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매’에 멍드는 아이들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1997.1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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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학생 처벌 여전, 심신 피페해져 정신 질환 앓고 가출하기도

지난해 ‘청소년 대화의 광장’이 전국의 초·중·고학생 1천6백여 명을 대상으로 교사들의 학생 체벌 실태를 조사한 바 있다. 조사 결과는 매우 심각했다. 청소년 가운데 절반 이상이 매를 맞은 경험이 있으며, 청소년에게 베벌을 가하는 사람으로는 교사가 가장 많았다. 교사가 학생을 체벌하는 문제를 깊이 논의해 오던 교육개혁위원회는 이같은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지난 6월 일선 학교에서 체벌을 금하는 내용을 포함한 제5차 교육개혁보고서를 대통령에게 제출했다.

 한동안 뜸했던 학생 체벌 무넺가 다시 논란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11월7일게 제주도에서는 제주시 한 여자상업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국어 수업 도중 ‘수업 태도가 불량하다’는 이유로 체벌을 당했다가 수업이 체 끝나기 전 교실을 뛰쳐나가 투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교실 바깥으로 뛰어내린 학생은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관할 교육청은 ‘문제 학교로부터 자체 진상 보고가 올라오기 전까지는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며 해당 교사에 대한 처벌 등 사태 처리를 미루고 있다.

 이로부터 사흘 뒤 서울지법 형사항소 6부(재판장 송진현 판사)는 성적이 나쁘다는 이유로 아이스하키 스틱으로 만든 매로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의 허벅지를 때렸다가 기소되어 1심에서 백만원 벌금형을 받은 ㄷ중학교 체육 교사 ㄱ씨에 대해 원심을 깨고 무죄 판결을 내렸다. 교사의 체벌이 소송 사건으로 까지 번진 직접 원인은 ㄷ중학교 김아무개군(현ㄷ중학교 3학년)이 ㄱ선생으로부터 채벌을 받은 뒤 허리디스크에 걸려 병원에 입원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김군의 부모는 해당 교사에게 치료비를 요구했으며, 이같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교사를 고소했다.

 교사와 학교측은 법원의 판결에 대해 ‘당연한일’이라며 환영하고 있으나, 소송을 제기한 김군 부모의 견해는 크게 다르다. “잔병이라곤ㄴ 도대체 모르고 자란 아이가 디스크에 걸린 까닭은 교사의 체벌이 아니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더욱이 문제의 교사는 학교 안팎에서 걸핏하면 학생들을 붙잡아 심하게 때리는 사람으로 소문이 자자했다”라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원고측이 패소하기는 했으나 ㄷ중학교 교사의 학생 체벌 사건은 학부모의 적극적인 문제 제기로 사법적 판단의 도마에까지 오를 정도로 공론화했다는 점에서 사정이 나은 편이다. ‘청소년 대화의 광장’ ‘참교육 실천 전국 학부모회’(참교육학부모회·회장 소성숙)등 청소년 관련 시민 단체들은 ‘끔찍한 체벌이 교사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음에도, 대부분은 학교측의 축소·은폐 노력으로 까맣게 잊히고 있다’며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한다. 도를 넘어선 체벌로 나이 어린 학생들이 몸을 다치거나, 심할 경우 정신적 충격까지 받는 등 인권 유린 사태가 발생하고 있지만, 이들 사건은 학생 체벌에 비교적 관대한 사회 관행과 학교측의 축소 노력, 불이익을 받을 것을 우려한 학부모측의 소극적인 태도 탓에 번번이 묵살되고 있다.

 참교육학부모회는 지난해 설치한 부설 상담소를 통해 교사 촌지·체벌·부교재 비리 등 학교 운영과 관련한 각종 불만 사항을 전화로 상담해 왔다. 이 모임 백진영 간사는 “새학기가 시작되면 상담 건수가 부쩍 는다. 2학기가 시작된 지난 8월 이후에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졌는데, 상담 건수의 절반 가까이가 교사들의 학생 체벌에 관한 사항이었다. 자녀에게 불이익이 돌아갈까 봐 ‘벙어리 냉가슴’만 앓다가 도저히 못견디고 전화하는 학부모가 대부분이다”라고 말한다.

