얻은 것은 돈, 잃은 것은 명예?
  • 파리· 김제완(자유기고가) ()
  • 승인 1998.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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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프랑스 월드컵 결산 / 훌리건 난동 · 심판 판정 · 입장권 스캔들 ‘옥의 티’

 프랑스 주요도시 열군데에서 33일동안 열려 전세계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 넣은 월드컵 대회가 7월 12일 저녁(현지시간)막을 내렸다.

 이번 대회에는 94년 미국 대회보다 여덟 나라가 늘어난 32개국 선수 7백4명이 출전해 모두 64게임을 치렀다. 또 이를 취재하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기자 1만2천명이 몰렀다.자원 봉사자 역시 1만2천명. 직접 경기장에서 관람한 관객만 해도 2백50만명이며, 세계 각국에서 텔레비전을 통해 경기를 지켜본 사람은 연인원 3백70억명이다. 결승전 한 경기에만 지구촌의 17억 축구팬이 텔레비전 앞에 앉아 환호했다.

 이처럼 성대하게 치러진 지구촌 잔치는 다음 개최국인 우리 처지에서 유의할 만한 몇 가지 문제점을 남기기도 했다. 대부분의 축구 관계자들은 훌리건(HOOLIGAN) 난동, 심판 판정의 불분명성, 그리고 입장권 판매를 둘러싼 추문을 지적했다.

 6월 14일 마르세유에서 잉글랜드-튀니지 전을 앞두고 잉글랜드 훌리건들이 튀니지 국기를 불태운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분개한 튀니지 응원단과 시민들이 잉글랜드 훌리건과 충돌하자 진압 경찰이 출동해 시가전을 방불케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 사건은 평화로운 마르세유 항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6월21일 랑스에서는 독일-유고 전이 끝난 뒤 독일 훌리건들이 프랑스 경찰관 1명에게 집단 폭행을 가해 지금가지도 의식을 찾지 못하는 식물 인간으로 만들었다.

 훌리건은 한 세기전 런던에서 악명을 떨친 아일랜드 출신 불량배 이름이다. 이 이름이 지금은 축구장에서 폭력을 일삼는 열광적인 팬을 가르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 나타난 훌리건들의 행태를 영국과 독일의 경우로 구별해서 볼 필요가 있다. 마르세유이 잉글랜드 훌리건들은 술과 마약에 취해 난동을 부렸다. 그들 중 대다수는 광적인 흥분 상태에서 군중 심리에 따라 움직였다

 반면 랑스의 독일 훌리건들은 말짱한 정신으로 폭행을 가했다. 이곳 경찰은 이들이 경기 관람보다는 폭행을 하기 위해 온 것으로 본다. 랑스시 경찰서장은 경찰관 폭행 사건 직후 “훌리건들이 독일 극우파 소속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6월25일자 <르몽드>도 ‘비록 증거가 나타난 것은 없지만 독일 훌리건 중 일부는 극우파일 것’ 이라며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이처럼 독일 훌리건들의 난동에는 정치적인 의미까지 숨어 있어 여러 모로 생각할 여지를 남겼다.

 월드컵은 지구촌 주민들을 하나의 화제로 모이게 한다는 점에서 인류 화합을 도모하고 세계화에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월드컵 대회는 민족주의가 구현되는 마당이기도 하다. 서로 대립되는 두 속성을 동전의 양면처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먼저 선수들의 경우를 보자. 월드컵에 참가하는 선수들은 국적을 떠나 시장 원리에 따라 자기 몸값을 가장 많이 인정해 주는 구단을 선택한다. 세계화 이념과 일치한다. 이 선수들이 월드컵을 앞두고 국가 단위로 헤쳐모이는데 국가마다 나름으로 독특한 팀 컬러를 보여준다. 세계화 시대에 민족주의가 관철되고 있는 것이다.

 고나객 처지에서 다시 보자, 월드컵은 국가 대항전으로 치러지는 경기이므로 관객들에게 국가·민족 단위의 소속감을 고취시킨다. 이 때문에 월드컵이 힘겨운 과정을 거쳐 유럽 통합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는 유럽인들을 다시 국가 단위로 나누어 헤쳐 놓는 아이러니를 낳고 있는 것이다.

“프로 축구 구단주에 ‘백태클’ 당한 FIFA"
 이 같은 이중성에서 튀어나온 것이 훌리건이다. 세계화와 민족주의가 충돌하는 월드컵 경기장에서 그들은 자기 민족 우월주의의 깃발을 마음껏 치켜든다. 잉글랜드 훌리건들 처지에서는 튀니지와 같은 아프리카 나라와 대결한다는 것만으로도 자존심이 상했을 법하다. 국기를 불태우는 불상사는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이번 프랑스 월드컵 대회에서 훌리건들이 발호한 사건은 현재 유럽이 안고 있는 모순의 한 측면을 잘 드려내 주고 있다.

