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만에 찾은 명예 그래도 착잡한 광주
  • 광주·문정우 기자 ()
  • 승인 2006.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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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 “진상규명 왜 못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5ㆍ18광주 민중 항쟁이 ‘불순분자들의 배후조종에 의한 무장 폭동’(80년 계엄사 발표)에서 ‘민주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88년 민주화합추진위)으로 격상됐다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밑거름’(93년 5월13일 김영삼 대통령 담화)으로 명예를 회복하기까지에는 무려 13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그러나 13년 만에 김영삼 대통령의 담화로 명예를 회복한 광주 시민들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못한다.  국가 존립 기반을 뒤흔든 폭도에서 이 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자로 인정받기까지의 과정이 탐탁치 않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일방적이다.  폭도라고 몰아붙인 계엄사의 발표도 그렇고 민주주의의 밑거름이 됐다고 치켜세운 이번 김영삼 대통령의 담화도 그렇고 모두 자기들 마음대로이다.  김대통령은 이번에 광주 시민들의 염원을 상당 부분 수용한 것이 사실이지만 끝내 시민 대표들을 직접 만나지는 않았다.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일요일인 16일 광주 망월동 묘역에 가족과 함께 참배 온 김광철씨(37ㆍ회사원)의 말이다.  김씨는 “광주 문제는 시혜를 베푸는 듯한 정권의 선언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  왜 그같이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안되었는지 진상 규명조차 안된 상태에서 국정 책임자가 광주 항쟁에 대해 어떻게 이럭저럭 말을 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김영삼 대통령과 면담을 추진해 온 광주시의회와 광주 항쟁 관련 단체 대표 15명은 지난 4월26일 기자회견을 통해 면담 희망일을 5월12일로 확정하고 청와대측에 실무창구 개설을 요청했으나 청와대측은 13일 일방적으로 담화를 발표했다.

 김영삼 대통령의 이번 담화에는 주로 피해자에 대한 명예 회복과 보상에 관한 내용이 들어 있을 뿐 가해자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빠져 있다. 이를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역사에 맡기자”는 얘기로 대신하고 있다.  따라서 가해자의 행위에 대한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5공 때의 “국난을 극복하기 위한 구국의 결단”이나 6공 때의 “질서를 바로 잡고 자위를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던 일”이라는 수준에서 “역사에 맡기자”로 바뀌었을 뿐이다.

 광주 시민들은 책임자 처벌이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대통령의 말에는 어느 정도 공감을 나타내지만 가해자가 저지른 행위의 성격을 규정하고 진상을 밝혀내는 것까지도 과연 어려운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유족회 등 관련단체 “각론 지켜보겠다”

 5월16일 금남로에서 한국대학생총연합회(이하 한총련)가 주최한 ‘시민 학생 결의대회’에 참가한 박인태씨(41ㆍ공무원)는 “가해자의 행위에 대한 현정부의 입장은 도대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다.  5공 때나 6공 때처럼 ‘구국을 위한 결단’이었다고 생각하는 것같지는 않은데 분명하지가 않다.  대통령은 12ㆍ12에 대해서는 쿠테타적 사건이었다고 규정했으면서도 12ㆍ12를 일으킨 소수 군인들이 자행한 광주 무력진압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대통령은 이번에 가해자들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서 자신의 견해를 분명히 밝혀야 했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가해자의 행위에 대한 공식적인 규정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광주시 양동에서 음식점을 경영하는 곽성호씨(53)는 “진상 규명이 현실적으로 왜 어렵다는 것인지 납득하기 힘들다.  책임자 처벌은 현정권의 존립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에 어려울지 모르지만 진상 규명까지 못하겠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또 진상 규명도 안된 상태에서 누구를 용서하라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라고 얘기한다.

 5ㆍ18항쟁 13주년 기념식을 치르기 위해 조선대에 집결한 한총련 소속 대학생들도 격렬한 어조로 현정권의 조처를 비난했다.

 조선대 총학생회 간부 ㅇ군(21)은 “김영삼 정부가 내놓은 해결안이란 것은 노태우 정권이 3당 합당 전에 궁지에 몰려 내놓았던 물타기 회유책에서 한걸음도 진전된 것이 아니다.  문민 정부라고 해서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 셈이다.  이대로 물러서지 않겠다”라고 말한다.  ㅇ군은 또 “현정부의 조처란 한마디로 돈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정도는 광주 시민들이 모금해서도 할 수 있는 일이다”라고 주장했다.

