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월 드컵, 축구가 망가졌다
  •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6.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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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기술·공격· 스타·샛별 없는 맥 빠진 대회…한국 비롯한 아시아 축구는 ‘사망 직전’

 
월드컵은 끝났다. 달력에 X자를 그어가며 손꼽아 기다렸고 개막되자마자 시간표를 부여잡고 지켜보았건만 월드컵은 꼭 한 달 만에 떠나버렸다. 7월9일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앞으로 4년을 기다릴 수 있을까? 

새벽잠을 설치며 텔레비전 앞을 지키거나 하루 종일 졸음을 쫓아야 하는 고된 싸움은 이제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가슴 한 구석이 아리다. 아쉬움은 좀체 사라지지 않는다. 이번 월드컵은 월드컵답지 않았기에 더더욱 그렇다.
골을 먹은 골키퍼마저 감탄할 만한 골도, 수비수들조차 골문으로 휘어가는 골을 보고 싶어 등을 돌릴 만한 프리킥도 없었다. 결승전마저 승부차기로 끝났다. 무엇보다 반짝이는 샛별이 없었다는 것은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슬픈 점이다.

∇공격도 기술도 없다
스위스와 우크라이나의 16강전이었다. 독일 ZDF방송의 간판 해설자 벨라 레티 씨의 중계를 잠시 옮겨본다. 연장전이 시작되자 레티 씨는 “시간이 아깝다. 골든골(연장전에 골을 넣으면 경기가 끝나는 제도)이 다시 생겼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잠시 후 말을 고쳤다. “어차피 두 팀에는 골을 넣을 선수도, 그럴 생각도 없다”라고 말했다. 잠시 후, 그는 망설이다 말했다. “관중에게 미안해서 말을 하지 않으려 했는데 참 돈이 아까운 경기다. 긴장할 부분이 없어 식사를 하기에는 가장 좋았던 게임이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미국 메이저리그 축구보다 못한 경기가 계속되고 있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공격 축구가 실종되어 빛나는 장면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1980년대 수비 축구의 전형을 사용해 유로2004에서 우승한 그리스의 전술이 유럽 모든 팀에서 되살아났다. 16강에 오른 거의 모든 팀이 오직 지지 않기 위한 경기를 했을 뿐이다. 열명으로 만리장성을 쌓는 팀도 있었다. 대부분의 팀들은 공격 때도 수비 네 명과 미드필더 두 명을 수비 진영에 남겨놓는 전술을 썼다.

아르헨티나가 독일에 당한 것은 선취골 한 점을 지키려고만 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가 안방의 독일을 깬 것은 빗장 수비가 아니라 쉼 없는 공격이었다. 그러나 골을 넣는 능력이 탁월한 프랑스조차도 전반에 한 골을 뽑으면 잠그기 작전을 가동했다. 프랑스가 결승에서 이탈리아에게 무너진 결정적인 이유다. 브라질은 비에라·마켈렐레·튀랑 등 터프한 프랑스 수비수 앞에서 몸을 사리기만 했다. 접근조차 하지 않았다. 브라질 선수들은 월드컵에서 의욕을 보이지 않았다. 포르투갈은 문전 주변을 연방 두드리다가 무릎을 꿇었다. 프랑스에 유일하게 동점골을 뽑아낸 나라는 한국뿐이었다.

호나우지뉴와 크리스티안 호날두가 돌파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전문가들은 살인적인 리그 일정에 각종 컵대회, 유럽 클럽 간 대항전이 겹쳐져 피로가 선수들의 발을 묶었다고 분석했다. 또 스타도 팀 승리를 위한 한 톱니바퀴로 전락해서 창조적인 플레이는 보이지 않았다고 평하는 전문가들도 있었다.
독일이 테크니션들의 무덤이었던 또 하나의 요인은 바로 잔디다. 잔디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지 않는 것은 독일 선수들뿐이었다. 선수들이 드리블하다 공을 자주 밟은 것은 공인구인 ‘팀가이스트’의 문제라기보다 시즌을 뛰며 지친 잔디들의 건강 상태 때문이었다.

