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습의원’이 일본 정치 좌지우지
  • 도쿄 · 채명석 편집위원 ()
  • 승인 2006.05.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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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당수, 차세대 지도자 대부분 2세 정치인 ··· 중의원 1백25명 ‘대물림’



 한집안의 가업을 대물림해 가는 ‘직업 세습’은 일본 사회에서 흔한일이다.횟집에서 날랜 손놀림으로 칼을 다루는 요리사는 2∼3대째가 보통이며, 유명한 스시 ? 우동집 창업 이래 수백년간 대물림으로 장사한다는 것을 대대적으로 선전한다. 그뿐만 아니다. 꽃꽂이나 **, 일본 무용 같은 분야에서는 독특한 ‘이에모토’(家元)제도라는 것이 있어 자자손손 그 기법을 전승한다. 또 전통연극 가부키의 주역배우는 화려한 습명식을 거치며 그 이름을 혈족이 계송해 간다.

 일본에서는 국정을 다루는 정치의 세계에서조차 이런 직업 세습이 두드러진다. 중의원 5백12명 중 부친이나 조부로부터 선거구를 물려받아 당선된 이른바 ‘세습 의원’ 수는 현재 1백25명, 중의원 4명 가운데 1명이 세습 의원인 셈이다.

‘세습’ 안한 총리는 한명뿐

 의원직 세습 현상은 날로 심화되고 있다. 83년 선거에서 당선된 세습 의원은 1백2명이었다. 86년 선거에서는 1백30명으로 불어났고 90년 선거에서는 1백25명이 당선됐다.  의원직 세습은 야당보다 자민당에서 두드러진다. 역대 총리 가운데 자기 혈육에게 지역구를 물려주지 않은 사람은 56년말 두달 정도 총리를 지낸 이시바시 탄잔 한명뿐이다.

 기시 ? 이케다 ? 오히라 총리는 각각 사위에게, 요시다 총리는 손자에게,후쿠다 ? 스즈키 총리는 아들에게 선거구를 물려주었다. 그 밖에 각료 경험자 등 유력한 정치가의 대부분이 자기 혈육을 후계자로 내세우는 것이 관례처럼 되었다.

 이 때문에 현재 일본 정치는 2세 정치가들이 운영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미야자와 총리의 경우 부친이 중의원, 외조부가 사법장관을 지냈다. 또 바로 밑 동생이 현직 참의원이고 외가 친척 중에도 전 ? 현직 중 ? 참의원이 즐비한 이른바 ‘화려한 정치가 일족’ 출신이다.

 총리뿐만 아니라 현 내각의 각료 20명 중 8명이 2세 정치가이다. 고노(관방) 니와(후생) 나카무라(건설) 가노(총무청) 나카야마(방위청) 기타(훗가이도 ? 오키니마(과학기술청) 장관이 바로 그들인데, 후나다 장관의 경우 증조부 ? 조부 ? 부친으로 이어진 4세대 정치가이며, 기타 장관은 부친 ? 형 ? 숙부가 국회의원을 지낸 ‘화려한 일족’이다

 게다가 다음 총리로 유력한 뉴 리더 정치가의 대다수가 2세 정치가들이다. 오자와 이치로 (전 간사장) 하시모토 류타로(전 대장상) 하타 쓰도무(하타파 회장) 고노 요헤이(관방장관) 등은 모두 20∼30대에 부친의 선거구를 물려받아 10선 전후의 결력을 쌓았으며, 이를 발판으로 차기 또는 차차기를 노린다.

 야마하나 사회당 위원장과 에다 사민련 대표도 2세 정치가이다. 이렇게 보면 일본의 여야 당수, 그리고 차세대 주자 대부분이 2세 정치가 이다. 일본 정치는 이미 이런 2세 정치가들에 의해 좌우되고 있으며, 앞으로 이들의 입김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일본 정치의 주역 자리를 2세 정치가들이 차지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현행 선거제도에 있다는 것이 정치 평론가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즉 현행 일본의 중선거구제는 한 선거구에서 2∼6명을 뽑도록 되어 있다. 이 때문에 같은 민자당 후보나 야당 후보끼리 치열한 선거전을 치러야 하는데 이른바 ‘3점 세트’. 다시 말하면 지반(후원회) 간판(지명도) 가방(선거자금)을 고루 갖춘 2세 정치가들이 단연 유리하기 때문에 ‘정치의 세습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자민당의 파벌정치이다. 파벌의 확대 유지가 지상과제인 자민당 각파벌에 선거는 자파세력을 확장할 둘도 없는 기회이다. 다라서 신인을 공천하는 것보다는‘3점 세트’를 고루 갖춘 세습 후보를 내세우는 것이 위험부담을 줄이면서 파벌 세력을 확대 ? 유지하는 지름길인 것이다.

 이런 세습 현상의 골이 깊어지면서 경쟁원리가 소멸해 정치가 공동화된다는 우려도 없지않다.  즉 정치 세습화는 기득권이나 선거구민의 이익을 고정화하기 때문에 정치 전체를 정체 또는 역류시킨다는 우려이다.

 개인의 능력보다는 ‘3점 세트’에 의해 세습 의원이 늘어나는 일본의 정치세습 현상은 “일류 경제에 삼류 정치”라는 푸념을 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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