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뇌 국회에 새 뇌 이식하자”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1998.08.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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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소환제 도입 운동/시민단체 입법 청원 운동 전개 … “정치 불안 등 부작용 야기”반론도

 국회의원 퇴출 내지 정리해고는 가능할 것인가. 국민소환제(또는 국민해면제) 도입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국민소환제란 선거로 뽑은 공직자를 국민 일정 수의 동의를 얻어 임기가 끝나기 전이라도 해임할 수 있게끔 하는 제도이다. 8월 들어 서울YMCA를 비롯한 시민 단체들은 이 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서명 운동과 공청회를 전개하고 있다.

 몇 달 전부터 시민 단체들은 국회파행에 대한 책임을 여러 각도에서 물어 왔다. 경실련이 진행하고 있는 국회의원 세비 가압류 및 손해 배상 청구 소송, 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가 주축이 되어 결성한 의정감시단 따위가 그것이다. 그러나 국민소환제는 ‘정치인 퇴출’을 아예 법제화한다는 점에서 더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이 제도를 법제화하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먼저 반대하는 처지에서 본다면 국민소환제는 △ 인기에 영합한 의사 결정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고 △ 불안한 임기 때문에 정쟁이 격화해 정치 불안이 만성화할 우려가 있으며 △ 정적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위험 또한 배제할 수 없다(52년 이승만 대통령은 지방 의회를 앞세워 국회의원 소환운동을 벌여 반대파들을 제압하고 국회에서 발췌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이성환 교수(국민대 · 법학)는 ‘자칫하면 민주주의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 수도 있는’ 이같은 부작용 때문에, 선진국에서도 이 제도가 활성화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현재 국민소환제는 미국 애리조나주 등 선진국 몇몇 자치단체에서 채택하고 있지만, 거의 유명 무실한 상태이다.

여론몰이에 성패 달려
 제도 도입을 찬성하는 측의 주장도 만만치 않다. 21세기한국연구소 김광식 소장(정치학 박사)은, 이 제도가 결코 헌법 정신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헌법 제1조2항에 따른다면 나라의 주권은 ‘선거때’만이 아니라 ‘항상’국민에게 있으며, 따라서 국민이 국회의원 선출권뿐만 아니라 해임권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김소장은 이 제도가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지역 유권자 5% 이상이 발의해야 소환 투표를 할 수 있다’는 식으로 조건을 엄격하게 제한하면 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뇌사 국회’를 낳은 근본적인 정치 관행, 곧 한국 정당의 후진적인 계보 · 서열 정치가 뒤바뀌지 않는다면 정치인 개개인을 퇴출시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의문이다. 이에 대해 한국유권자운동연합 이광천 사무처장은 국민소환제가 이같은 후진 관행을 깨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객관적인 의정 평가가 정착되면, 불합리한 공천으로 ‘후진 정치인을 뽑을 수밖에 없게끔’ 유권자의 선택을 미리 제한하는 계보 정치의 페해 또한 단계적으로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 이처장의 주장이다.

 시민 단체들은 이 제도를 도입하려는 목적이 ‘퇴출 그 자체가 아닌 정치 개혁’ 이라며, 국회가 정상화한 이후에도 입법 청원 운동을 벌이겠다고 말한다. 문제는 입법 주체가 국회의원이라는 사실이다. 정치 생명을 담보로, 자기 목에 방울을 달 멍청한 고양이가 과연 있을까. 앞으로 성패는 시민 단체의 여론몰이에 달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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