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통신
  • 워싱턴·김승웅 특파원 ()
  • 승인 2006.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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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孟 사상으로비행기 참사 막자"




항공기 조종사 간의 불화가 항공기 사고의 주범이다."자꾸만 일어나는 여객기 참사의 주원인이 기체 결함보다 인적 요소, 그 가운데 특히 기장을 정점으로 하는 부기장-항법사-엔지니어 사이의 인간관계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는 학설이 나와 관심을 끈다.

  지난주 워싱턴 D.C에서 열린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주최심포지엄에 참석한 洪淳吉 교수(한국항공대학·항공학)의 논문 요지이다.

  홍교수의 논리 가운데 이번심포지엄에서 특히 관심을 불러일으킨 내용은, 항공기 조종사를 위한 훈련지침으로 동양 고유의 군자형 지도력과 장유유서의 위계질서를 주요 덕목으로 제시한 것이다.

  세계 60여국에서 2백여 명의 항공 관계자·정부 관리·학자가 참석한 이번 심포지엄에서홍교수가 문제 해결책으로 제시한 동양 고유의 유교적 접근 방법은 토론자 모두에게 충격을 주었다. 서양식 합리주의와는 결코 양립할 수 없는 孔孟의 논리가, 그것도 다른 분야가 아닌 서양식 합리주의의 최첨단 분야인 항공기운항 및 관리 쪽의 주요 지침으로 등장할 수 있는가에 대해 토론자 거개가 의아심을 표명했다.

 

한국인 논문으로는 처음 채택

  주최측인 국제민간항공기구는 유네스코(UNESCO)나 세계식농업기구(FAO)와 마찬가지로 유엔 산하 전문 기구의 하나로, 세계 각국의 민항사가 모두 회원국으로 참여하고 있다.

  3년마다 총회 겸 심포지엄을 열어 온 이 기구의 학술 회의에는 매회 10~15편의 학술 논문이 발표되는데, 한국인의 논문 채택은 홍박사 것이 처음이다. 홍박사는 '한국 항공 산업에서의 인적 기술개발과 전문 기능인의 근무 자세'라는 평범한 논문 제목보다'공자사상이 지배하는 동양 사회에서의 직업 항공인의 훈련'이라는 부제가 심사위원을 자극해 논문을 채택케 만든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고 겸손한 자세를 보인다. 그러나 그가 논문을 발표한 직후 같은 동양권인 중국 일본 베트남의 항공 관계자들은 물론 미국과 유럽의 회원국 학자들로부터 폭넓은 지지가 있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그의 논문이 아직은 후발 산업의 대열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국 항공업계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일조한 것으로 평가해야 할 것 같다.

  홍박사가 위의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내놓은 자료를 보면, 지난35년간 우리나라에서는 1백56건의 항공기 사고로 5백43명이 죽었다. 이 사고 가운데 항공기 자체의 결함(15건)과 하이재킹 · 기타(9건) 사고를 빼면 인적 요소의 결함으로 빚어진 사고가 1백32건으로 전체 사고의 3분의 2를 웃돈다. 다시 말해 인재가 항공기사고의 주범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 같은 인재를 줄이는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그는 교통부 항공관리국 직원,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의 기술자, 항공기 운항·정비 일선에서 근무하는 각종 검사관과 교관, 조종사, 교수들을 차례로 면담해 동양인 체질에 맞는 조종석 근무지침(CRM)과系線 비행훈련지침량(LOFT)이 필요함을 알아냈다. 미국의 유나이티드항공이 개발한 근무지침과 비행훈련지침만을 우리 항공전문가 훈련 과정에 일방적으로 접목할 경우, 우리 고유의 '상하의식'이나 '장유유서'같은 인적 요소가 저해받기 쉽고, 이는 결과적으로 항공 사고로 연계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예로, 35세의 기장과 40세의 부기장은 직급보다 직분에 더 충실한 서양식 항공훈련제도에서는 하등 탓할 바 없는 인사 구도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부기장 이하 항법사 · 엔지니어모두의 심기를 흐려놓는다. 기장에 대한 이런 불화와 갈등이 바로'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논리다.

  비단 기장의 나이뿐만이 아니라, 그가 공군 출신이냐 육군 항공대 출신이냐, 같은 공군이라도 사관학교 출신이냐 간부후보생 출신이냐에 따라 부기장 (및 그 이하)과의 관계가 수십 수백 가지의 수열 조합으로 바뀌게 된다. 또 요즘 정치 세태처럼 기장의 출신지가 영남이냐 호남이냐, 지도력을 지닌 사람이냐 독불장군이냐에 따라 부하들과의 관계가 천태만상으로 바뀌게 된다.

  어느 기관 어느 직장에도 통용되는 이러한 논리가 유독 항공기의 경우 새삼 강조되는 이유는, 다른 분야에서라면 속으로 만타 오르거나 그냥 사그라질 인적 불화나 갈등이 1백만 개 이상의 부품을 조립한 여객기를 조종하는 경우 자칫 '대형사고' 유발로화대될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치학을 전공한 홍박사는 조정석에서 '정치'를 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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