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쌀개방 요구 ‘올해 강행’ 방침확정
  • 남유철 기자 ()
  • 승인 2006.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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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첫 확인...미국 의지 공식화

 ‘쌀시장 개방’문제가 한.미 통상 현안으로 다시 등장할 전망이다. 미국 소식통들에 따르면, 크린턴 행정부는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던 우루과이 라운드를 곧 재개하고, 한국과 일본의 쌀개방 문제를 올해 안에 매듭짓는다는 원칙을 내부지침으로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한편 국내에서는 쌀개방을 저지하기 위한 민간 운동이 앞으로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여론을 효과적으로 선도하고 대정부 로비활동을 벌이기 우해 경릴련을 중심으로 총 1백68개 단체가 최근 ‘우리쌀 지키기 범국민대책회의’를 결성했다.

 새 정부에 대한 민간 단체들의 압력과 로비는 그 어느 때보다 강도가 높으리라 예상된다. 범국민대책회의는 지난 3월22일 한국노종조합총연맹 강당에서 열린 결성식에서 “쌀시장 개방만은 대통령직을 걸고서라도 막겠다고 한 공약을 차질없이 이행할 것을 촉구한다”라고 새 정부에 대한 ‘경고성’ 결의를 채택했다.범국민대책회의 집행위원장을 맡은 金成動 교수 (중앙대.산업경제학)는 “대통령이 공약을 지킬 수 있도록 우리가 돕고 있는 것”이라며 쌀개방 문제에 대한 정치인의 언행과 언론보도를 면밀히 검토해 구체적인 대응책을 세워나가겠다고 밝혔다.

 쌀개방에 반대하는 인사들은 김영삼 대통령의 경제 참모 대부분이 쌀개방을 받아들이려는 ‘성분’을 가졌다고 보고 있다. 일부에서는 수출농업으로 ‘정면 돌파’해야 한다고 주창해온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 ?信行씨를 농수산부장관에 기용한 데서 쌀개방에 대한 김영삼 대통령의 약화된 입장이 엿보인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쌀개방 저지를 주장하는 학계의 한 인사는 “허장관은 사표까지 쓰면서 쌀개방을 반대할 사람이 아니다.장관을 개방과 연결시켜 해석하는 것은 새 정부의 의중을 제대로 읽은 얘기이다”라고 말했다.

미국 “쌀개방은 UR 전진 위한 보루”

 소강 상태에 접어든 우루과이 라운드를 재개하면서 클린턴 행정부는 쌀개방에 관한 한 더욱 강경한 입장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쌀 농업계를 대표하는 최대 로비 단체인 쌀도정협회(RMA)는 클린턴이 집권한 이후 행정부와 의회를 상대로 한국과 일본이 쌀시장을 열게 하라고 집중적인 로비를 벌여왔다.미 의회를 움직이는 최강 로비 단체의 하나로 꼽히는 쌀도정협회의 데이비드 그레이브스 회장은 지난 3월25일 기자와의 국제전화 인터뷰에서 “클린턴 행정부는 올해 말까지 우루과이 라운드를 일단 매듭짓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내부 방침을 최근 확정했다”고 밝혔다.그레이브스 회장은 자기가 직접 농무부장관과 무역대표부 대표를 만났는데, 두 사람 모두 ‘한국과 일본의 쌀개방 문제는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을 통해 올해 안에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확약했다’고 밝혔다.

 클린턴 행정부 고위 당직자들과 정례적으로 만나고 있는 그레이브스 회장은 “우루과이 라운드가 올해 안으로 타결되지 않는다면 크린턴 행정부는 이 문제를 쌍무적으로 해결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우루과이 라운드가 재개되면 한국과 일본의 쌀개방 문제는 일단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 사무총장 아서 던켈이 마지막 협상안으로 제시했던 ’예외없는 관세화‘ 원칙대로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쌀도정협회는 던켈안보다 더 빠른 개방 폭을 요구하고 있으나, 일단 개방이 이루어진다면 개방 폭에 대해 당분간 이의를 달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는 올해 중반기에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한.미정상회담에서 쌀개방 문제의 돌파구를 찾겠다는 기대를 갖고 있다. 그러나 그레이브스 회장은 회담에서 미국이 쌀 문제를 양보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최근 “일본과의 통상 협상에서 조금도 양보할 수 없다”고 발언한 클린턴 대통령이 다자간 협상인 우루광이 라운드에서 한국에게만 예외를 인정해주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레이브스 회장은 “쌍무적인 협상으로 가더라도 미국 정부가 한국의 쌀시장을 지금과 같은 폐쇄 상태로 놔두고 넘어갈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패트 놀만 미국 무역대표부 대변인은 무역대표부의 공식 논평을 요구한 기자에게 “대변인으로서는 쌀 문제와 같은 세부적인 통상현안에 대해 어떠한 논평도 할 수 없다”라고만 밝혔다.