 학생들은 지난 2월 학생과 시민 대표가 모여 작성한 광주해결 5개 원칙 15개 항을 정부측이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며, 만약 관철되지 않을 경우에는 힘으로라도 밀어붙이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시민과 학생이 합의 한 5개 원칙이란, 특별법 제정과 특별검사제 실시를 통한 진상 규명 및 책임자 처벌, 명예회복, 집단 배상, 기념사업 추진을 말한다.

 “한판 붙어보자. 무기를 지참하라”는 내부 지침이 있었던 만큼 학생들이 이번 광주항쟁 추모 기간에 오랫동안 손에서 놓았던 화염병과 쇠파이프를 다시 들고 나올지도 모른다.

 반면 유족회 등 광주 항쟁 관련 단체들은 김대통령의 담화에 대해 직접적인 비난을 삼가면서 유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광주 항쟁 관련11개 단체를 이끌고 있는 정동년 의장은“특별담화에는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 핵심 상황이 제외돼 실망스럽지만 정부가 추진하는 기념사업 등은 조속한 시일 내에 실현될 수 있도록 적극 협조 하겠다”는 입장이다.  5ㆍ18민중항쟁 13주기 기념행사 준비위원회(오추위) 의장인 강신석 목사는 “고심한 흔적은 보이지만 과거 청산과 광주정신 계승 의지가 미흡하다.  대통령의 담화는 총론이고, 각론이 어떻게 나올 것인지 지켜보겠다”고 말한다.

 

“가해자들의 사과 없이 어찌 화해합니까”

 이들 5월 단체 대표들은 한결같이 부드러운 표현을 쓰고 있지만 단체 내부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오추위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담화를 발표해버림으로써 우리가 김영삼정부게 걸었던 한가닥 기대마저 끊어져 버렸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이용만 당한 셈이다.  5월 단체들은 이제 다시는 광주 문제 해결을 정부에게 기대하는 어리석은 일을 반복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13년 만에 처음으로 정부와 5월 단체가 광주문제 해결을 위해 무릎을 맞댔으나 결과는 안한 것만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이번 담화에서 “진상 규명은 역사를 올바르게 바로잡고 정당한 평가를 받자는 데 그 목적이 있으므로 이제 미움과 갈등의 고리를 바로 우리 모두의 손으로 끊고 다같이 잊지는 말되 과감하게 용서하고 새롭게 화해하자”라고 말했다.

 그러나 과거를 용서하고 새롭게 화해하는 것은 대통령이나 다른 지역 사람들이 권해서 될 일은 아닌 것 같다.  광주 시민들이, 특히 계엄군의 총탄에 피붙이를 읽은 유족들에게 진심으로 그런 생각이 들 때에만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망월동 묘역에 가보면 진상 규명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과연 그같은 날이 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놈이 내 아들입니다.  그놈들이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 17일 한 70대 할머니가 총상으로 형체도 없이 이지러진 아들의 사진을 가리키며 망월동 묘역을 찾은 참배객들의 소매를 붙잡고 일일이 설명하고 있었다.  참배객중에는 눈시울을 적시는 사람이 많았다.  그 옆에는 교사인 남편의 귀가를 기다리다 계엄군의 조준 사격을 받고 사망한 임신 8개월된 주부의 영정도 보인다.

 “이들이 아직 자기가 왜 죽어야만 했는지도 모르고 구천을 헤매고 있는데 어떻게 과거를 잊을 수가 있습니까.  이들에게 총을 쏘라고 명령한 자들이 잘못했다는 말 한마디 없이 같은 하늘을 이고 잘 먹고 잘 사는데 어떻게 화해할 수 있습니까.  13년이 아니라 1백30년이 걸리더라도 진상을 밝혀내고야 말 것입니다.  광주 시민이 언제 정부가 해결해주기를 바란 적 있습니까.”

 대통령의 담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망월동 묘역을 찾은 유족 중의 한 사람이 오열하듯 쏟아놓는 말이다.  그것은 아마도 어떤 여론조사보다도 더 정확하게 광주 시민의 심정을 표현하는 말일 것이다.  13년 만에 명예를 회복한 광주 시민들의 표정은 어째 그 전보다 크게 밝아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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