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자본의 ‘썰물 작전’
  • 남문희 기자 ()
  • 승인 1998.04.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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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경제 길들이기 위해 ‘자본철수’극약 처방

아시아가 경제 위기에 빠진 이후 미국에서는 다양한 논쟁이 벌어져왔다. 최근에는 그동안의 논쟁이 대강 마무리 되면서‘새로운 아시아전략’이 실행단계에 돌입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논쟁의 주체는 미국의 행정부 · 의회 및 금융자본 그리고 연구기관들이다. 쟁점 역시 광범위하다. 아시아 위기에 미국이 개입할 필요가 있는가, 개입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해야하는가, 도 아시아국가 모두를 지원해야 하는가, 아니면 차별적으로 지원해야 하는가 등등.

 논쟁을 촉발한 것은 국제통화기금(IMF)에 대한 증자문제였다. 아시아 위기 이전에 미국은 서방 각국과 함께 국제통화기금 자금의 약45%를 공동으로 증자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아시아에 경제위기가 발생하자 회의론이 일어났다. 즉 공화당을 중심으로 한 미국 의회와 재무부 등 경제 관련 부처 일부는 회생여부가 불투명한 아시아 국가들에 자금을 지원할 경우 밑 빠진 독에 물붓기가 되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만약 지원할 경우 어떤 방식을 택할 것인가도 논란거리였다. 아시아 위기를 활용해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데 관심을 가진 윌스트리트의 금융자본과 미국 기업들은 미국정부가 이런 점에 초점을 맞추어 지원해야한다고 압력을 가했다.

 의회와 경제 관련 부처 그리고 금융 및 산업자본들의 이 같은 주장에 맞서 국무부 · 국방부 등 외교 · 안보 관련부처들은 비교적 일관된 입장을 밝혀왔다. 즉 미국이 아시아의 위기를 방치해 아시아 경제가 파탄에 이르면 세계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지역안보도 크게 위협을 받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따라서 ‘50%성공할 가능성만 있다 해도, 파탄을 피할 가능성이 존재한다면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이 입장이었다.

 지원방식에서도 이들은 ‘미국이 위기를 이용해 이익을 보려한다는 비난을 받지 않도록 해야한다’는 신중론을 펴왔다. 다시 말해 미국의 금융자본이나 기업들이 이익의 측면을 강조해왔다면, 외교 · 안보부처들은 미국의 리더십보존을 더욱 강조해온 셈이다.

 미국이 리더십을 잃지않으면서 한편으로 위험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법으로 외교 · 안보 부처들이 제시한 것이 바로 국제통화기금 · 세계은행 · 아시아경제협력위원회(AFEC)등 국제기구를 활용하는 방법이다. 그동안 미국에서는 국제통화기금의 유용성을 둘러싸고 존폐논쟁까지 벌어졌는데, 이에 대해 이들은 새로운 대안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국제통화기금을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논리는 자연스럽게 국제통화기금에 이미 약속한 증지를 이행해야한다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3월18일 윌리엄 코언미국 국방장관이 이회에 대해 국제통화기금에 대한 증자를 강력하게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도 바로 이런 배경에서이며, 이런 논란 끝에 미국 상원은 지난3월26일 1배겨80억달러를 증자하기로 결정했다.

‘모범국가’한국 · 태국 집중지원
 그 다음 문제는 국제통화기금 · 세계은행등 국제기구를 통한 미국의 지원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매우 중요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즉 미국이 아시아 위기초반기에 보여주었던 무차별적 지원이 아니라, 각국의 대응양상에 근거해 차별해 지원하겠다는 움직임이 그것이다. 이와 관련해 서울의 한 외교소식통은‘미국은 앞으로 아시아 국가를 네 그룹으로 구분해 차별 지원한다는 입장을 굳혔다’고 말했다.

 첫 번째 그룹은 가장 성공적인 국가로, 싱가포르가 이에 해당한다. 싱가포르는 금융과 기업에 대한 투명성을 확보해 경제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활용한 나라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모범적인 국가로, 한국과 태국이 이에 해당한다. 한국과 태국은 아직 위기를 극복하지는 못했지만 기업구조조정과 금융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강도 높은 조처들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세 번째 그룹에 속하는 나라는 인도네시아인데, 금융도 불투명하고 기업재무 구조도 불확실하며 아직도 권위주의 정부가 집권하고 있다. 그 다음 최악의 사례가 바로 중국이다. 금융 불투명, 기업의 재무구조불확실, 귄위주의 정부라는 요소 외에 외국자본이나 기업에 대한 폐쇄성까지 존재해 가장 나쁜 사례라는 것이다.

