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실체, 그것이 알고 싶다
  • 이숙이 기자 (sookyiya@sisapress.com)
  • 승인 2006.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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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동지이자 장자방, 정무적 판단력 탁월…“권력 지향적” 비판도

 
“당에서는 김병준을 아주 흉악한 인물로 알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한 중진 의원이 최근 청와대 한 핵심 참모에게 전한 당 분위기다. 청와대 고위직을 지내 김병준 전 정책실장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그가 보기에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김병준 교육부총리 카드’에 그토록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보다 김내정자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 때문이다.

실제로 열린우리당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김병준 교육부총리 내정자와 대면하거나 말을 섞어본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김내정자가 노무현 ‘후보’의 자문 교수 출신이기는 하지만 정치인들과 직접 부대낀 적이 드문 데다, 노대통령이 당선된 후에는 곧바로 청와대에 입성해 당과는 거리가 멀게 지내왔던 탓이다. 이렇게 소원했던 터에 김내정자가 그동안 했던 몇 가지 인상적인 발언들, 이를테면 “세금 폭탄, 아직 멀었다”나 “5·31 지방선거결과가 이렇게 나올 줄 예상했었다. 이보다 더한 시나리오도 있을 수 있다고 봤다”라는 말들이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여당 의원들로서는 이런 발언이 워낙 치명적이라 ‘김병준’이라는 이름이 ‘흉악한 인간’으로 각인된 것이다. 그런 인물을 교육부총리에 앉히겠다고 하니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여당의 반감이 하늘을 찌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처지를 바꿔 생각해보면 노무현 대통령에게 김병준 교육부총리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카드다. 여러 모로 상징성이 커서다.

 우선 김내정자는 아무도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을 주목하지 않을 때 노대통령이 내민 손을 잡아주고 지방자치의 이론을 제공한 ‘동지’다. 1993년 노무현 대통령이 만든 지방자치실무연구소에 김병준 당시 국민대 교수(행정학)가 소장을 맡으면서 두 사람은 인연을 맺었다. 노대통령의 오랜 참모인 천호선 청와대 의전 비서관은 “지방자치 학계의 노장 거두가 조창현 전 중앙인사위원장이라면, 김병준 내정자는 소장 거두로 불렸다. 지역주의와 자치정부에 관심이 많던 노대통령이 당시 지방자치학회를 이끌고 있던 김내정자에게 자문을 하면서 인연이 시작되었는데, 지방자치의 노장 거두와 소장 거두가 모두 참여정부에서 역할을 한 셈이다”라고 말했다.

노대통령이 민주당 대선후보가 된 후에는 김내정자가 정책자문단장을 맡아 자문 교수를 모으고 정책을 개발하는 역할을 했다. 당시 노무현 캠프에는 이정우·이종오·김대환 등 주로 지방대 소속 교수들이 많았다. 고려대 출신인 정세균 의원이 윤성식 교수 등 고대 인맥을 일부 합류시켰지만 여전히 수도권에 있는 학자들의 참여가 미미했다. 이 때문에 김내정자가 경실련에서 함께 일한 서울대 박세일 교수(후에 한나라당 비례대표 의원이 됨)를 끌어들이려고 노력했다가 실패하기도 했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대구상고와 영남대를 나온 김병준 내정자의 연이은 기용에는 비주류 출신에 대한 노대통령의 의도적 배려가 담겨 있다는 일각의 분석도 나온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을 거쳐 청와대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위원장과 청와대 정책실장을 맡으면서 김내정자는 노무현 정부의 핵심 정책 과제에 깊숙이 관여하게 된다. 정부혁신·지방분권 위원장 시절에는 노무현 정부 초기의 핵심 과제라고 할 수 있는 정부 혁신과 국토의 균형발전, 행정복합도시 추진 등이 그의 손을 거쳐갔다. 2004년 6월 청와대 정책실장이 된 뒤에는 주로 부동산 정책에 역량을 집중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헌법보다 고치기 어려운 부동산 정책을 만들겠다’는 자극적인 표현을 써서 논란을 빚기도 했다.