 6월25일 <르 몽드>는 1면 머리기사에서 이번 대회의 문제점으로 훌리건과 함께 심판 판정을 제기했다. <르 몽드>는 칠레-카레룬 전과 브라질-노르웨이 전에서 심판 판정이 잘못되었다고 단정하고, 이 때문에 카메룬과 모로코 등 아프리카 국가들이 16강전에 진출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질문을 받은 국제 축구연맹(FIFA) 제토 블래터 회장은 “좀더 전문적인 심판이 필요하다”라고 말해, 심판의 문제점을 간접적으로 인정했다.

 뿐만 아니라 독일-미국, 독일-유고·이탈리아-칠레 전에서도 심판의 분명치 않은 판정이 문제되었다. 이 때문에 심판들이 블래터 회장의 ‘레드 카드 엄격 적용’ 지시가 떨어진 뒤 퇴장 명령을 남발해 일관성을 잃었다는 것이다.

 국제축구연맹은 이번 대회부터 선수를 보호하고 공격적 축구를 유도하기 위해 백태클 제재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한다고 했다. 그러나 유럽 축구계에서는 프로 축구 구단주들이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고가 상품’의 손상을 막기 위해 국제 축구연맹에 압력을 가해 규칙을 강화했다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입장권 판매를 둘러싼 추문도 프랑스 월드컵이 남긴 숙제다. 월드컵을 두 달 앞둔 지난 4월 22일 파리에 주재하는 종합상사들뿐 아니라 교민 업소들에 근무하는 한국인들은 하루 종일 일손을 놓고 전화통을 붙잡고 있었다. 조직위가 이날부터 프랑스의 일반 축구팬을 상대로 입장권 11만장을 전화로 예약 판매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전화가 접속되어 예약에 성공한 사람은 거의 찾기 어려웠다. 조직위가오전 8시부터 교환원 90명을투입했지만 일시에 천만통의 전화가 폭주해 한국인뿐 아니라 대부분의 프랑스·유럽축구 팬들은 ‘통화중’ 신호만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2002년 월드컵, 흑자 얻고 사고 방지해야
 그후 입장권과 관련한 추문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일본인을 상대로 한 입장권 사기 사건으로 관련 회사 간부가 구속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암시장에서는 결승전 입장권1장이 1만5천 프랑에 거래되었다. 이처럼 암표가 돌아다니는 것은 자유뿐 아니라 사회 정의를 중시하는 프랑스에서는 이례적인 것이다. 프랑스 월드컵 조직위는 전체 입장권 중 60%를 주최국인 프랑스의 축구팬을 위해 남겨두고, 10%를 관광회사에, 5%를 공식 스폰서 및 협력 업체에 배정한 뒤 나머지 25%를 국제축구연맹과 각국 축구협회에 배분했다. 이 중 관광회사와 공식 스폰서들에 배분된 15%중 일부가 흘러나와 암시장이 ㅎ여성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와 같은 문제들이 지적되고 있음에도 이번 대회는 비교적 잘 운영된 대회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기 내용면에서는 전력상 우세가 예상된 팀들이 이변 없이 행군을 했다는 점과, 전반적으로 출전국 간의 실력 격차가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점 그리고 브라질의 호나우도 같은 뛰어난 공격수의 활약을 들 수 있다.

 대회 규모 면에서 프랑스 월드컵을 흔히 20세기의 마지막 이벤트라고 한다. 동원된 사람 숫자뿐 아니라 예산면에서도 결코 과장이 아니다. 경제 면에서 본 월드컵은 가히 돈잔치이다. 국제축구연맹은 입장권 판매 수익 15억 프랑, 텔레비전 방영권 1백15억 프랑, 그리고 2백여업체로부터 로고 사용비 80억 프랑 등을 받아 경비를 제외하고 순수익 20억 프랑을 남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아벨란제는 자신의 후임자에게 총예산 40억 달러를 선물로 남겨 줄 수 있게 되었다. <르 피가로>는 이처럼 고부가가치 산업이 된 축구를 빗대 현대판 만나(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탈출해 광야를 헤매는 동안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음식물)라고 말한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대회는 돈잔치 규모가 프랑스 대회보다 3배 정도 늘어나는 천문학적인 수준이 될 것이라고 블래터 국제축구 연맹 회장이 7월 2일 밝힌바 있다. 다음 대회를 준비하는 한국의 처지에서는 흑자로 운영해 국가 경제에 보탬이 되도록 반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번 프랑스 월드컵 기간에 출몰해 오점을 남긴 훌리건의 경우처럼, 2002년 월드컵이 한국과 일본 사회에 잠복해 있는 사회 문제 또는 양국 간의 갈등을 극적으로 드러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대회 조직위와 국민들이 미리 염두에 두고 대비해야 할 것이다. 
파리· 김제완(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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