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로 ‘작업’하기
  • 천정환 (문화 평론가) ()
  • 승인 2006.05.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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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23일, 대학가 술집에서 친구들과 함께 세네갈과의 평가전을 보았다. 늘 그랬던 것처럼, 맥주잔을 앞에 놓고. 그날 그 술집에서도 2002년 난생 처음으로 경험한, 그러나 그 뒤로 겨우 익숙해진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남녀(대학가 술집이라 ‘노소’는 없었다)가 한데 어울려 축구를 보는 그런 ‘바람직한’ 모습 말이다.

세네갈전을 보던 젊은 남녀들은 축구 때문에 서로 친해지고 있었다. 물론 반은 위대하신 주(酒)님 덕분이었겠지만, 남자는 축구 때문에 저절로 솔직해진 모습을 보여주었고, 여자도 마음을 열고 있는 듯했다. 텔레비전 화면에서 경기가 뜨거워질수록 남녀가 가끔씩 주고받는 눈길의 온도도 오른 듯, 김두현의 슛이 골문에 빨려 들어갈 때 남녀는 자연스럽게 껴안기도 했다. 함께 얼굴이 빨개지며. 그것은 사랑스런 모습이었다.   
정작 축구에는 집중을 하지 않고, ‘청춘사업’에 축구를 도구로 삼는다는 것이 참 좋았다. 그렇게 축구는 핑계여야 한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그래야 한다. 2003년 출생자 중에 ‘월드컵 베이비’가 많다던가. 월드컵은 잔치이지, 한풀이나 ‘애국질’하는 데가 아니다.

토고전이든 프랑스전이든, 평소에 감정 쌓인 친구나 아직은 혼자 좋아하기만 하는 이성 친구나, 가족 중에 애먹이는 놈이나, 사업상 더 친해져야 할 거래처 사람이 있으면 데리고 같이 맥주집으로 가자. 
어려운 그들과 같이 앉았으니 우선 축구에 무지한 그(녀)에게 몇 가지 관전 포인트를 알려주어라. 그리고 맥주를 권하라. 가장 주의할 점은 주변 환경이 어떻더라도 결코 축구에만 몰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축구 보기와 ‘작업(대화)’을 4 대 6정도로 적당히 잘 배분해야 한다.
같이 축구 볼 때 가장 짜증나는 스타일은, 국가대표팀 경기 외에는 축구를 거의 보지도 않으면서, 축구에 대해서는 정작 X도 모르면서, 승부에만 몰입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상대편 선수의 부상이나 퇴장을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꼭 심판에게 욕설을 해댄다.

띄엄띄엄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서 그(녀)의 눈 속 깊은 데를 들여다봐라. 그러면서 그전부터 하고 싶었던 말을 꺼내 놓아보자. 기회를 놓치지 말고, 더 자주 ‘쨍잔’을 하라. 물론 축구는 좀 덜 재미있을 것이다. ‘경기의 흐름’을 놓치기 십상일 테니. 그러나 90분이 다 지나고 나면 알딸딸한 상태에서 그(녀)와 훨씬 친해져 있을 것이다. 최소한 그(녀)에 대해 훨씬 많이 알게 될 것이다. 덜 집중하면 지더라도 화가 덜 난다. 그러나 졌다고 진짜 화를 내면 모든 건 끝장이다. 그러나 그(녀)의 화는 받아줘라.
그러면 3 대 0으로 지더라도 그(녀)와 ‘한잔 더!’ 하는 데에 아무 지장 없을 것이다. 그때 비로소 우리들의 축선(蹴仙)은 완벽히 당신을 축복하여 복을 내릴 것이다. 그러니 축구를 싫어하는 당신도 이번엔 마음을 좀 열어라. 외로운 축구 팬인 그 녀석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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