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란 수사 부뚜막에서 ‘정계 개편’ 연기가?
  • 이교관 기자 ()
  • 승인 1998.06.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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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룡 부총재 검찰 소환설로 ‘연계 의혹’ 불거져

 검찰의 외환 위기 수사와 여권의 정계 개편 작업은 연관성을 찾으려야 찾기 어려운 별개 사안이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이 두 가지 사안이 마치 깊은 정치적 함수 관계인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일부 언론이 5월19일 김덕룡 한나라당 부총재가 지난해 해태그룹이 협조 융자를 받을 수 있도록 당시 김인호 경제 수석에게 부탁한 혐의로 검찰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하면서부터이다.

 의혹의 핵심은 여권이 김부총재에게 정치적 타격을 입혀 정게 개편을 원활하게 이루기 위한 차원에서 검찰의 소환설이 터져 나왔을 개연성이 있다는 것이다.

 국민회의는 김부총재 계보의원들이 대부분인 한나라당의 수도권 초·재선 의원들을 대상으로 영입 작업을 펴왔다. 따라서 국민회의가 이같은 영입 작업뿐만 아니라 상도동과 동교동의 통합에 반대하는 김부총재의 입지를 약화시킬 필요성을 느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검찰 소환 가능성은 희박
 그러나 검찰은 이같은 의혹을 극력 부인한다. 대검 중수부 2과장인 이숭구 부장검사는 ‘현재로선 김부총재를 소환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이부장검사는 김부총재가 경복고 동문인 박건배 해태그룹 회장의 부탁을 받고 김인호씨에게 해태그룹이 협조 융자를 받을 수 있게끔 도와 달라고 요청한 사실은 확인되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김부총재가 이 과정에서 박회장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사실이 전혀 확인된 바 없다고 덧붙였다.

 이부장검사는 김부총재 소환설이 나오게 된 배경은, 김인호씨가 김부총재의 부탁을 받았다는 사실을 지난 5월18일 서울지법에서 구속 영장 실질 심사를 받으면서 진술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씨가 해태그룹으로 하여금 협조 융자를 받을 수 있게 도운 것이 직권 남용이라는 검찰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이같이 진술했다는 것을 나중에 전해들은 일부 언론이 검찰이 김부총재를 소환할 계획을 갖고 있는 양 보도해 말썽이 되었다는 것이다.

 현재로서 대검 중수부가 김부총재를 소환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이는 “친구나 후배의 부탁을 들어 주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돈을 받지 않았다면 그냥 넘어는 것이 상례가 아니냐, 더구나 검찰수사의 목적은 김인호씨의 혐의를 입증하는 것이다”라는 이부장검사의 말에서 엿보인다. 그는 또한 “김부총재가 한나라당 서울시장 선거대책위원장 직을 맡고 있어 그를 소환할 경우 나중에 발생할 파장이 부담스럽다”라고 말해 소환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했다.

 검찰의 이같은 입장은 김부총재에게 이미 전달된 것으로 밝혀졌다. 소환설이 터져 나온 직후 검찰의 한 고위 관계자는 김부총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미안하다. 뭔가 잘못됐다. 이해해 달라”며 사과했다고 한 측근은 밝혔다. 그래서인지 김부총재는 ‘쌍방울이 무너진 뒤 마지막남은 호남 기업인 해태그룹을 호남 출신 정치인이 돕는 것은 당연하지 않으냐’는 자신 있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이 측근은 털어놓았다.

 이 측근에 따르면, 그럼에도 김부총재는 자신에 대한 검찰소환이 이신행 의운의 불법 비자금 조성 혐의와 같이 엮인 듯이 비치고 있는 데 대해 매우 곤혹스러워하고 있다고 한다. 이신행 의원은 검찰이 그가 기산의 상으로 재직할 때 불법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혐의로 5월22일 체포 영장을 발부받자 한나라당 당사에서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당 지도부는 선거 기간에 검찰이 이의원을 체포하려는 것은 명백한 선거 방해라고 규정하고 강력 대응에 돌입했다.

 게다가 김부총재는 소환설로 인해 계보 의원인 수도권 초·재선의원들이 심리적으로 흔들릴 것을 염려하고 있다.

 한 측근은 ‘언론을 통해 계보 의원들을 겁주는 효과는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는 검찰 소환설이 설로 그친다고 해도 정계 개편이 한시라도 급한 여권의 처지에서 보면 득이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래서 정치권 일각에서는 소환설이 여권의 ‘치고 빠지기’작전일 수 있다면서 의혹의 눈길을 거두지 않고 있다.
李敎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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