수비를 강조했던 독일월드컵은 이변을 허락하지 않는 월드컵으로 기록될 것이다. 멋진 경기를 하는 팀이 계속해서 고배를 들고, 수비 축구팀이 승승장구하는 것은 팬들에게는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런 월드컵이 거듭된다면 월드컵 열병은 머지않아 수그러들 것이다.

∇스타가 없다
축구 전문가라 불리는 사람들 가운데 반은 호나우지뉴의 월드컵이 될 것이라고 했다. 나머지 반은 루니의 월드컵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전문가들의 예상은 골문에서 한참이나 빗나갔다. 1등 전문가 펠레도 마찬가지다. 전성기를 구가하던 호나우지뉴·루니·솁첸코·발라크·판니스텔로이 등은 스타 선배들의 기량에 미치지 못했다.

10년 동안 세계 축구판을 지배한 지단·호나우두·피구는 축구 인생의 황혼에서 마지막 월드컵을 맞았다. 다리에 힘이 빠져 있던 슈퍼 스타들은 월드컵에 맞춰 마지막 불꽃을 살랐다. 특히 프랑스를 결승에 밀어올린 지단의 회춘은 팬을 설레게 했다. 이번 월드컵을 끝으로 은퇴를 하겠다던 지네딘 지단은 “많은 어린이들이 나를 우상으로 삼고 있다. 매 경기 그들에게 무언가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행복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런 지단이 축구 인생의 마지막을 불미스런 퇴장으로 마무리하다니....
 
전설적인 골키퍼 독일의 올리버 칸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것은 팬들로서는 아쉬운 점이다. 독일의 옌스 레만이 수준급 골키퍼였음은 분명하지만 올리버 칸처럼 그에게 공격수들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요구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러나 칸은 전 팀 동료였던 클린스만 감독의 눈밖에 나 3~4위전에서야 그라운드에 섰다. 칸은 “클린스만이 자주 우는 것을 보면 게이인지 모른다”라는 농담을 한 적이 있다. 또 우크라이나 선수들로부터 집단 왕따를 당한 솁첸코가 패스를 기다리다 결국 돌아간 점도 아쉽다.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 선수가 없었다는 것은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아쉬운 대목이다. 웨인 루니·리오넬 메시·세스크 파브레가스 등 명문 구단에서 실력을 검증받은 선수들조차 무기력하게 월드컵을 마쳤다. 오직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안 호날두 선수만이 까다로운 ‘팀 가이스트’를 순한 애인처럼 다루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제 최고 드리블러의 자리는 그의 것이다.   

∇골이 없다
이번 월드컵에서 축구 로또를 했다면 돈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 0-0이나 1-1에 걸면 거의 맞았다. 하지만 돈을 딸 수는 없다. 모두가 그렇게 걸었기 때문이다.
독일월드컵은 수준이 낮았을 뿐만 아니라 재미도 없었다. 골 가뭄이 그 이유다. 팀들은 최소 실점으로 우승 팀을 가리는 것처럼 경기를 운영했다.

스위스는 한 골도 내주지 않고도 월드컵에서 탈락하는 최초의 팀이라는 진기록을 남겼다. 이전에는 단 한 골을 허용하고 월드컵에서 탈락한 팀이 모두 일곱 나라 있었다. 스위스는 프랑스·한국·토고와의 예선 경기에서 무실점 행진을 이어갔고, 우크라이나와의 16강전에서도 득점 없이 비겼다. 스위스는 교도소 담장급 수비를 하는 팀이었지만 골을 넣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결국 승부차기에서조차 한 골도 뽑지 못하는 진기록을 함께 세웠다.

