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반 여왕’꿈꾸는 13세 요정
  • 강용석 편집위원 ()
  • 승인 1999.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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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 나리 남, 피겨 스케이팅 챔피언 미셀 콴 아성 위협

탁구.양궁.핸드볼.필드하키.골프이상은 한국 여성들이 세계 무대를 제패했거나, 항상 다크 호스로 군림하는 스포츠 종목들이다. 그런데 올해 초 의외의 종목이 여기에 합세했다. 출전 자격조차 얻기 힘들었던 피겨 스케이팅이 바로 그것이다. 주인공은 로스앤젤레스 인근 어바인에 사는 재미 동포2세 나오미 나리 남(13?한국명 남나리).

 남양은 2월13일 미국 유타 주 솔트레이크시티델타 링크에서 폐막된 ‘전미피켜스케이팅 챔피언십’대회에서, 세계 챔피언 미셀 콴에 이어 2위를 차지해 세계 스포츠계를 놀라게 했다.

 이 날 경기장을 꽉 메운 6천5백여 관중은 남양의 연기가 완전히 끝나기도 전에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그들은 남양의 점수가 전광판에 나타나자 심판을 향해 야유를 보냈다.

 스포츠 전문 주간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고참 기차 E.M.스위프트는 이 경기를 보도하면서 ‘다음 세대는 그녀 것이다’라는 제목 밑에 ‘대회 우승자는 미셀 콴이지만, 주인공은 열세 살인 나오미 나리 남이었다’라는 부제를 달았다.

 남양은 95년 주니어 올림픽 유년부에서 우승하는 등 정상을 향해 급상승세를 보여 왔다. 그러나 키147㎝, 몸무게37㎏의 가녀린 체격을 가진 남양에게는 이번 대회에 출전한 것만으로 대단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평소에 쳐다보기도 힘든 상대로 보였던 콴과 당당히 겨룬 것도 꿈 같은 일이었다.

 이 대회에서 콴은 금메달을 받아 체면을 살렸으나 실제로는 ‘은메달 대접’을 받았다. 콴의 금메달이 확정된 후에도 그의 아버지 데니 콴씨의 표정은 시종 어두웠다. 대회 2연패에 4년간3회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는데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2위 나리에게 돌아간 시샘 때문일까, 어쩌면 ‘13’의 악몽이 떠올랐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3년 전인 96년 같은 대회에서 콴은 당시 열세 살인 타라 리핀스키와 우승을 다투었다. 간발의 차로 우승했으나 콴의 악몽은 다음해부터 시작되었다. 전미 타이틀과 월드 챔피언을 열네 살이 된 리핀스키가 차지한 것이다. 콴의 불운은 98년 나가노 겨울 올림픽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렇게 그리던 올림픽 금메달을 리핀스키에게 빼앗긴 것이다.

“미셸 콴, 남양 의식해 프로 전향 가능성”
 콴이 두려워하는 것은 2위를 차지한 남양이 3년전의 리핀스키처럼 열세 살이라는 점 때문만이 아니다. 남양의 연기가 콴의 아성을 위협할 수준이기 때문이다. 내년도 전미 선수권과 세계 선수권을 남양이 차지하고, 2002년 겨울 올림픽마저 휩쓴다면 미셸 콴에게는 문자 그대로 13의 악몽이다. 일부 언론은 콴이 남양의 잠재력을 의식해 일찍 프로로 전향할지 모른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18세인 콴은 올 가을에 대학생이 된다.

 남양이 스케이트화를 처음 신은 것은 다섯 살 때. 그러나 이미 두 살 때 엄마 친구가 사준 롤러블레이드에 입문해 서너 달 만에 가파른 집앞 언덕을 오르내릴 정도로 재능을 보였다. 그후 할아버지를 따라 인근 스케이트장에 놀러다니면서 스케이팅의 매력이 푹 빠져들었다.

 지난5년간 남양을 지도한 존 닉스 코치는 이렇게 말한다. “남양은 물론 재능을 타고 났다. 그러나 재능만 믿고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채찍질할 줄 아는 훌륭한 선수다.”

 남양의 2위 입상을 계기로 미국 피겨 스케이팅계에 세계 대회 출전 나이 제한 논란이 다시금 일고 있다. 남양은 3등까지 주어지는 미국 대표 자격을 얻었으나, 3월21~28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벌어지는 세계 대회에 출전하지 못한다. 국제 스케이팅연맹(ISU)은 나이 어린 선수들이 세계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낸 후 일찍 프로로 전향하는 일이 생기자, 15세 미만 선수에게는 시니어 국제 대회 출전권을 주지 않기로 룰을 정했다.

 문제는 이번 대회에서 4등을 하고도 남양 대신에 출전권을 획득한 사라 휴스 선수 역시 열세살이라는 사실이다. 휴스도 나이 제한에 걸리지만 지난해 주니어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2위를 차지했기 때문이에 출전할 수 있다. 주니어 세계 대회 메달리스트는 나이에 관계없이 출전할 수 있다는 예외의 조항이 있다.

 공교롭게도 남양은 지난해 주니어 세계 대회 때도 연령에서 5일이 어려 출전하지 못했다(휴즈는 남양보다 생일이 약 두 달 빠르다). 닉스 코치는 이같은 규정이 ‘개탄할 일’이라고 지적하고, 국제스케이팅연맹이 빨리 나이 제한을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규정이 바뀌지 않는다면 남양이 내년에 전미 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다 하더라도 세계선권대회 출전은 좌절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남양은 “좋은 경기를 보일 수 있다는 데에 감사할 뿐이다”라며 대범한 모습을 보였다. 한편 남양은 3월3일 생애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해 빙판 묘기 등을 선보일 예정이다.

 97년 박찬호, 98년은 박세리가 미국 스포츠 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올해에는 나오미 나리 남이 한국인들에게 또 다른 감동을 안겨 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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