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AIDS에 포위됐다.
  • 고명희 기자 ()
  • 승인 1991.07.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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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방·발병경로 관리 허술 매년 1.5배씩 감염자 증가

 “언니, 가려워 참을 수가 없어요." 피부가 짓무르고 피가 줄줄 흐르도록 긁다가 鄭모씨(사망시 28세)는 89년 11월 숨을 거뒀다. 신체의 면역기능이 급격히 떨어져 목숨을 내주어야 했던 정씨의 병명은 우리나라에선 보통 에이즈로 불리는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 88년 3월 에이즈 감염자로 판명된지 1년8개월만의 일이었다.

 정씨가 이태원에서 일했던 특수업태부였다는 점에서 그의 죽음을 뒷골목의 일로 넘겨버리고 싶은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괴질' 에이즈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는 충격적인 사건이 최근 일어났다. 에이즈 감염자가 헌혈한 피를 수혈한 2명이 치명적인 이 병에 감염된 것이다. 89년 병원 수혈로 에이즈에 감염됐던 주부 김모씨(48)의 사건 이후 망각했던 에이즈 감염의 공포를 다시 한번 실감나게 한 이 사건은 '몸단속'만 잘하면 에이즈로부터 안심이라는 통념을 또 한번 무너뜨렸다. 이제 누구나 에이즈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동남아 거처 한국으로 에이즈는 아프리카의 '녹색 원숭이' (그린몽키)에 의해 인류에게 감염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아직 정확하게는 밝혀져 있지 않다. 70년대 말부터 환자가 발생하기 시작하여 그중 한명이81년 처음 사망했다. 1983년 병원균이 구명되었으나 에이즈를 막기 위한 백신개발은 성공을 거두지 못한 상태여서 에이즈는 아프리카에서 해상통로를 통해 성개방사회인 미국 유럽지역으로 급속히 번졌고, 동남아를 돌아 우리나라에까지 상륙했다.

 에이즈는 감염자의 체액 중 특히 헐액이나 정액에 있는 에이즈 바이러스에 의해 전염된다(신생아는 산모로부터 수직 감염되기도 한다). 이 바이러스는 대부분의 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대단히 작아서 직경이 약0.1nm (1억분의 1m) 정도에 불과하지만 주공격대상이 인체의 면역조절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T세포'라는 점에서 핵폭탄 같은 위력을 지닌 바이러스라 할 수 있다.

 바이러스는 공격대상 T세포면에 붙어 세포의 핵에 침투하여 잠복하면서 새로운 바이러스를 만들어내며 동시에 T세포를 죽여버린다. 85년 우리나라 사람에게서 최초로 에이즈 바이러스를 분리한 李元◎ 교수 (연대의대 · 미생물학)는 "에이즈만큼 원인균이 단시일내에 발견된 것은 의학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지만 이처럼 속수무책인 경우도 처음"이라고 말한다. 미국 식품 · 의약국(FDA)이 현재까지 인정한 치료약은 바이러스의 증식을 지연시키는‘AZT'(Azidothymidine)가 유일하다. 처음에는 암세포를 죽이는 약으로 개발된 'AZT'는 에이즈 바이러스 종류만 가진 독특한 역전사효소를 망가뜨린다는 점에서 에이즈 번식을 지연시키는 치료제로 쓰이는데, 미미한 효과에 비해 독성이 강하다.

신원확인 안된 감염자 약 2백명
 물론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고 해서 모두 에이즈 환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에이즈에 감염되면 증세의 발전 정도에 따라 4단계로 나뉜다. 감염은 되었으나 현재 건강한 상태를 WELL, 목이나 겨드랑이의 림프샘이 붓는 증상을 PGL, 고열·땀·통증·나른함·원인불명의 체중감소·설사증상을 ARC, 폐병·카포시육종·식도의 세균감염·심한 설사증상이 나타나는 단계를 AIDS로 분류한다.

