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쓰레기장 東海 오염도 알 길 없다
  • 김 당 기자 ()
  • 승인 2006.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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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기처 “영향 없음”에 “시늉에 그친 조사” 지적


 ㅎ은 이웃사촌인 ㄹ에게 큰돈을 빌려줬다.  ㅎ도 넉넉한 형판은 아니었지만 새로 사귄 친구 ㄹ의 어려움을 외면할 수 없었다.  더구나 ㅎ은 ㄹ의 집 화장실에서 새는 물 때문에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ㅎ은 ㄹ이 그 돈의 일부를 화장실을 고치는 데 쓰기를 바랐다.  그런데 ㄹ은 화장실을 고치기는커녕 아예 똥오줌을 ㅎ의 집골목에 몰래 버리곤 했다.  ㅎ과 ㄹ의 관계는 최근 핵폐기물을 둘러싼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와 다를 바 없다.

 최근 공개된 러시아 정부의 핵폐기물 조사백서에 따르면 옛 소련 정부가 59~92년 북극해와 극동해에 고체ㆍ액체 폐기물을 일상적으로 투기해 왔음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이중 극동 해역의 경우, 백서는 예 소련해군이 동해와 오호츠크해, 캄차카반도 동쪽 태평양에 10개 투기 지역(77쪽 지도 참조)을 정해 방사성 폐기물 1만8천5백65Ci(퀴리 : 방사성의 단위로 1Ci는 라듐 1g이 1초간 방출하는 방사선의 세기)를 버렸다고 보고했다. 이중 특히 동해 6개 지역 (수심 1천1백~3천7백m)에 투기된 방사성 폐기물 중에는 납용기로 포장한 핵잠수함 원자로 2기가 포함돼 있다.  극동 해역에 투기한 6백 85조 Bq(베크렐 : 1초 사이에 원자핵이 붕괴되는 수, 즉 방사성 물질의 양, 1퀴리는 3백70억 베크렐)은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인한 방출량(4백경 베크렐)의 6천분의 1에 해당한다.

 이를 종류별로 보면 △액체 폐기물이 4백56조 Bq △중ㆍ저준위 고체 폐기물이 2백25조 Bq△원자로 2기와 차폐체 1개가 4조3천억 Bq이다.  해역별로 보면, 액체 폐기물의 경우 캄차카반도 동쪽 태평의 제7지역에 집중 투기되었으며 고체 폐기물은 동해의 제9지역에 대량 투기되었다.  폐기 물량이나 방사능 양으로 보더라도 동해의 제9지역(74년~92년 4백83조 Bq)이 가장 많다.  핵추진 잠수함 원자로 2기는 동해의 제10지역에 수장되었다.  관심은 이 같은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느냐에 모아진다.

 

러시아, 규제 강화된 뒤에도 버려

 물론 이 같은 공해상의 투기가 처음 밝혀진 것은 아니다.  지난 91년 11월 국제 원자력기구(LAEA)는 국제해양기구(IMO)의 ‘해양투기 방지에 관한 국제회의’에 제출한 보고서를 통해 그동안 비밀에 부쳐온 해양 투기 사례와 해양에서의 핵무기 분실사고를 공개한 적이 있다.  당시 보고서는 △일본의 경우 55~69년 태평양 연안 6개 지역에 핵폐기물을 담은 2백ℓ들이 컨테이너 3천31개를 버렸으며 △한국도 그보다 양은 훨씬 적지만 68~72년 동해의 울릉도 앞바다에 저준위 핵폐기물(2백ℓ 들이 컨테이너 1백15개)을 투기했다고 지적했다.  또 당시 보고서는 50~91년 전 세계에서 31건의 해양 핵무기 분실사고가 발생했으며 누출된 방사능 물질로 인해 태평양과 대서양이 오염됐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현재 방사성 물질을 포함한 폐기물의 해양 투기는 국제법으로 엄격하게 규제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지난 72년 채택된 런던덤핑협약으로 이 국제 협약은 수은ㆍ카드뮴ㆍ석유ㆍ고준위 핵폐기물의 해양 투기를 금하고 비소ㆍ납ㆍ시안 화합물과 저준위 핵폐기물은 조약 가맹국들의 특별 허가를 받아 바다에 투기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이 협약에는 92말 현재 러시아 미국 일본 중국등 극동해 인근 핵 보유 4국을 포함한 69개국 이가 가입하고 있다.

