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훌훌,마음 훌훌 달콤한 무아지경
  • 윤용인(노매드 대표 & 딴지관광청장) ()
  • 승인 2006.06.21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팔라우 록아일랜드 무인도 여행

 
여태까지 다녀본 곳 중 어디가 가장 좋았어요?’이 질문이 바다와 연관된 것이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렇게 말한다. ‘팔라우’.

남색 바다, 쪽빛 바다, 에머랄드 바다등, 최고의 바다 예찬에 빠지지 않는 그 컬러에 가장 충실한 바다가 바로 팔라우에 있다. ‘죽기 전에 가봐야 할 꿈의 여행지’라는 다이버들의 팔라우 찬사도 오버는 아니다. 바다가 마술을 부린다면 믿겠는가? 정말로 팔라우의 바다는 마술을 부린다. 광선의 변화에 따라 시도 때도 없이 색깔이 변한다. 녹색이 됐다가 연두가 되고 블루가 되었다 우윳빛도 된다.

시원하게 바다를 가르는 스피드 보트에 앉아 바라보는 락 아일랜드의 풍경은 바다 색깔만큼이나 압권이다. 밀어를 속삭이는 듯한 바다와 하늘의 조화, 수없이 나타나는 무인도는 기기묘묘한 형상과 푸르름으로 자칫 망망대해의 허전함에 양념같은 채움의 미를 선사한다. 누구나 계관 시인이 될 수 있는 곳이 팔라우다.

미국에 있어서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한 이 팔라우를 내가 잊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나의 여행자체가 워낙 특별했기 때문이었다. 이른바, 무인도 여행.

 
락아일랜드 관광을 하던중 우연히 사람이 살지 않는 섬 하나에 눈길이 끌렸다. 이 섬은 여느 무인도처럼 사람의 손이 타지 않아 방치되어 있는 듯한 섬이었지만 작지만 예쁜 백사장과 높이 솟은 야자수가 참 멋진 섬이었다. 보트를 세우고 그 섬에 들어간 지 5분도 안되어 나는 그 섬에 푹 빠져 버렸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섬은 알파벳 C자의 모습으로 섬 중앙으로는 무릎 정도 깊이의 바다가 가로 지르고 있었는데, 섬 중앙은 마치 밀림과 같은 녹색지대인데다가 섬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은 정물화 속에 들어 앉아 있는 착각이 들게 할 정도였다.

무인도에 반한 나는 남은 이틀의 일정은 다 취소해 버리고 그냥 이 곳에서 보내겠다고 선언했다. 그 때 함께 여행하던 친구는 반짝이는 호기심을 보였지만 다소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우리는 다시 뭍으로 가, 이틀치 식량과 야영 장비를 준비하고 다시 무인도로 돌아왔다.

다시 도착한 내 무인도. 도착하자마자 이 섬 주인이 엉성하게 만들어 놓은 비를 피할 임시 공간에 짐을 풀고는 생선 한마리를 바베큐하여 소주 한 병을 마셨다. 아무리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는 것은 눈을 들어 하늘을 보면 쏟아질 듯 떠 있는 별빛이요 앞을 보면 잠든 바다와 그 속에 뽀얗게 잠겨있는 달이 주는 기운 때문이리라.

담요를 깔고 잠자리에 들었을 때도 신묘한 섬의 공기가 몸 전체를 공중으로 붕 떠오르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오랜만에 싱싱한 사람 냄새를 맡은 모기들의 파상 공격에 여기 저기 모기향을 피우느라 난리를 떤 이후에야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잠을 잤을까? 친구는 벌써 일어나 저쪽에서 코코넛을 따느라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난 후 어슬렁거리며 섬 주변을 거닐었다. 출출함을 느껴 빗물을 받아 늦은 아침밥을 해먹고 책 하나를 들고 해변에 누웠다. 입고 있는 수영복도 거추장스러워 홀랑 벗어 버린 후 책을 읽었다. 한없는 해방감이 아찔할 정도다. 팬티 한 장이 주는 구속의 무게가 이렇게 큰 것이었나?

섬에서의 시간은 뭍에서의 시간보다 두 배는 빨리 가는 것 같다. 자다가 책을 보다가 수영도 하고 스노클링도 하다가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는 야생 닭들을 잡으려 뛰어 다니던 사이에 벌써 하루가 다 지나갔다. 둘째날 밤은 음식 냄새를 맡고 어디선가 기어 내려온 대여섯 마리의 쥐들과 동무하며 함께 잠을 잤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리며 배를 타야했다. 그 아름다운 섬 팔라우의 무인도 여행은 내 기행의 이력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지금도 그 섬만 생각하면 내 마음은 온통 남색이 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