 그런데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은 언젠가 에이즈 환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감염자는 길게는 5~6년 동안 아무런 증세가 없으나 약 60~70%는 3년 이내에 어떠한 상태로든 증세를 보인다. 이들 중 30-40%는 ARC로 발전해서 그중 약 15~20%는 에이즈로 사망 (에이즈 환자가 된 지 2년 이내)한다. 따라서 현재 드러난 에이즈환자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보사부 방역과 이◎인 계장은 "우리나라의 경우 첫 감염자가 발견된 85년 11월 이후 해마다 전년에 비해 약 1.5배의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고 말한다. 환자로 판명된 7명은 모두 사망했고, 현재의 에이즈 감염자 1백35명은 관할보건소에서 분산,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이계장은 에이즈 감염자들은 쉽게 노출되지 않아 세계보건기구(WHO) 에서는 대륙별로 다르게 감염자수를 집계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를 감염 수준이 가장 높은 아프리카에 비교한다면 약 2백명의 감염자가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셈"이라고 밝힌다. 세계보건기구의 관례에 따르면 아프리카지역은 환자1의 50배, 미국은 10~20배, 유럽은20~30배의 숫자를 감염자 슷자로 추정한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환자7명의 50배인 3백50명을 감염자로 간주할 경우 현재 확인된 1백48명을 제외하면 약 2백명의 감염자가 어디선가 숨어서 음성적인 생활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설명이다. 보사부에서 감염이 의심되는 내국인을 에이즈지정병원·보건소·혈액원 ·검역소 등에서 검사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그러나 현 제도는 감염자를 알아내는 데 그다지 희망적이지 못하다. 자비를 들여야 검사가 가능한 병원만 문이 활짝 열려진 상태이고, 나머지는 대상자를 한정해 선별적인 검사가 이뤄지고 있다.

 88올림픽 이후 감염자 크게 늘어
 또 외국인에 대한 '동방예의지국'의 규제는 관대하다 못해 빠져나갈 구멍투성이로 보인다. 전세계로 에이즈 공포가 확산되는 시점에서 무방비 상태로 열린 88올림픽을 계기로 에이즈 감염자는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2쪽 표 참조). 여론이 높아지자 당국에서는 올림픽이 끝난 그해 말 "입국하는 외국인 중 90일 이상 장기체류자에 한해서 검사를 한다"는 신설조항을 '후천성면역결핀증예방법'에 추가했다. 그러나 감염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소위 '섹스관광'을 즐기려는 여행객들 대부분이 빠져나갈 수 있는 이 조항은  '가시적인홍보효과'에 불과할 뿐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하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이렇게 거의 무방비 상태인 우리나라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은 '감염경로'에 대한 관리마저 소홀하다는 점이다. 에이즈는 성관계 및 수혈로 인해 주로 감염된다. 물론 개인의 사생활인 성생활은 관리의 '사각지대'여서 각자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 해도, 수혈감염에 대한 대책조차 미비해 헌혈이 에이즈 감염 여부를 검사하는 기회로 악용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셈이다.

 이번의 에이즈 감염 확인은 지난 4월 동성연애자 김모씨가 헌혈한 혈액이 에이즈항체검사에서 양성으로 판정되면서 보건당국이 김씨의 과거 헌혈경력을 추적한 결과 밟혀졌다.

 중앙적십자혈액원의 ~~~ 성분제제과장은 현재 전액 공급이 전국의 14개 혈액원에서 이뤄지는 데 "1일 필요량의 97%가 헌혈로 충당된다"고 말한다. 이과장은 실제로 많은 사람이 익명으로 헌혈한 뒤 전화로 그 결과만을 확인하는 일에서 추정할 수 있듯이 헌혈이 에이즈 감염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음을 시인한다.

