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黨은 낭패 母黨은 몰패
  • 안병찬 (편집인) ()
  • 승인 1992.04.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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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母黨’과 ‘父黨’이 서로 크게 싸웠다. 여성과 남성이 갈라져 파당싸움을 한 셈이다.

 중국에서의 일이다. 고전소설 《홍루몽》의 해석을 둘러싼 중국공산당 내부의 싸움이었으므로 이를 ‘《홍루몽》노선투쟁’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홍루몽》은 몰락하는 귀족의 호화로운 저택 □國□의 정원을 무대로 해서 벌어지는 주종 간의 슬픈 애정을 극채색의 그림처럼 펼쳐놓은 淸代의 白□소설이다.

 구어체에 의한 근대적 문학형식으로 백화문학을 제창한 북경대학 교수 □□은 《홍루몽 고증》(1921년)을 통해 이 소설이 저자의 자서전으로서 피맺힌 진실과 참회의 뜻을 담은 자연주의적 평민문학이라고 해석했는데 공산혁명에 성공한 모택동은 이를 비판한다.

 그는 ‘《홍루몽》연구 문제에 관한 펴지’(1954년 10월)를 당중앙 정치국에 보내 “호적파 자산계급 유심론에 대해서 투쟁해도 될만한다. 소위 《홍루몽》권위자들이 30년간 범한 착오의 관점에 포화를 열자”고 선포하여 문예정풍운동을 이끌었다. 《홍루몽》은 당연히 봉건제도에 반항한 정치역사 소설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나가 둘로 쪼개지고 두 개가 하나로 종합되는 모순운동은 모택동 내외한테도 예외없이 적용되었다. 뒤에 모택동의 부인 강청도 《홍루몽》노선을 이탈했다고 호된 비판을 받게 되니 말이다.

“□女는 능히 하늘의 절반을 지탱한다”했거늘
 등소평이 재기하여 중국의 개방정책이 시작되던 70년대 후반 ‘반혁명수정주의 4인방의 □□을 제거하는 중대한 노선투쟁’이 벌어졌을 때 당권파는 □□(《홍루몽》을 연구하는 학문)연구가를 자처한 가청이 ‘영국부’ 내부에서 모당(모계)과 부당(부계)이 서로 싸운 끝에 모당이 승리했다고 떠들어 대었으니 정치집단 내부투쟁을 혈연관계로 해석하는 큰 과오를 범했다고 공격하고 나섰다. “강청이 모당의 승리를 강조한 것은 女□이 되려는 탈권의 야심을 내보인 데 지나지 않는다.”

 서방 여권운동가들이 즈력 인용해온 모택동어록이 있다. ‘부녀는 능히 하늘의 절반을 지탱할 수 있다.’ (□女□□□□天)

 그러나 모당 천하를 얻으려던 강청은 부계인 당권파 손에 완파당하고 만 것이었다.

 母黨은 우리 총선에서도 역시 완파당했으니 중국에서의 《홍루몽》투쟁의 경험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것이다. 14대 총선 결과가 나온 다음에 3당의 대표들 얼굴 표정을 3월색으로 대조해서 그린 말은 침통·희색·파안의 세가지이다. 그런데 색깔이 다른 표정을 또하나 추가해야 할 것을 세상은 망각하고 있다. 우리네 ‘모당’ 소속원들이 분개한 나머지 새빨개진 얼굴색이다.

 선거에서 여당은 낭패했지만 정작 참패하기는 모당이다. 한국 유권자의 절반이 넘는 52%를 차지하면서도 모당 표는 하나도 힘을 쓰지 못했다. 선거 직전 각 정당 당수한테는 한국여성유권자연맹 등 4개 여성단체 대표의 공한이 전달됐다. 그것은 여성의 정치 참여 확대를 입으로만 외쳐온 父黨의 허구, 실질적으로 여성몫을 할애함이 없이 여성표만 긁어가는 父黨의 허구를 비난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런 허구성은 여성 지역구출마자 ‘19명 전원 낙선’의 결과를 낳았다. 제헌국회부터 14대 국회까지 의원수를 모두 합치면 3천2백33명. 그중 여성은 64명(동일이의 중복 때문에 실제로는 42명)이다. 더구나 직선으로 뽑힌 여성은 16명뿐.

여성 몫은 나눠주지 않고 여성표만 긁어가
 이쯤되면 남의 일이 아니다. 북한의 경우를 봐도 우리보다 낫다. 국회격인 최고인민회의의 여성 대의원은 1948년 1기부터 1990년 9기까지 8백4명(16.4%)에 달한다.

 14대에서 임명제나 다름없는 전국구 의원 가운데 여성이 단 3명에 그친 우리 현실은 남성이 봐도 부끄러운 노릇이다.

 지난 국정감사 때 국회행정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정무제2관장과 한국여성개발원을 상대로 발언하면서 여성문제에 관한 무지와 무관심을 스스로 폭로했다. 한 야당의원은 “남녀고용평등법 실시 이후 여성들의 의식이 높아져 아주 골치아프다”고 여성문제에 대한 기본인식조차 없는 발언을 부끄럼 없이 했다.

 한국의 모당과 부당의 관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결국 요점은 유엔 여성회의(1975년 멕시코)가 채택한 ‘남성을 향한 메시지’로 귀결한다. 그때 세계의 모당원들은 남성이 스스로 환경을 바꾸는 데 협력하지 않는 한 여성은 오늘의 처지를 더 이상 개선하기가 어렵다고 선언했다. 그렇더라도 여성이 자기네 일을 부당한테만 의탁할 일은 아니다. 의존적이고 안이한 여성 자신의 의식을 바꾸지 않고 남성중심의 정치관이나 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기는 힘들다. 지금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꾀하는 여성 지도자들은 정당의 여성공천 할당제, 중·대선거구로의 전환, 전국구의 여성비례대표제, 선거공영제의 확대 따위 제도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지만 여성표를 조직화하여 다가오는 대통령선거 때 ‘모당’의 분노와 의지를 한데 모아 엄정한 제재를 가하지 못한다면 모당은 몰패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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