 클린턴 행정부는 표면적으로는 전통적인 미국의 자유무역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의회는 ‘불공정 무역’에 대한 일방적인 보복조처를 취하도록 행정부에 강요하는 슈퍼 301조나, 쌀과 같은 개별 품목에 대한 개방 압력을 구체적으로 추진토록 행정부에 명령하는 입법조처들이 활발이 논의되고 있다.

한국. ‘쌀개방 대세론’ 만만찮아

 산업연구원 워싱턴 지원장은 이러한 법안들이 ‘클린턴 재임중 모두 입법화될 전망’이라고 관측했다. 미국은 협상무기로 사용하기 위해서라도 쌀개방 입법조처를 서두르는 것으로 보인다. 그레이브스 회장은 “민주당계 고참 의원들이 클린턴 대통령과 쌀개방 입법화와 같은 무역법안을 현재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농촌경제 연구원 崔洋夫 부원장은 “미국이 우루과이 라운드 타결을 서두를 이유는 없다. 우루과이 라운드를 결렬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시간을 끌 가능성이 있다”고 관망했다. 미국은 우루과이 라운드를 결렬시켰다는 비난을 피하면서 이해 당사국과 개별적으로 ‘각개격파’식 협상전략을 구사할 것이라는 게 최부원장의 관측이다. “미국의 주 목표는 일본이다. 한국에 대해 쌀개방을 강요하면 반미감정이 커진다는정치적 손실이 있다. 한국과 일본의 현실이 다르다는 것을 최선을 다해 부각시켜야 한다.”

 작년에 농협이 전개한 ‘쌀수입 개방 반대 서명운동’에 참가한 인원은 무려 1천3백만명에 달했다. 전국민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숫자이다. 가장 짧은 기간(40일)에 최대 인원을 동원한 세계 기록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는 사실만 보아도 쌀시장 개방에 대한 국민의 정서가 어떠한지는 확연히 드러난다. 그러나 쌀개방 압력을 막아낼 수 있으리라고 확신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범국민대책회의 결성을 주도한 김성훈 교수가 “대책회의에 참가한 단체마저 ‘결국 개방은 불가피한 것 아니냐’고 생각할 때 무척 곤혹스러웠다”라고 털어놓을 정도이다.쌀개방을 강력히 반대하는 인사들은 이러한 ‘쌀개방 대세론’이 미국의 개방압력보다 더 걱정스럽다고 말한다. 특히 지도층 인사들의 생각은 완연히 개방 쪽으로 돌아섰다는 것이 張原碩 교수(단국대.농업경제학)의 주장이다. 장교수가 인용한 한 여론 조사 결과는, 경제부처 공무원,교수.연구원, 기업인,금융인 등 5백명의 지도층 인사 가운데 80.4%가 쌀시장 개방을 지지했다.

 허신행 농수산부장관은 개방을 ‘저지’하기보다 개방에 따른 ‘대책’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는 장관에 오르기 전에 준비했다가 우연히 취임직후 출간케 된<신농업-한국 농업의 21세기 전략>이라는 책에서 “농산물 시장ㅇ르 개방하는 것은 숙명적이다.개방되지 않기만을 기원할 것이 아니라, 대비책을 마련해 두는 것이 현명하다”라고 지적했다. “농산물 협상이 어떤 형태로 타결되건 관계없이 세계 시장은 벌써 거대한 개방화 물결로 뒤덮이고 있다. 설령 우루과이 라운드 농산물 협상이 결렬되더라도, 우리 나라는 가트 국제수지 조항(18조 B항)의 혜택을 받을 수 없으므로 오는 97년까지 대부분의 농산물 시장을 개방해야 한다. 또 미국처럼 강력한 수출국과 쌍무 협상을 하여 농산물 시장을 하나하나 개방하다 보면 도리어 부리해질 수도 있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지난 60년대 이후 한국은 급속한 공업화를 달성했고, 그 과정에서 농업은 상대적으로 급격히 위축되었다. 67년 1천6백만명이 넘던 농가 인구는 91년 6백7만명으로 줄었다. 농어촌 인구는 해마다 40만~50만명이 줄어드는 추세이다. 그나마 남아 있는 농촌 인구도 고령화되어 농사일을 할 수 있는 실질 인력은 나타나는 통계 숫자보다 더욱 부족하다. 우리 농촌의 ‘몰락’은 그만큼 한국이 급속히 공업국가로 올라섰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루과이 라운드가 아니더라도 농업이 탈바꿈해햐 한다는 사실에는 아무도 이견을 달지 않는다. 문제는 한정된 국가 재원을 농업에 어느 정도 투입하는냐 하는 것이다. 쌀개방에 대한 입장도 결국 ‘개방이냐 아니냐’라는 문제가 아니라, 농업을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농업 정책 문제로 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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