“이제는 남의 피 믿을 수 없다”
 혈액원이 에이즈 검사를 시작한 것은 지난 87년부터이다. 선의의 헌혈이 '죽음의피'로 둔갑하는 것을 막기 위해 헌헐차에서 피를 뽑을 때 2개의 시험관에 따로 검사를 위한 피를 넣는다. 이 시험관은 혈액원의 검사실로 옮겨져 혈액껌·B형간염·C형간염·매독·에이즈 등 5가지 검사를 거친다. 에이즈의 경우 '효소측정법'이 이용된다. 중앙적십자혈액원 김◎썬 검사과장은 "이 검사는 에이즈 바이러스 자체의 항원검사가 아니라 인체내의 에이즈 항체검사"라면서 감염되었다 해도 항체가 형성되지 않은 기간(항체미첨겅기간 · 6~8주)에 뽐은 피면 에이즈 감염 여부를 알 수 없다고 설명한다. 츱◎은 인체에 침입하여 항체를 만들게 하는 단백성 물질로 많은 세균·독소가 이에 해당한다. 돈딸는 항원의 침입에 의해 만들어지는데 그 항원에 대한 면역성을 지닌다.

 그러나 헌혈자가 이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저 헌혈 후 '음성판정'을 받으면 안심하기마련이다. 따라서 에이즈 감염 여부가 의심스런 사람은 헌혈을 절대피하고, 보건소를 이용해 검사해야 한다고 김과장은 충고한다.

 "내일 수술하는 친구 아버지에게 수혈할 피를 미리 뽑기 위해" 혈액원을 찾았다는 효챌류씨(22 ·그래픽 디자이너)는 “이제더 이상 어떻게 남의 피를 믿겠느냐"고 반문했다.

 물론 이번 경우는 '1백만분의 1'의 확률이 현실로 나타난 '불행한 일'이라고 담당자들은 안타까워한다. 유럽의 경우에도 85년 중반 수혈에 의해 에이즈에 걸린 사례가20건, 미국에서도 1백31건이 발생했다. 어쩌면 전세계 공통의 '불가항력적인 일'로 간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런 대책이 없는 이상 1백만분의 1이라고 해도 감염된 당사자에게는 1백%입니다." 촐균뚠 교수는 수혈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강력한 조처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에이즈 감염자·동성연애자·각종 섹스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헌혈한 사실이 발견되면 형사처벌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격렬한 입맞춤도 위험
 오명◎ 교수(서울대의대 ·내과)는 "검사과정에서 만의 하나 인간의 실수도 있을 수 있다"면서 "이 사건을 교훈삼아 에이즈감염 검사체계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충고한다.

 최근의 에이즈 감염은 외국인을 통해서 감염되던 초창기의 양상에서 벗어나 내국인끼리의 접촉으로 감염되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다. 특히 동성연애자의 밀실 성생환, 마약복용자들이 사용하는 주사의 바늘, 당사자들의 '무지'는 에이즈 감염자의 확산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세계보건기구 집계에 따르면, 전세계에 퍼져있는 에이즈 환자는 91년 현재 36만명이며 감염자의 수는 8백만~l천만명으로 추정된다. 지난 6월16일부터 21일까지 이탈리아 프로렌스에서 열린 제7차 에이즈학회에는 세계 각국에서 약 1만4천명이 참가하여 가공할 에이즈에 대한 전세계의 공동대처에 대해 논의했다. 그러나 각국의 피해사례만 무수히 보고되었을 뿐 에이즈 치료에 대한 연구는'AZT'만이 에이즈 번식을 지연하는 소극적이나마 유일한 치료제라는 결론에서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고 외신은 전한다.

 게다가 월리엄 허셀틴 박사(미국 보스턴암센터연구소)가 "진한 입맞춤에 의해서도타액을 통해 감염될 수 있다"는 이론을 제시하여 참가자들은 시시각각으로 좁혀오는 에이즈공포에 쉽싸인 채 폐막했다고 한다.

 死神의· 전령 에이즈 바이러스에 지구촌40억 인구가 지혜를 모아 공동대처할 시점에 우리는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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