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백색 테러와 ‘사생결단’
  • 칭다오 · 정유미 통신원 ()
  • 승인 2006.05.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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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퇴치 ‘인민전쟁’ 한창…‘마귀’ 등 신종도 계속 늘어 골머리

 
중국에서 노동절 연휴가 끝나고 처음 맞는 주말인 지난 5월13일, 산둥성 칭다오 시 공안국 마약 단속반이 쇼핑 중심가인 타이동을 급습했다. 중국 공안이 타이동을 뒤진 것은 5월 들어 벌써 두 번째. 노동절인 1일에는 ‘정신을 놓은 듯한 사람이 있다’는 시민 신고를 받고 출동해 마약중독자 두 명을 그 자리에서 체포하기도 했다. 

마치 한국의 명동처럼 쇼핑 인파로 붐비는 곳에서 유난히 남루한 행색의 남자들이 간혹 눈에 띈다. 사복 차림을 한 공안은 이들 대부분이 인근 공사장의 농민공들이지만 소매치기나 마약 중독자들이 섞여있을 수도 있다고 귀띔했다.

사람들의 왕래가 가장 잦은 타이동 네거리 월마트 근처 뒷골목에서 쓰러져 자고 있는 한 남자의 겉옷 주머니를 뒤지자, 한눈에 마약 투약용임을 알 수 있는 비위생적인 일회용 주사기가 나왔다. 단돈 1위안(약 120원)이면 동네 구멍 가게에서도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주사기였다. 사복 공안은 비틀거리는 남자의 귀 아래 급소를 손가락으로 눌러 쓰러지게 한 다음 수갑을 채워 차에 태웠다.
 
중국 공안은 범죄자를 체포하거나 심문할 때 폭력 사용이 용인된다. 그러나 공공 장소에서는 사람들의 이목을 고려해 무자비하게 폭행을 가하기보다는 급소를 공략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 체포된 남자는 단속 차량에 오르고 나서도 상황 파악이 되지 않는지 계속 횡설수설했다.
 
길거리에서 체포되는 마약 중독자 중 대부분은 강제 노동 교도소로 넘겨진다. 현재 중국 노동 교도소에 마약 투약 혐의로 수용된 재소자만 6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중국은 마약 사범에 대해 가장 엄격한 국가이다. 중국 형법은 ‘1kg 이상의 아편’ ‘50g 이상의 헤로인’ 필로폰 또는 많은 수량의 기타 마약을 밀수·판매·운송·제조한 경우, 15년의 유기 징역이나 무기 징역 또는 사형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중국 공안, 마약 사범 체포 때는 폭력 사용 용인

외국인도 예외는 아니다. 산시성 셴양 등지에 마약 재활원이 설치되어 있기는 하나 마약 사범의 수에 비해 수용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 따라서 대부분의 마약 중독자가 제대로 된 재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출소함으로써 악순환이 계속되는 실정이다. 
 
 
마약 단속반은 이 날 오후 8시 이후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한 나이트클럽으로 자리를 옮겼다. 시청에서 불과 세 정거장밖에 떨어지지 않은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클럽이다. 요즘 들어 클럽과 술집에서 마약 판매 및 흡입이 빈번하게 이루어지면서, 주말이면 유흥업소에 대한 단속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이들 업소에서 주로 거래되는 마약은 중국에서 일명 ‘아이스’로 불리는 필로폰. 몇 g씩 소량으로 2백 위안(약 2만4천원)에서, 많게는 1천 위안(약 12만원) 정도면 쉽게 구입할 수 있어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한 학생들에게까지 달콤한 유혹이 되고 있다. 

이날 유흥업소 단속은 검거자 없이 막을 내렸지만, ‘2주 전 필로폰을 비닐 봉지에 넣어 가지고 다니는 사람을 봤다’는 제법 쓸만한 제보를 수집했다. 공안 측은 요즘 마약 판매업자들이 돈이 많고 외국에서의 새로운 경험에 대한 호기심이 강한 한국 유학생들을 상대로 접근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칭다오 시의 시내 중심가, 그것도 한국 사람들이 밀집해 살고 있는 지역에서 일어난 마약 사건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외국인이 많이 출입하는 고급 술집에서 한 남자가 종업원과 말다툼을 벌이다 옆 탁자에 있던 양주병을 들어 머리를 치고 달아난 것이다. 체포 후 조사에서 이 남자는 헤로인을 과다 복용한 상태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처럼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중심가에서 버젓이 이루어지는 마약 범죄를 집중 단속한 것은 중국 정부가 지난해 4월 선전 포고한 ‘마약 단속 인민 전쟁’의 일환이다. 수 년 전부터 마약이 빠른 속도로 전국으로 퍼지고 있으며 필로폰이나 케타민 같은 약물은 이미 손쉽게 구할 수 있을 정도로 보편화해 있다는 것이 중국 언론들의 지적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부터 2008년까지 3년 동안 마약과의 전쟁에 총력을 기울이기로 하고, 이를 위해 총 10억 위안(약 1천2백억원)가량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중국은 또한 지난 3월 최고입법기관인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6월 중에 마약금지법안 심의를 시작하겠다고 공포함으로써 마약 단속 의지를 분명히했다.