 이소식통에 의하면, 앞으로 국제통화기금 · 세계은행 등의 지원은 한국 · 태국 등 모범국가에 집중될 것이라고 한다. 즉 모범적으로 노력하는 국가를 집중 지원해 성공사례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아시아 또는 세계경제전체에 시장경제체제가 부리를 내리게 하는 데 중요한 전기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지난 3월18일 코언장관이 한국을 특별히 지목해 지원을 호소한 점이나, 26일 세계은행 제임스올펜손 총재가 “한국정부가 경제회복을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는데 대해 깊은 인상을 받았다”라며 20억달러 추가지원을 발표한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이다.

 앞서의 소식통은 그러나 인도네시아 · 중국 등은 그 반대 대접을 받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도네시아에 대해서는 앞으로 추가지원을 하지 않을 것이고, 중국의 경우는 중국 스스로 관행을 바꾸도록 일종의 제재 조처가 필요하다고 본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이 앞으로 중국에 어떤 정책을 펼 것인가 하는 점은 구조조종기의 한국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에 대한 미국 정 · ·재계의 입장은, 특히 경제 부문에 관한 한 ‘더 참을 수 없다’는 분위기로 요약된다.

 중국의 개혁 · 개방이후 미국을 비롯한 서방 자본들은 ‘새로운 기회의 땅’에 대거 진출했다. 그러나 그들은 금융체제의 불투명성과 재무구조의 불확실성, 그리고 외국자본과 기업에 대한 폐쇄성 때문에 막대한 손실을 보았다. 특히 미국기업들은 중국 국영기업의 운영행태에 심각한 불만을 느껴왔다. 즉 중국 국내시장에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기업들은 중국 국영기업과 가격경쟁을 하기가 불가능했는데, 중국 국영기업이 제품원가를 무시하고 아주 낮은 값으로 상품을 판매할 수 있었던 것은 은행이 기업에 무제한 대출을 해주는 관행 때문이었다. 은행은 정부보조금등을 통해 손실분을 메워왔다. 이로 인해 중국의 국영기업 · 은행 · 정부는 현재 총체적으로 부실화하고 있으며, 이런 관행이 유지되는 한 서방자본이 중국에 더 머무르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불만이다.

 따라서 중국에 진출한 미국기업은 지금 자본철수라는 극약 처방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미국 금융기관과 기업의 자본철수가 이미 광범위하게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최근 주룽지(朱鎔基)총리가 중국 위안(元)화를 평가 절하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자본을 철수할 가장 좋은 기회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즉 비싸게 위안화를 처분할 수 있는 호기라는 것이다.

 중국으로부터의 자본철수는 중국에 병합된 홍콩에서도 일어날 가능성이 잇다. 즉 사회주의 홍콩이 아시아의 금융센터 구실을 계속할 경우 안정성에 의문이 있다는 것이 미국의 시각이다. 외교 소식통들은 중국과 홍콩으로부터 미국계 자본이 철수하는 것은 홍콩의 중국반화 1주년을 맞는 올해 7월초 절정에 이르게 되리라고 말한다. 이는 홍콩반환 1주년이 축하 분위기에서 치러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한다.

위안화 평가 절하되면 한국은‘새우등’
 한국이 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시대를 맞게 된 과정에서도 볼 수 있듯이, 중국과 홍콩으로부터 미국자본이 철수하는 것은, 일본과 유럽자본의 연쇄 철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는 위안화를 평가 절하시키는 강력한 외부압력으로 작용할 개연성이 크다.

 이런 이유로 위안화가 평가 절하된다면, 중국 수출 상품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므로 이는 곧 한국 및 동남아 국가들에게는 악몽의 시나리오가 된다. 특히 비슷한 상품을 놓고 중국의 거대 국영기업과 경쟁하는 한국재벌 기업들은 매우 심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미국 경제전문가들이 한국 재벌 기업들에 대해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해 온데에는 이런 배경도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한 소식통은 이와 관련해“한국 재벌들에게는 빠르면 두 달밖에 시간이 남지 않았다. 중국측과 겹치는 노동 집약적 분야에서 하루빨리 지식 집약적인 산업 분야로 구조조정을 해야 할 것이다”라고 충고했다.               
南文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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