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벌판은 '핵 지뢰밭'
  • 모스크바 · 김종일(자유 기고가) ()
  • 승인 2006.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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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신문 "상태불량 핵 시설 수두룩" 폭로‥‥ 톰스크 사고에 이어 핵공포 확산


  최근 러시아에서는 얼마전 방사능누출 사고로 물의를 빚었던 톰스크 7번 핵무기 공장 말고도 아르자마스 16번 핵무기 공장도 누출 위험에 방치되어 있음이 밝혀졌다.

  이 같은 사실은 러시아의 핵에너지장관인 B.N.미하일로프 박사가 1년전 일간지〈투르드〉와 회견했을 때 폭로했으나 당시 이 부분만은 보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하일로프박사는 문제가 됐던 톰스크 7번 공장의 대표로 근무한 바 있다.

  보도되지 않은 내용에 따르면, 모스크바에서 여객기로 동쪽 1시간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아르자마 16번 핵무기 공장은 극히 위험한 상태여서 지체없이 보수해야 하지만, 비용이 많이 들고 인력이 부족해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고 했다.

  이 기사를 쓴 니콜라이 바리세비치 기자(부국장급)는 "당시〈투르드〉는 l6절지 8쪽분량인 인터뷰 기사를 보도 통제로 싣지 못했었다"고 밝히고 있다. 미하일로프 박사는 이 인터뷰에서 아르자마스 16번공장 외에도 옐친 대통령의 고향인 예카테린부르크에서 겨우 2백50여 떨어진 중부 러시아의 천연자원 보고인 첼랴빈스크 70번 공장 역시 안전 상태가 극히 불량하다고 밝히고 있다.  한편 그린피스 모스크바 지부의 한 관계자는, 모스크바에 서남서쪽으로 1백㎞ 떨어진 오브닌스크 지역에 세균탄두 제조 공장이 있으나 폐기 과정이 불명확해 러시아 정부측의 솔직하고도 공개적인 조처가 취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로 미루어 러시아 핵시설의대부분이 사고 위험에 처해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이 관계자는 오브닌스크 지역이 수도인 모스크바와 근접한 지역이어서 관계 당국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 같으나 만족할 수준은 아니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오브닌스크 지역보다 더 화급한 곳은 아르자마스16번 공장과 첼랴빈스크 70번 공장이며 현 상태로 계속 방치한다면 제2의 체르노빌 사태를 겪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그린피스 관계자는 옛 소련과 러시아가 동해에 핵쓰레기를 폐기한 사건은 이미 공공연하게 알려진 비밀로서 특별할 게 없다고 밝힌 뒤, 더 심각한 문제는 러시아내의 핵 시설이 폭발할 가능성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사실은 아직도 비밀에 부쳐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첼라빈스크 사고 나면 러시아 완전마비

  러시아의 핵발전소와 핵무기 공장은 모두28군데이다. 이 가운데 10군데가 안전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아르자마스16번 공장은 옛 소련이 원자력을 개발해 최초로 시험한 곳이며, 반체제 과학자로 알려진 사하로프 박사가 일했던 곳으로 군이 삼엄하게 경비하고 있는 가장 비밀스런 시설이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극비이다. 첼랴빈스크 70번 공장도 마찬가지여서 만약 사고가 생긴다면 4월6일 발생한 톰스크 7번 공장의 사고보다 훨씬 심할 것으로 보인다고〈투르드〉기자는 밝혔다.

  더욱이 첼라빈스크 70번 공장이 자리잡은 곳은 주요 산업이 밀집한 지역이어서 만약사고가 터지면 중부 러시아의 산업시설이 완전 마비되고 러시아 땅이 사실상 두개로 갈라질 수도 있다고 그린피스 관계자는 덧붙였다. 군사 도시인 옴스크 지역에서 모스크바 쪽으로 약 두 시간 거리에 있는 크라스니야르카 36번 핵무기 공장 역시 위험한 곳으로 지적되고 있다.

  모스크바 대학 물리학부의 한 전문가는 지리적으로 위험한 핵 시설이 살펴보면 톰스크-크라스니야르-첼랴빈스크로 이어져 있어 핵 공포의 삼각지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옐친 정부는 무조건 감추려 든다. 그대로 방치했다간 더 크게 터질 수도 있다"라고 경고했다.

  모스크바 핵 본부에서 근무하다 은퇴한 한관계자는 수년 전부터 아르자마스 16번과 첼랴빈스크 70번 공장이 위험하다고 지적되어 중앙 정부의 감독관이 여러 차례 현지를 방문했으나 묘책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핵 문제는 옛 소련이 안전을 소흘히 한 채 미국과의 군비 경쟁에만 치중한 데에서 비롯됐다.

  러시아 정부의 재정 부족과 고급 인력 이직도 한몫을 하고 있다. 한때 1백만명(이중전문가는 10만명)에 이르렀던 전문 인력은전환기 저임금과 생활고에 시달려 상당수가 직장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투르드〉에 따르면 핵시설 종사자의 월 평균 임금은 1만5천 루블로 모스크바의 일반 노동자보다 5천 루블이 낮은 데 반해 물가는 모스크바보다 50%나 비싸다는 것이다.

 

사고 가능성 숨겨 주민 무방비 상태 

  톰스크 7번 공장 화학분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는 올해 27세의 한 젊은이는 요즘 모스크바 대학 부설 기관인 경영대학원 야간과정에서 공부하면서 훨씬 나은 돈벌이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낙후된 아르자마스 16번과 첼랴빈스크 70번 공장에는 사실상 연구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근무함으로써 관리 능력이 떨어진다"고 밝혔다. 그린피스의 한 관계자는 "러시아가 낙후되어 위험상태에 놓여 있는 핵 시설들을 보수하려면 서방의 재정 및 기술 지원이 절실하다"라고 주장한다.

  지난 밴쿠버 미·러 정상회담에서 미국은 핵 시설 보수에 필요한 약간의 재정 지원을 러시아에 약속해 놓은 상태이지만 빠른 시일 안에 지원이 이행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린피스 관계자는 독일과 프랑스가 우선 떠맡아야 하며, 뒷짐 지고 있는 일본과 한국도 참여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부자 나라들이 러시아와 함께 낙후한 핵 시설에 공동으로 대처해 핵 공포를 완전히 제거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필자가 첼랴빈스크 지역과 아르자마스 지역의 전화 가입자 40여명에게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인터뷰한 결과, 현지인의 대부분은 두 곳이 얼마나 위험한지 모르고 있었으며 만약 사고가 나면 오갈 데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체르노빌 사고 피해자를 치료했던 한 관계자는 러시아의 현행법상 거주지를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데다 누적된 어떤 공포 때문에 사람들이 진실을 밝히기를 거리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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