사회에서 소외된 실업자·농민이 주 소비층

그럼에도 각종 신종 마약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정부의 단속 의지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신종 마약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제조·유통되면서 단속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 지난 4월에는 후베이성 우한에 있는 한 대학 실험실에서 대학 부교수가 버젓이 신종 마약을 제조하다 적발되어 중국 사회에 충격을 던졌다. 의학원 약제학부 부교수였던 왕모씨가 메틸암페타민, 향료에센스와 색소 등 배합제를 이용해 신종 마약인 ‘마궈(麻果)’를 제조해 판매 조직에 팔아넘기다 적발된 것이다. 
 
 
중국마약퇴치위원회는 중국의 마약 복용자수가 해마다 꾸준히 늘어 실제 복용자 수는 정부 공식 집계의 10배에 이르는 1천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특히 마약 중독자 가운데 35세 이하 청년층이 약 70%를 차지해  청소년을 비롯한 젊은이들의 마약 중독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1998년 청년층 마약 사범의 비율이 12.5%에 불과했던 데 비하면 놀랄 만한 급증세를 보인 것이다.

직업 별로는 실업자와 농민이 각각 45%, 30%로 집계되었다. 자본주의의 확산 속에서 좌절을 맛본 실업자 및 농민들이 마약의 유혹에 쉽게 빠져들고, 마약을 사기 위해 범죄자로 전락하는 악순환이 빚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뒤늦게 마약 예방 교육을 강화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최근에는 각 학교를 중심으로 자체 예방 운동이 확산되면서 상하이의 명문 푸단(復旦) 대학을 비롯한 각 대학에서도 청년 마약 예방 봉사단이 결성되어 활동하고 있다. 중·고등학교에서도 자체적으로 마약 예방 교육을 실시하며 일찍부터 마약의 해악을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북한 마약 ‘유입’ 비상…국경 경계 강화

농촌 사회가 마약에 위협받는 가운데 베이징·광저우·칭다오 등 경제 도시 역시 마약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다. 특히 동남부 경제 도시의 무역항들은 한국으로의 직접적인 마약 전달 통로가 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최근에는 중국에서 100억원 대의 마약을 밀반입해 국내에 유통시킨 조직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특히 이들이 유통시킨 마약을 고위층 자제들이 상습적으로 투약해온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었다.
 
 
중국에 있는 마약 조직들이 마약을 밀수출하는 차원을 넘어 국내에 직접 들어와 파는 경우도 늘고 있다. 중국으로 간 한국의 마약 기술자들이 주로 동북 3성(지린, 랴오닝, 헤이룽장)을 중심으로 마약을 제조, 국내에 반입하는 형태이다.

중국으로 마약이 들어오는 주요 경로는 태국·미얀마·라오스 등 세 나라 인접 지역인 ‘황금 삼각 지대’와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이란 등 세 나라 인접 지역인 ‘황금의 초승달 지역’, 그리고 한반도 등 세 갈래 통로이다. 100만명의 조선족이 거주하고 있는 북한과  중국의 국경 일대는 최근 들어 마약 암거래가 가장 횡행하고 있는 곳으로 특히 주목되고 있다.
 
동북 3성 지역에는 필로폰의 원료가 되는 마황의 자생지가 산재한 데다, 공공연하게 재배하는 곳도 많아 원료 수급이 용이하다는 점이 마약 조직을 끌어들이는 요인이 되고 있다. 최근 한족들까지 필로폰 제조에 가세해 조직의 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있으며, 이들을 이용해 산둥성 등 다른 지역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동북 3성 지역을 통해 북한의 마약이 중국으로 대거 유입되자 중국은 지난해부터 북한에 인접한 국경 지역의 경계를 강화하고, 북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마약 거래 단속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중국 해관총서 밀수단속국의 고위 관리가 동북 3성이 한반도의 마약 위협에 직면해 있다고 공식 언급해 경각심을 더했다.
 
 
미국이 위조 지폐와 돈 세탁을 비롯해 마약·인권·핵문제 등을 거론하면서 끊임없이 북한을 압박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은 이미 경제 분야에서 상당히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한 중국에서까지 직접적인 압력을 받게 된 것이다. 현재 중국은 북한 마약의 최대의 시장으로 자리 잡은 상태다.
 
중국은 마약에 대해서는 특히 알레르기가 심하다. 19세기 초 청나라를 파멸로 몰고 간 것이 바로 마약이었기 때문이다. 아편전쟁이 일어난 지 160여 년이 지난 지금 마약은 또다시 중국 대륙을 위협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이 마약을 망국병의 원흉으로 지목하고 ‘마약과의 전쟁’을 선언한 가운데 중국이 ‘백색 가루’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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