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장’놓고 밥그릇 싸움
  • 이성남 차장대우 ()
  • 승인 2006.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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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사부 ‘약사 한약 취급 허용’조처... 한의학계 “민족의학 말살책”

 재래식 한약장을 놓고 한의사와 약사 간에 업권수호 차원의 해묵은 공방이 다시 불붙었다. 밥그릇 다툼으로 비치는 이 싸움은,지난 3월 5일 보사부가 “약국에는 재래식 한약장 이외의 약장을 두어 이를 청결히 관리할 것”이라고 명시한 약사법 시행규칙 제7조 1항 7호에서 재래식 한약장 금지 조항을 삭제하여 사실상 약사에게 한약 조제.판매을 허용한 데서 비롯되었다. 2월22일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안필준 전 보사부장관이 그만두기 이틀 전에 약사들이 한약을 취급하는 데 걸림돌이 되었던 이 조항을 삭제하는 데 전격 서명한 것이다.

 보사부는 “약사가 아니면 의약푸믕ㄹ 조제할 수 없다”는 약사법 21졸르 근거로, 한약도 의약품이므로(약사법 2조) 약사가 이를 취급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또 91년 9월 “한약을 비롯한 일체의 의약품에 대해 약사에게 조제 판매권을 주는 것이 원칙”이라는 헌법 재판소 합헌결정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전국 한의사, ‘수호집회’등 초강경 자세

 ‘법 논리’를 앞세운 보사부의 이같은 결정에 한의학계는 ‘국민 건강권을 위협하는 편파적 조처’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국민건강권은 법 이전의 문제라고 주장하는이들은 “약사법이 헌법에 보장된 국민건강권을 못 지키고 있으므로 잘못된 법은 고쳐져야 한다”며 초강경 자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지난 12일 대한한의사협회의 전국 15개 시.도지부 소속 한의사 3천여명은 과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한방수호집회’를 개최했따. 또 약사법 개정에 대한 책임을 지고 안학수 회장이 사퇴하고 허창회씨가 신임 회장으로 선출됐다. 경희대를 위시한 전국 11개 한의과 대학은 이번 조처를 ‘민족의학 말살책’으로 보고 23일을 전후하여 수업 거부에 들어갔으면, 졸업준비위원장 8명은 약사법 개정안 철회를 요구하는 무기한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한의학계는 이번 조처를 ‘약사들이 한약을 장악하려는 의도’로 파악하고 한의대와 약대의 교육 과정을 비교함으로써 국민 여론을 환기시키기로 했다. 보사 당국을 향해서는 “한의학 지식 수준이 빈약한 약사에게 사실상의 산방진료권을 허용하여 발생하는 국민 보건의 폐해를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고 일침을 가하고 있다.

 이에 대해 대한약사회는 “약대에도 한약학 본초학 한방개론 임상한방 약용식물학 생약학 천연물화학 같은 교과 과정이 있으며, 졸업후에도 연수 교육과 학회 활동을 통해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있다”고 맞서고 있다. 한의학계에서는 이를 거짓 선전이라고 반박하면서 현재 전국의 약학 대학교 교과 과정은 양약 관련 과목이 대부분이며, 일부 대학만 89년 이후 한약 관련 3~4개 과목을 대학별로 개설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것도 대부분이 선택 과목이므로 현재 개업중인 약사들 대부분은 한약을 전혀 모른 채로 졸업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약학계에서 한약 관련 과목이라고 주장하는 생약학.약용식물학은 한방과 관련이 없다고 맹공을 퍼붓고 있다.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김종렬씨는 “개개의 약물은 특별한 기능을 가진 병사와 같고(본초학), 의사는 아군의 장단점과 허실을 판단하고(생리학),적군의 성질과 침입경로 및 변화법을 파악한 후 (병리학), 병사들을 적절히 배치하여(방제학) 전투에 임하는 장군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약사회의 주장은 병사들의 특징에 대한 지식만으로 전투를 치를 수있다는 말과 같다”라고 설명한다.