교육 환경 열악해 체벌할 수밖에 없다?
 참교육학부모회에 걸려온 체벌 관련 전화는 대부분 교사의 심한 체벌로 학생이 신체적 손상을 입었다는 내용이 주종이다. 그러나 단순한 신체손상 이상의 피해를 호소하는 전화도 많다. 학생이 체벌 후유증으로 정신 질환을 앓게 되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심할 경우 가출한 사건까지 발생하는 등 체벌보다 체벌로 파생하는 문제가 더 심각한 예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경북 ㄱ시 한 고등학교 1학년인 김영철군(가명)의 사례는 대표적이다. 김군은 중학교 시절을 3년 내내 개근으로 마칠 정도로 성실한 학생이었는데, 지난 6월 ‘보충수업비를 제 날짜에 가져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담임 교사에게 불려 나가 같은 반 학생들이 보는 가운데 호된 체벌을 받은 뒤부터 이상 증세를 보였다. 등교할 시각만 되면 배가 아프기 시작했던 것이다. 김군을 데리고 일반 병원을 거쳐 신경정신과를 찾은 학부모는 의사로부터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니 전학을 보내는 것이 좋겠다’는 충고를 들었다. 김군의 학부모는 진단서를 첨부해 교육청 등 찾아다니며 ‘전학’을 호소했으나 ‘학교측과 상의해 보라’는 말만 되풀이 들었을 뿐이다.

 학생 체벌이 해당 학생의 가출을 부른 사례도 있다. 경기도 ㅍ시 소재 한 중학교 2학년인 이영숙양(가명)이 가출한 직접 사유는 시험 결과에 있었다. 이양 성적이 오르자 담임 교사가 이양을 교무실로 불러 ‘커닝한 것 아니냐’고 추궁하며 모멸감을 안겨주었다믄 것이다. 한때 불량 학생들과 어울려 다니며 말썽을 피우다가 마음을 고쳐잡고 학교 생활에 적응하려고 애쓰던 이양은, 친구들과 집을 나간 뒤 돌아오지 않고 있어 부모를 더욱 안타깝게 만들고 있다.

 일선 학교에서 체벌이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음성화하는 데 대해 교육 당국은 ‘교육 여건의 열악함’을 주요 이유로 꼽는다. 학생 수는 많은 반면, 이들의 생활을 지도할 교사 수가 워낙 적다 보니 교육 차원에서 나쁘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교사들이 매를 들게 된다는 것이다. 교육부 중등장학관실 김상영 연구관은 “교육청 회의·장학관 회의등을 통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체벌 금지를 권장해온 덕분에 일선 학교에서는 체벌 자제 분위기가 상당히 정착된 것으로 안다. 물론 일부 성미가 급하고 젊은 교사들로 인해 체벌 사건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들에 대한 지도·감독에는 어차피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지나치게 간섭할 수 없는 노릇이고, 자칫 잘못했다가는 현장 교사들의 반발을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반면 학부모 단체들의 입장은 강경하다, 무엇보다 체벌로 인해 피해가 발생할 경우 혼자 힘으로는 여간해서 보상받기 힘들고 법적 수단에 호소해도 ㄷ중학교 체육 교사 사건에서처럼 피해 학생과 학부모측이 이길 여지는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체벌 문제에 깊은 관심을 쏟고 있는 참교육학부모회는 부설 상담소 개설 1주년을 맞는 12월 초 교사·학부모 대표, 해당 전문가 들을 불러 모아 체벌 문제를 주제로 대규모 토론회를 열 계획이다. 체벌의 정당성과 허용 여부를 둘러싸고 또 한바탕 대규모 논쟁이 예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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