김내정자가 정책실장 시절, 한 상가(喪家)에서 만난 그에게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왜 헌법보다 고치기 어렵다는 것이냐?”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그는 “종합부동산세의 일부를 지방자치단체가 교부하도록 되어 있다. 이걸 바꾸려고 하면 자치단체장과 지역 의원들이 엄청나게 반발할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누가 되었든 지금이라도 이걸 바꿀 수 있다고 하면 법 개정에 응하겠다”라고 거침없이 답했다. 요컨대 이 정책으로 득을 보는 집단이 분명하기 때문에 정권이 바뀌어도 부동산 정책을 바꾸기 어려우리라는 주장이다.

이처럼 김내정자는 어떤 정책을 만들 때 시장 안에서 그 정책을 지켜줄 확실한 보호 장치를 만들어두는 독특한 정책 마인드를 지녔다. 이를 두고 노대통령이나 주변 참모들은 김내정자 특유의 정무적 감각이라고 평가한다. 대개의 학자들이 이론에 충실한 반면 현실을 모르고 융통성이 부족한 것과 달리 김내정자는 학자 출신이면서도 어떤 정책이 현장에서 구현될 때 일어날 수 있는 각종 정치적 변수까지 미리 내다본다는 것이다. 노대통령의 핵심 참모인 윤태영 연설기획 비서관은 “대통령에게 올라가는 각종 보고서에는 정책실장이 코멘트를 적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 보고서는 뭐가 문제다’ ‘ 이 보고서에서는 무엇을 유념해야 한다’는 식으로 간단히 언급 하는데도 다른 정책 관료들과 달리 안목이 넓다는 게 금새 느껴진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노대통령은 김우식 비서실장이 물러났을 때 김내정자를 후임으로 고려하기도 했었다.

김병준에 대한 평가=노무현에 대한 평가

노대통령이 이번에 그를 교육부총리로 내정한 것도 그런 정무적 판단 능력을 높이 샀기 때문이라는 것이 참모진의 이구동성이다. 남은 임기 동안 노대통령에게 주어진 두 가지 큰 과제가 양극화 해소와 교육인데, 교육 정책의 경우 부동산 정책을 비롯해 다른 여러 분야 정책과 얽혀 있기 때문에 노대통령의 정책 철학을 꿰뚫고 있으면서 정무적 판단 능력까지 갖춘 김내정자가 적격이라는 얘기다. 한 참모는 “솔직히 총리까지 생각했던 인물을 하향해서 쓰는 것 아니냐. 그만큼 대통령이나 김내정자나 일 중심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유념해달라”라고 주문했다.

“변화는 개혁을 통해 이뤄지고 저항 없는 개혁은 없다. 부동산 정책·교육 개혁과 관련해 교조적인 논리로 정부 정책을 흔드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라고 했던 노대통령의 발언(6월13일 국무회의)을 감안하면, 김병준 내정자는 부동산 정책에 이어 교육 정책까지,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 가장 센 분야에서 개혁 전위대로 기능 하는 셈이다.

하지만 이런 김내정자에 대해 1백80도 다른 평가를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노무현 후보 시절 정책자문단의 실무 간사 역할을 했던 한 참모는 “김내정자의 당시 역할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고 그를 기억했다. 청와대 참모를 거친 한 인사는 아예 ‘권력 지향적이며 반개혁적 인물’이라고 김내정자를 폄훼했다. “자기가 정부혁신·지방분권 위원장을 할 때는 ‘위원회’의 역할을 강조하더니 정작 정책실장이 된 뒤에는 위원회를 억압했고, 개혁 성향을 띤 이동걸 전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이 청와대 경제보좌관에 추천되었을 때는 김내정자가 적극 반대했다. 결과적으로 재경부나 삼성의 편을 든 셈이다”는 것이다. 최근 윤성식 정부혁신·지방분권 위원장이 갑자기 그만둔 것도 김내정자와의 갈등 때문이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이런 비판은 주로 노대통령과 일정 부분 거리를 두거나 각을 세우고 있는 쪽에서 나온다. 하지만 한때 함께 일했던 동지들 사이에서조차 부정적 평가가 나오는 점은 그냥 흘릴 대목은 아니다. 결국 어느 쪽의 평가가 맞느냐는 김내정자의 향후 행보에 달려 있다. 김내정자의 손길이 노무현 정부 핵심 정책의 곳곳에 닿아 있는 만큼, ‘김병준’에 대한 평가가 곧 ‘노무현’에 대한 평가로 등치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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