 바로 이 점에 대해 경원대학교 한의과대학 이영종 학장(본초학)의 설명은 좀더 명쾌하다.즉 한의학에서 약물이나 약재에 대한 일반적 지칭은 ‘본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서양학문 체계에서 약의 본질은 바로 성분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있다.그렇지만 한의학에서 본초학이란 성분 그 자체가 아니라 개개의 본초가 가지고 있는 심오한 성질,성상을 연구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본초에 대한 인식과 검토가 일찍이 있었더라면 현재와 같은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의대 전공 과정은 한방과 양방 비율이 7대 3 정도이며, 그중 한방 과목은 30개 과목 2백70시간에 달한다. 교과 체계는 한문 원전과 한방생리학 및 한방병리학, 이러한 기초 이론을 바탕으로 경혈학(기가 흐르는 통로에 관한 체계)과 본초학 및 방제학을 배우며 나아가 세부적인 임상 과목을 실습한다.

 현재 시중 약국 상당수는 ‘한방 진단.처방.조제.판매’ 간판을 내걸고 있다. 약사들이 한방 처방을 겸하려는 것은 약국의 경영이 날로 어려워지고 있는 탓이다. 매년 평균 1천3백명의 약사가 배출되고 5백여개의 약국이 새로 문을 열고 있는 상황이다. 한약과 의료보험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어 양약보다 높은 수익을 보장해주기 때문에 많은 약사들이 오래전부터 ‘한약장사’에 눈길을 돌려 왔다. 그러나 약사들의 한약조제지식 습득과정은 허술한 것이 사실이다.대략 세가지 유형인데, △사설학원에서 6개월 정도 수강한 뒤 한약국 종업원으로 취직하여 한약을 취급하는 경우 △개인(무면허)이 실시하는 한방 특강을 2개월 정도 수강한 경우 △각 시도지부 약사회가 주관하는 3~6개월 과정의 한방 특강을 1주 1회씩 수강한 경우 등이다.

 올해 경희대 한의과대학을 졸업한 이영환씨의 경우는 이러한 ‘약국 한방’의 현주소를 잘 말해주고 있다. 그는 82년에 서울대학교 약대를 졸업한 뒤 7년간 약국을 경영하면서 한약 조제를 병행했으나 “약사로서 학술적 한계를 느껴 한의과 대학에 다시 입학했다”고 말한다.

“환자를 실험용으로 사용하겠다는 발상”

 법리를 앞세워 한의학계를 기습한 이번 조처는 국민 건강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할 보사 행정이 약사의 권익을 옹호하는 데만 치우쳤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보사부는 지난 91년에도 이 법규를 삭제하려고 한 적이 있다. 한의학계가 이에 항의하자 “당부에서는 현재 약사법 시행규칙 제 7초 1항 7호를 개정 삭제할 계획이 없음을 알려드리며, 최근 일본에서 사실무근인 유언비어를 퍼뜨려 국가정책을 오도케 함을 매우 유감으로 생각합니다”라고 공문을 대한한의사협회에 내고도 이번에 기습 개정을 한 것이다. 이에 대해 보사부는 1월30일 입법예고를 했지만 공청회 등을 통해 의견을 교환하지는 않았다. 한의학계는 약정당국 관계자가 거의 약사들이어서 약사의 권익 조장에만 힘써왔다고 지적하면서, 이같은 편차적 약무 행정을 시정하기 위해 보사부 내에 한의학 전담국을 설치하고 한의학 관련법을 마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한의학의 논리 구조는 음양오행론에 바탕을 둔 것으로 서양 과학의 논리 구조와는 전혀 다른다. 따라서 음양오행론에 근거한 생리. 병리학을 배우지 않은 약사가 ‘조재권’을 앞세워 한약을 조제하겠다는 발상은 국민건강보다는 수익우선주의에 치우쳤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보사부는 약사법 시행규칙 개정조처가 ‘환자를 실험용으로 사용하겠다는 발상이 아니냐’라는 의혹이 풀리도록 납득할 만한 후속 조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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