독일월드컵 개막에 앞서 국제축구연맹(FIFA)은 반칙 규정을 강화했다. 경기 도중 팔꿈치로 상대를 가격하거나 무모한 태클을 시도할 경우에는 바로 퇴장시킨다고 했다. 거친 몸싸움을 막아 공격 축구를 유도하겠다는 국제축구연맹의 의지였다.
이번 월드컵에서 반칙은 많이 나왔다. 하지만 공격 축구는 없었다. 가장 높은 득점력을 보인 팀은 스페인. 경기당 2.25골이다. 브라질은 경기당 두 골을 넣었다. 16강전 이후 두 골을 넣으면 무조건 이기는 경기가 거듭되고 있다. 0-0이나 1-0인 게임이 전체 경기의 절반을 차지한다. 16강전과 8강전, 열두경기에서 불과 19골이 터졌으니 토너먼트 경기당 득점은 1.58골에 머물고 있다.

∇아시아 축구는 없었다
D조 이란, 1무2패 승점 1점 조 4위. H조 사우디아라비아, 1무2패 승점 1점 조 4위. F조 일본, 1무2패 승점 1점 조 4위. 아시아 세 팀이 한 번씩 비긴 게 전부다. 16강 진출국은 한 곳도 없다. 경기 내용은 더욱 참혹했다. 2002년 월드컵 이전처럼 아시아 국가는 다른 대륙 국가들의 승리 제물로 전락했다. 

아시아에서 가장 강한 전력을 가졌다는 이란. 펠레도 이루지 못한 A매치에서 100골을 돌파한 유일한 선수는 알리 다에이와 독일 리그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알리 카리미(바이에른 뮌헨)·마다비키아(함부르크 SV)·하셰미안(하노버96)을 앞세워 이변을 예고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슈팅 하나 못한 채 그라운드를 걸어나왔다.
피터 벨라판 아시아축구연맹(AFC) 사무총장은 “이란에는 스타는 많았지만 팀 관리가 잘 되지 않았다. 또 팀에 대한 희생 정신이 부족해 단결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1994년 미국월드컵 데뷔 무대에서 오와이란의 마법 드리블로 16강에 진출했던 사우디아라비아. 그러나 이후에는 속절없이 무너지고만 있다. 1998년에는 프랑스에 0-4로 졌고, 2002년에는 아일랜드에 0-3으로 패한 뒤, 독일에는 0-8로 참패하는 치욕을 당했다. 이번에도 사우디아라비아는 우크라이나와 스페인에 허무하게 지면서 지긋지긋한 유럽 징크스를 벗어나지 못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축구협회장이자 정부 부총리 겸 국방장관인 술탄 왕자가 거액의 승리수당을 주겠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선수들 가운데서 유럽에서 뛰는 선수가 없다는 게 큰 경기마다 헛발질을 하는 주요 원인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자국 리그 육성을 위해 선수들의 해외 진출을 막고 있다.

일본은 아시아 팀 가운데 가장 좋은 경기를 했다. 일본의 색깔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허리 싸움에서 상대를 압도하기에는 부족했고, 골문에서는 여전히 골을 만들 선수가 없었다.
독일월드컵을 앞두고 지쿠 일본 감독은 “우리의 목표는 준결승까지 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월드컵 후 지쿠 감독은 본심을 털어놓았다. “불과 소수의 선수들만이 해외에서 뛰고 있다. 현재의 아시아 축구 수준을 뛰어넘지 못한다면 어떤 아시아 팀도 월드컵에서 결코 좋은 결과를 낼 수 없을 것이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일본 대표팀 선수 스물세 명 중 여섯 명이 해외에서 뛰고 있지만 주전으로 뛰는 선수는 한두 명뿐이다. 팀 기둥 나카타 선수도 여러 팀을 전전하는 나그네 선수일 뿐이다. 일본의 신임 감독으로 내정된 오심 감독은 “일본 축구는 세계 수준이 아니다. 착각하지 말라”고 냉정히 말했다. 이 말은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모든 아시아 나라에 해당하는 말이다.