 또  폐기물 투기에 대한 기준 및 특별허가 때의 고려 사항은 국제원자력기구에 위임되고 있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하정우 박사(방사선환경부장)도 “옛 소련의 핵폐기물 투기는 수심 4천m를 대상으로 하여 중ㆍ저준위 폐기물 투기를 허가하는 국제원자력기구의 지침에도 벗어나고 특히 원자로를 통째로 투기하는 것은 명백한 협약 위반”이라고 밝히고 있다.  더욱이 국제원자력기구는 환경보호 단체들의 압력과 비핵보유국들의 반발로 인해 70년대 중반 이후로는 저준위 폐기물의 해양 투기도 사실상 금하고 있는 형편이다.

 따라서 환경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해양 투기를 규제하는 런던 덤핑조약에 가입한 회원이면서도 △극동 해역 10개소를 포함한 23개 지역에 계획적으로 해양 투기를 되풀이해 왔으며△이같은 해양 투기가 국제적 규제가 강화된 80년대 후반부터 최근 시점까지도 서행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고 있다.  특히 해류 순환이 활발하고 드넓은 태평양과 달리 동해는 폐쇄된 큰 호수와 같은 성질을 띠고 있는데도 러시아 당국이 당분간 투기가 불가피하다고 공언하고 있어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부의 대응 과정을 보면 이 같은 우려에 대한 해소책은 별로 없는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정부가 앞으로도 상당 기간 러시아 해군의 핵폐기물 투기가 불가피하다고 공언하는데도 정부는 소극적인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옛 소련 정부가 비밀리에 핵폐기물을 바다에 버려왔다는 것은 이미 지난해 10월부터 외신을 통해 때때로 보도되었다.  그러나 과학기술처는 지난 4월2일 일본<아사히 신문>이 구제 규모의 환경보호 단체인 그린피스가 입수한 러시아 정부 보고서 (백서)를 통해 이 사실을 크게 보도해 문제가 되자 4월7일 관계부처 대책회의를 소집해 백서 내용을 분석ㆍ평가하고 동해 연근해의 핵폐기물로 인한 오염도를 긴급 조사하기로 결정했다.  이어 과기처는 5월4일에‘예 소련의 동해 핵 폐기에 대한 긴급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방사능 영향 분석 ‘백사장서 바늘찾기’

 과기처와 원자력안전기술원에 따르면 ‘동해 연근해의 해수ㆍ해저토ㆍ어류, 원자력발전소 부근의 해수ㆍ어류 및 오호츠크해의 어류를 대상으로 감마동위원소(세슘 137과 칼륨 40)와 삼중수소(H₃)의 방사능을 측정한 결과, 자연 상태에서 검출되는 세슘(Cs) 137과 칼륨(K) 40의 극미량이 검출되었을 뿐 다른 인공핵존이나 삼중수소는 검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마다로 ’영향 없음‘으로 요약되는 조사 결과는 예정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이를테면 방사능 분석 시료의 하나로 동해와 오호츠크해에서 5kg씩 채취한 명태에서 ’영향 있음‘을 찾아내기란 애당초 백사장에서 바늘 찾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91년도 동해에서 잡힌 명태는 7천t이고 원양어업으로 오호츠크해에서 잡힌 명태는 14만t이었다.  잡히지 않은 명태까지 고려하나다면 ’영향 있음‘을 찾을 확률이 얼마나 회박한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결국 이번 조사 결과는 원자력안전기술원의 한 관계자의 말대로 식탁의 심리적인 불안감을 해소하려는 목적은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사 결과는 ‘영향 없음’바다는 ‘영향을 발견치 못함’으로 요약하는 것이 정확할 듯하다.  한국 일본 러시아 3국의 공동조사 및 대책 방안 마련을 추진하고 있는 외무부 과학환경과에 따르면, 5월말에 모스크바에서 핵폐기물 투기 지역 공동 조사 방안이다.  또 정부는 런던덤핑협약에 올해 안에 가입해 국제법 테두리 안에서 동해 핵폐기물 공동 대응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다.  그러나 실질적인 제약을 가할 방도가 없음에 비추어 당분간 동해가 러시아의 핵 쓰레기 처분장이 되는 것은 불가피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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