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에는 공소 시효 없다?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1999.1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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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법 제정 · 국제법 원용하면 ‘이근안과 배후’ 처벌 가능

카를 아돌프 아이히만. 나치 전범. 유태인 말살 정책 기안 및 실무 책임자.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아르헨티나에 숨어 살던 그가 이스라엘 정보기관에 체포된 것은 60년이었다. 이스라엘로 압송된 그는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를 혐의로 이스라엘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두산 타디치.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전범. 92~95년 보스니아 내전 중 포로수용소 간수를 지낸 그는 회교계 수용자에게 고문  · 학살 따위 반인도적 범죄를 젖른 혐의로 옛 유고 전범 국제형사재판소(ICTY)로부터 징역 20년형을 선고받았다.

고문 기술자 이근안씨의 배후가 속속 드러나면서 이들을 어디까지 처벌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들이 고문을 교사했건 직접 고문에 가담했건 고문 행위 그 자체로 이들에게 중징계를 내릴 방법은 없다(박처원 전 치안감의 주된 혐의도 범인 은닉이다). 현재까지 검찰 조사에서 밝혀진 대로라면, 납북 어부 김성학씨 사건을 제외하고는 고문 범죄에 대한 공소 시효(7년)가 모두 지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국내법에 한정했을 때 얘기이다. 국제 사회로 눈을 돌리면 달라진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전범을 심판하기 위해 뉘른베르그 재판소가 설치된 이래 고문은 반인도적 범죄(평화로운 인민에 대한 반인도적인 행위, 정치 · 인종 · 종교적 박해) 가운데 하나로 인정되어 왔다. 이런 반인도적 범죄 행위에 대해서는 공소 시효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 뒤 확립된 국제법의 대원칙이다. 68년 유엔이 ‘전범 및 반인도적 범죄에 관한 시효 부적용 조약’을 채택함으로써 이 같은 원칙은 더욱 강화되었다.

한국은 이 조약에 가입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헌법 제6조 1항, 곧 ‘널리 인정되는 국제 사회 관습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는 정신에 따른다면 고문 범죄에 공소 시효를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강금실 변호사의 주장이다. 이 같은 논리를 바탕으로 민변은 지난 11월 10일 국내법으로는 이미 공소 시효가 끝난 함주명씨 고문 사건을 다시 끄집어냈다. 83년 자수한 남파 간첩 함주명씨를 고문한 혐의로 이근안씨를 서울지검에 고발한 것이다.

과연 민변의 주장은 받아들여질 것인가. 아직까지는 어려운 점이 많다.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국제 법규가 전시뿐 아니라 평화시 행해진 범죄까지 포괄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재판은 전시 범죄에만 제한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옛 유고 전범 타디치의 경우 전투가 중지된 상황에서 저지른 고문이 처벌 대상이 되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조시현 교수(성신여대 · 국제법)는 지적했다.

“특별법 제정은 죄형 법정주의 위배” 논란도
고문 행위가 있을 당시 적용되지 않았던 법에 따라 이근안씨를 처벌하는 것은 소급입법을 금하는 죄형 법정주의에 위배된다는 논란도 있다. 아이히만 재판 때도 이런 논란은 있었지만, 국제 관습법에 의한 처벌은 죄형 법정주의를 위반한 것이 아니라는 원칙이 적용되었다는 것이 박찬운 변호사의 지적이다.

현재로서 공소 시효 함정을 비켜 가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민변이 주장하는 o로 헌법 w 6조를 적용해 국제법의 효력을 국내법과 동등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둘째는, 특별법을 제정하는 방식으로 공소 시효를 부분 정지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독일은 통독 이후 ‘시효 정지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옛 동독 정권 아래서는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기소가 거의 불가능했음을 감안해 동독 통치 기간은 공소 시효를 정지시키고, 통일 시점인 90년 10월부터 시효가 진행되게끔 한 것이다.

한국도 95년 ‘5 · 18 특별법’을 제정하면서 군사 반란 개시일(79년 12월 12일)부터 노태우 전 대통령 하야일(93년 2월 24일)가지 13년 2개월을 공소 시효 정지 기간으로 정한 일이 있다. 단 특별법은 ‘헌정 질서 파괴 행위(쿠데타)를 실행하면서 벌인 인명 살상이나 가혹 행위’만을 반인도적 범죄라고 규정했다. 이는 군사 정권이 저지른 죄상을 낱나이 파헤치겠다는 의지보다 정략적 이해가 앞섰던 이 법의 한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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