아시아 축구에 있어서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은 남미와 아프리카 국가들과는 달리 아시아의 연대감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중국 <신화사>의 한 기자는 “과거에 대한 반성이 없는 일본의 오만함이 아시아 대륙의 화합을 깨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국 축구는 없었다
한국은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1승을 거두었고, 결승에 오른 프랑스와 비겼으니 전적은 평가받아야 한다. 그러나 스위스전 주심을 희생양 삼아 어물쩍 넘어가기에는 찜찜한 구석이 적지 않다.

한국 팀은 사실 끔찍한 경기를 했다. 2002년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스피드로 상대 진영을 위협하던 용맹한 한국 팀이 아니었다. 축구의 기본인 공을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일본과 다른 아시아 팀 선수들처럼 수비수를 제대로 제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선수도 없었다. 토고전에서는 후반 내내 관중으로부터 야유를 받았다. 사정거리에 있는 프리킥을 뒤로 돌리는 장면은 고교 축구에서도 사라진 광경이었다. 프랑스전에서는 제대로 된 슈팅도 몇 차례 없었다. 스위스를 위협할 만한 기회도 만들지 못했다.
토고·프랑스전을 관람한 한 스페인 기자는 “솔직히 다른 아시아 팀들과 마찬가지로 한국 팀도 월드컵 급에 못 미친다”라고 말했다. 스위스전을 본 잉글랜드 기자는 “한국 선수 가운데 전혀 눈에 띄는 선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월드컵 경기만 놓고서는 대표팀 선수들이 빅리그에 진출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 선수 중 도드라졌던 박지성 선수조차 전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2006 독일월드컵 올스타팀 후보군 69인에도 들지 못했다. 국내 언론들은 박지성이 말레이시아의 ‘뉴 스트레이츠 타임스’라는 생소한 신문에서 선정한 2006 월드컵 스타로 뽑혔다고 대서특필했다.

한국 축구의 한계는 자명하다. 더 많은 선수가 수준 높은 리그로 나가야 하고 무엇보다 뒤처진 K리그의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 최근 영국의 공영방송인 BBC는 국가 대표팀 경기에만 열광하는 한국 축구의 현실을 꼬집었다. 이 기사는 “한국에서 축구는 오직 대표팀으로 시작해서 대표팀으로 끝난다. 그래서 여전히 프로축구는 발전하지 못했고 관중도 없다. 이는 대표팀의 경기력 저하로 이어진다”라고 평했다.

K리그의 현주소는 수원삼성의 차범근 감독에게서 읽을 수 있다. 수원삼성은 K리그 전기를 8위로 마감했고, 삼성하우젠컵에서 최하위인 14위를 기록했다. 현재 열두 경기째 승리를 기록하지 못하고 있다. 삼성은 지난 시즌에 전기와 후기를 각각 8위와 9위로 마감했다.
팀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는데 차감독은 독일에서 텔레비전 중계를 하고 있다. 시즌 중간에 두 달 가까이 팀을 떠나 있다가 7월12일 경기부터 다시 지휘봉을 잡는다고 한다. 삼성도,차감독도 이해가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마이크를 잡았을 때 차감독은 K리그를 사랑해야 한국 축구가 성장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열혈 팬들이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수긍할 수는 없는 노릇. 수원 팬들은 “감독이 집을 비우고 어디 가서 훈수를 두고 있느냐”라고 질타했다. 서포터들 중 일부가 ‘Ich will dich night mehr sehen(나는 더 이상 당신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독일어로 피켓을 만들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 7월5일 재개된 K리그 삼성하우젠컵 대회 울산과 전북의 경기에 온 관중은 4천3백여 명이 전부였다. 게임을 뛴 이천수 선수는 “1998년과 2002년에는 월드컵 이후에 팬들이 반짝했는데 이제는 그런 것마저 없다”라며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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