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퇴치에 앞장선 ‘무혈’ 첨단 치료기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6.06.27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이버 나이프·토모 테라피 등 종양 제거에 효과 ’탁월’

 
정홍진씨(75)는 2003년 말, 폐암3기 진단을 받았지만 나이가 많아 수술을 받기가 어려웠다. 노인들은 체력이 약해 수술을 하더라도 부작용이나 후유증에 시달리기 쉽기 때문이다. 정씨는 수술을 포기하고 항암제 치료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절망하기에는 일렀다. 정씨는 암 환자 모임을 통해 사이버 나이프 치료에 대해 알게 되었다. 수술하지 않고도 종양을 제거할 수 있는 새로운 치료법이 개발되었다는 말을 들은 것이다. ‘사이버 나이프(Cyber knife)’ 치료였다. 정씨는 사이버 나이프 장비가 있는 종합병원을 찾았다.

사이버 나이프 치료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하루에 한 시간씩 삼일 동안 치료받았는데, 거짓말처럼 종양이 사라졌다. 그 뒤 다른 부위에 암이 재발해 정씨는 두 차례 더 사이버 나이프 시술을 받았지만, 일상생활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정씨는 “사이버 나이프 치료를 받지 않고 수술이나 항암제 치료만 했다면 내가 지금처럼 건강하게 살 수 있었을까. 치료비가 비싼 것이 흠이지만, 사이버 나이프는 내 생명뿐 아니라 건강한 생활까지 선물로 주었다”라고 말했다.

가장 큰 단점은 비싼 치료비

정씨처럼 첨단 치료 장비의 도움을 받아 암에서 해방된 환자들이 최근 크게 늘고 있다. 병원들이 사이버 나이프·토모 테라피·하이푸 나이프·양성자 치료기 등 최첨단 무혈 수술 기기를 경쟁적으로 도입한 덕이다(딸린 기사 참조). 이 첨단 무혈 치료 장비들은 CT(컴퓨터단층촬영)나 MRI(자기공명영상촬영) 같은 첨단 영상 기술을 이용해 몸속 병소에 방사선이나 초음파를 집중적으로 보내 종양을 파괴한다. 기존의 방사선 치료는 몸속에 무작위로 방사선을 쪼이기 때문에 종양뿐 아니라 건강한 장기나 조직까지 해칠 위험이 높았다. 그래서 종양을 제거할 만큼 충분한 방사선을 몸속에 보낼 수 없었다. 그러나 이들 기기는 첨단 영상 기술의 도움을 받아 방사선이나 초음파를 건강한 장기에는 적게 보내고, 종양에는 집중적으로 보낸다. 방사선 치료의 부작용은 최소화하고 종양 제거에는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암과 사투를 벌이는 환자나 보호자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어서 새로운 치료법만 나오면 귀가 솔깃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정홍진씨가 지적한 것처럼 이들 첨단 치료 장비를 이용한 치료에는 돈이 많이 든다.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해 보통 1천만원을 훌쩍 넘는다. 게다가 이들 치료기가 모든 암을 치료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같은 암 환자라고 해도 치료 효과가 달리 나타날 수도 있다. 기기마다 원리와 특징이 달라 어떤 암에는 획기적인 치료 효과를 보이고, 또 다른 암 앞에서는 무용지물인 경우도 있다. 때로는 이런 첨단 기기보다 수술이 효과적일 수도 있다. 각각의 기기가 어떤 특징이 있고, 어떤 암을 치료할 수 있는지 살펴본다.

사이버 나이프-미사일처럼 정확히 종양 파괴

 
사이버 나이프는 우주항공 기술과 로봇 기술을 접목해 개발한 방사선 치료기다. 미사일이 움직이는 목표물을 정확하게 맞히는 것처럼 환자 몸의 위치 변화에 따라 초점을 맞춰가며 방사선을 보낸다. 뇌는 물론이고 웬만한 신체 부위는 다 치료할 수 있다. 특히 위나 대장처럼 호흡에 따라 움직이는 장기 치료에 강하다. 또 1~5회 정도만 치료받으면 종양이 제거되어 일주일 만에 치료가 끝난다.

원자력병원이 지난 3년 동안 1천여 명의  환자를 치료했는데, 수술이 불가능한 암 환자 70% 이상에서 종양을 완전히 제거했다. 수술이 불가능한 조기 폐암과 췌장암, 대장암에서 간이나 폐로 전이된 암, 자궁경부암에서 대동맥으로 전이된 암 등에서 특히 치료 효과가 탁월했다. 일반 방사선 치료로 종양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확률은 30%에 불과하다.

