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 저자와의 대화]‘입말’을 되살려야 한다
  • 김춘옥 편집위원대우 ()
  • 승인 1989.1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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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로쓰기》 펴낸 李五德씨

인간의 의식은 말이라는 소리로 나타나고 말은 글로써 형상화된다. 그런데 지금 이 당에서는 이같은 통시적 언어현상이 거꾸로 나타나고 있다. 글이 말을 지배하고 말은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글말’이 우리의 언어생활을 지배하게끔 부추기는 역할을 신문 · 방송이 상당히 하고 있다. ‘입말’을 되살리는 운동을 펼쳐야 할 때가 왔다.

《우리반 순덕이》(85년) 《교육일기》(89년) 등의 저자이자 아동문학가로 활동하던 李五德선생(평생을 국민학교 교사로 보냈으니 이 칭호가 가장 어울릴 듯하다)이 최근 펴낸 《우리말 바로쓰기》의 전체적 흐름이 바로 위과 같다.

43년간 시골에 살면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무엇보다도 글쓰기 교육을 중점적으로 시키던 李선생이 우리말에 각별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인 듯싶다. 어린이들이 지은 글을 읽으면서 우리 말이 “농민이 농사지으면서 정하고 사용했던 것”이지 “서울의 중류가 썼던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李선생은 말을 “입으로 하고 듣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므로 “우리말을 꽁꽁 묶어 두는 한자”나 “우리말을 병들게 하는 일본말”이나 “이 땅에 홍수가 진 서양 외래어”들은 자연스런 우리 ‘입말’을 그릇되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러한 예는 숱하게 많다. “회담이 무산됐다” “30년만의 조우”같은 표현은 “회담이 깨졌다” “30년만의 만남”과 같은 일반 백성의 말로 고쳐써야 한다. 주격조사 ‘가’는 임진왜란 뒤부터 쓰인 것이고(金烈圭교수의 주장), 관용어 ‘的’도 일본인들이 메이지유신때 ‘로맨틱’이란 서양말을 ‘낭만적’이라고 번역한 데서 유래했다.

최근 남북체육회담때 남북단일팀의 명칭을 ‘코리아’로 합의한 것 역시 李선생에게는 “한심스럽게” 보였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제나라 이름만은 국제무대건 어디서건 주체성을 갖고 밀고 나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일제시대만 해도 우리말은 살아있었지요. 일제때의 일본어 오염을 분단 45년 동안에라도 고쳤어야 했는데 오히려 외래어가 들어와 더 혼란스럽게 했습니다.” 李선생은 최근 연변에서 온 작가 김학철씨를 만나 얘기를 나누는 동안 그의 말이 살아있는 것을 알고 더욱 더 이처럼 느꼈다고 한다.

제1장 <한자말에서 풀려나기>, 제2장 <우리말을 병들게 하는 일본말>, 제3장 <서양마라 홍수가 졌다>에서 제기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명백하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말을 살리려면 글을 살리면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제4장 <말의 민주화(1)>, 제5장 <말의 민주화ㅏ(2)>, 제6장 <글쓰기와 우리말 살리기>에 제시되어 있다.

무엇보다 글을 쉽게 써야 한다. 입으로 하는 말처럼 써야 한다. 같은 입말도 글을 읽지 않는 무식한 사람들이 하는 말같이 써야 한다. 글을 쓰는 사람들도 어렵게 쓰기는 쉽고 쉽게 쓰기는 어렵다고 한다. 말의 민주화란 바로 이런 취지에서 만들어낸 용어다. ‘춘부장’대신 ‘아버지’가 쓰이고 작년까지만 해도 잘못된 말이라고 했던 ‘가세요’ ‘오세요’가 이제는 표준어가 됐다. 우리의 시대상황에 맞는 말의 민주화가 하루 속히 이뤄져야 한다.

언어의 특징이 자연적 · 시대저거 산물이라는 점과 그렇기 때문에 언어의 가변성은 학자들 사이에 이미 널리 인정되어오고 있는데 《우리말 바로쓰기》에서 편 주장은 지난 세대의 우리말만을 너무 고집한다는 일부 의견도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발간된 지 한달만에 재판을 찍게 된 데는 李선생의 우리글 사랑이 유별나기 때문이리라. 오랫동안, 꼼꼼하게 또 나름대로 체계적으로 제시된 여러가지 예문들이 바로 이같은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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