국제감시 아래 공정한 기회를 준다면 이 계획은 꼭 성공합니다.

노익장을 과시한다고는 하지만 나이가 나이인만큼 아버지는 은퇴해야 할 때를 맞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아버지 말씀을 그대로 옮기자면 눈을 감을 때까지 절대 일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랍니다. 은퇴라는 말이 가장 듣기 싫은 말이라고 항상 말하십니다.

귀하는 원래 건축가인데 어떤 경위로 지금과 같은 직업을 택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16세 때부터 나는 바다 속에 도시를 건설하는 것을 꿈꿨습니다. 나중에 공부를 하면서 알게됐지만 물 속에 집을 짓는 것은 기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수중도시를 세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햇빛이 없는 물 속 건물에서 오래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험용이라든가 취미용으로는 가능합니다.

가족관계와 취미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아들과 딸 들이 있는데 23세짜리 아들은 보스턴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환경경제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딸은 19세로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합니다. 저는 시간이 있으면 스쿠버 다이빙을 하거나 테니스를 즐깁니다.

결국 아들이 아버지 대를 또 이어 3대째 같은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군요.
 두고 봐야겠죠.

귀하는 탐사작업 이외에도 교육 강연 등에 자주 나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에 와서 이야기할 계획이 혹시 있는지요.
 그동안 미국과 라틴아메리카를 비롯한 10여개국을 다니면서 30만명 정도를 대상으로 강연을 했습니다. 아직 아시아에서는 강연한 적이 없으나 한국은 꼭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한국에 쿠스토협회 사무실도 두었으면 좋겠고요. ≪시사저널≫ 같은 이름있는 언론기관이 우리가 벌이는 ‘다음 세대를 위한 권리장전’ 서명운동을 한국에서 주관해준다면 아주 효과가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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