물론 사이버 나이프가 만능 암 치료기는 아니다. 종양이 6cm 이상으로 너무 크면 치료하기 힘들다. 또 현재는 방사선을 1백80도 방향으로만 보낼 수 있기 때문에 몸 뒤쪽에 있는 종양 치료에는 적용할 수 없다. 원자력병원 조철구 박사(방사선종양학과)는 “2백70도까지 치료할 수 있는 기계가 곧 나올 예정이어서 머지않아 몸 뒤쪽에 있는 종양도 치료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사이버 나이프 치료는 원자력병원과 강남 성모병원에서 받을 수 있다. 치료비는 뇌와 두경부(얼굴과 목) 종양은 보험 적용이 되므로 2백만~3백만원, 목 아래로는 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1천만원 정도 든다.

토모 테라피-주먹만 한 암도 ‘격파’

‘토모 테라피(Tomo Therapy)’는 진단 영상기인 CT처럼 3백60도 방향에서 방사선을 보낸다. 방사선 발생 장치가 한 바퀴 회전하면서 방사선의 세기와 모양, 크기를 자동 조절하며 방사선을 내보내기 때문에 종양 부위를 정확하게 조준할 수 있다. CT 기능이 추가되어 있어 CT 영상으로 보이는 종양 부위에만 방사선을 집중 조사(照射)하고, 건강한 조직에는 방사선을 적게 쪼인다. 그래서 치료할 수 있는 암 세포의 크기에 제한이 없다. 암 세포가 여기저기 퍼져 있더라도 종양에만 집중적으로 방사선을 조사해 건강한 조직에는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연세암센터 방사선종양학과 금기창 교수는 “토모 테라피는 암 세포가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다발성 암, 두경부암, 식도암, 폐암 등에서 치료 효과가 뛰어나다. 뇌 및 척수, 골수이식 분야 등에서도 치료 효과가 좋다”라고 말했다. 자궁경부암의 경우 방사선 치료를 하면 바로 옆에 있는 직장에 염증이 생길 수 있는데, 토모 테라피는 그런 부작용을 줄인다. 

약점은 사이버 나이프보다 치료 기간이 길고 가격이 더 비싸다는 점. 토모 테라피 치료는 보통 한 달 이상 걸리고,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치료비가 2천만원이 넘는다. 가톨릭의대 성모자애병원과 연세의대 세브란스병원 두 곳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하이푸 나이프-가슴 절제 않고도 유방암 치료

 
‘하이푸 나이프(HIFU Knife)’는 고강도의 초음파를 종양에 집중하여 순식간에 발생하는  65~100℃ 고열로 종양을 태워 없애는 기기다. 여의도 성모병원 한성태 교수(하이푸 암치료센터 소장)는 “인체에 무해한 초음파를 이용해 암 세포만 선택적으로 골라 없애기 때문에 주변 장기나 조직에 손상을 입히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하이푸 나이프로는 유방암·골육종암·췌장암·간암·자궁근종 등을 치료한다. 특히 유방암의 경우 유방을 절제하지 않고 내부 종양만 제거하기 때문에 최적의 치료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초음파가 너무 두꺼운 조직은 통과하지 못하기 때문에 몸 안쪽에 있는 위암·폐암·뇌종양·혈액암 등의 치료에는 적용할 수 없다. 전신마취를 한 뒤에 치료해야 한다는 점도 단점이다. 

치료 시간은 암의 크기나 위치에 따라 다르지만 3㎝ 크기 종양 하나를 없애는 데 한두시간 정도 걸린다. 비용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1천만원 선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여의도 성모병원과 부산 해동병원, 광주 호남병원, 포항 한동대 선린병원 등에서 시행하고 있다.

양성자 치료기-4백80억원짜리 기기, 가동 준비 끝

양성자 치료기는 양성자(수소 원자핵을 구성하는 소립자) 원리를 이용해 암을 치료하는 최첨단 방사선 치료기다. 양성자를 사람 몸속에 투입하면 암 조직에 도달할 무렵 에너지 흡수가 절정에 달해 암 세포만을 집중적으로 파괴할 수 있다. 즉 양성자 치료기로 방사선을 체내에 보내면 정상 세포가 있는 곳은 그냥 통과하다가 암 조직에 도달한 순간 힘을 발휘하며 종양을 파괴하는 것이다.

 
그래서 두경부종양·안구종양·전립선암·유방암 같은 다른 치료법으로는 곤란했던 암 치료에 주로 활용된다. 안구종양의 경우 기존에는 안구를 들어내야 했지만, 양성자 치료를 받으면 암 세포만 선택적으로 죽이므로 안구를 보호할 수 있다.

양성자 치료기는 도입 비용만 4백80억원에 이르는 초고가 장비여서 국내는 현재 국립암센터에서만 ‘도입중’이다. 국립암센터는 장비 설치가 끝나는 올가을에 시험 가동을 시작하고, 내년 초부터 환자 치료에 활용할 예정이다. 치료비와 보험 적용 여부는 아직 미정이지만, 국가 재정으로 도입된 장비여서 꼭 필요한 환자들이 돈 때문에 치료를 못 받는 경우는 생기지 않을 것 같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