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자금 모금? 사기 행각?
  •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6.07.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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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 전 의원, ‘노태우 구권 화폐 사기’ 의혹으로 검찰 수사 받아

 
한나라당 김용균 전 의원(64·제16대 경남 산청·합천)이 구권 화폐 사기 사건으로 거액을 편취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 김 전 의원은 검찰에서 정치자금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김 전 의원이 수수한 22억원을 정치자금으로 보기에는 액수가 크다. 더구나 돈을 제공한 사업가가 김 전 의원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사기를 쳤다며 증거를 내놓고 있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사업가 김대운씨(65)가 김용균 전 체육청소년부 차관(법무법인 비전 인터내셔날 대표변호사)을 만난 것은 2000년 2월 초. 당시 상황을 김대운씨는 이렇게 주장했다. “김용균 전 차관이 노태우 전 대통령·박철언 전 의원과 함께 조 단위의 구권 화폐를 신권으로 바꾸려 하는데, 신권 6억원을 주면 구권 10억원을 주겠다고 했다. 김차관이 자신의 몫 3백억원이 있는데 이 가운데 30억원이 실린 트럭을 통째로 인계하겠다고 말했다.”

“국회의원 당선되자 10억원 요구해 보내줬다”

김씨는 이때 김 전 차관의 경력을 알아봤다고 한다. 그는 경기고·서울 법대를 나왔고, 변호사였다. 국보위 법사위원 등을 거쳤으며 6공 당시 실세였던 박철언 전 의원과의 인연으로 체육청소년부 차관을 지낸 것도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구권 화폐의 존재를 긴가민가하던 김씨가 확신을 갖게 된 것은 2000년 2월 중순 엄 아무개씨가 김 전 차관에게 받았다면서 구권 1천만원을 가져오면서부터였다. 김씨는 “엄씨가 내 아파트에 불쑥 찾아와 1만원짜리 구권 화폐 1백만원 묶음 열 개를 내놓았다. 구권 1만원짜리가 비닐로 포장되어 있는 것이 은행에서 방금 가져온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김 전 차관은 자필로 돈을 보내는 방법을 일러주었다. 그러자 김씨는 김 전 차관을 세 번 만난 뒤여야 돈을 보내기 시작했다. 2000년 3월29일 김씨는 김 전 차관 조카 명의 계좌로 5억원을 보냈다. 같은 해 4월3일에는 서울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지하 주차장에서 김 전 차관 아들이 직접 5억원을 가져갔다.

김 전 차관은 2000년 4월13일 총선에서 경남 산청·합천 지역구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당선하자마자 김 전 차관은 한나라당 법률지원단장과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을 맡았다. 김 전 의원에 대한 김씨의 믿음은 더욱 커졌다. 당시 김의원이 10억원을 요구하자, 김씨는 5월26일 10억원을 신 아무개씨의 계좌로 보냈다. 신씨는 김의원 변호사 사무실의 여직원이었다. 2002년에는 김의원이 직접 12억원을 받아갔다가, 얼마 후 10억원은 돌려주었다.

그러나 특정한 날을 정해 구권을 건네주겠다던 김씨는 약속을 차일피일 미루었다고 한다. 김씨는 “김의원은 전두환 전 대통령 추징 사건, 장영자 구권 화폐 사건 등을 핑계로 약속을 계속해서 미루었다”라고 말했다. 김씨가 조바심을 낼 때마다 김의원은 정성을 다해 자필 편지를 써서 김씨를 달랬다.

 
4월 중에 일을 처리하고자 최선을 다했으나 여의치 못했습니다. 조만간 정리를 하고자 하오며…. (2003년 5월1일)
지난 4년간 처리가 되지 않은 특수자금 문제는 2004년 6월10일까지 완결 처리하기로 하겠습니다. … 지금까지 총계 32억원을 특수자금 대금으로 선지급받았음을 확인합니다. (2004년 5월20일)

김회장님(김대운씨)께서는 크나큰 인내와 두터운 인간적 신뢰를 가지고 우리 사업에 한결같이 동참하여 주신 것을 감사드리며 … 우리 사업이 장애의 연속으로 4년 이상 지연됨에 따라 … 이제 바야흐로 사업의 막바지에 이르러 저는 제 인생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여 조속히 우리 사업을 성취시킴으로써 회장님의 은혜와 우정에 반드시 보답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2004년 5월25일)

일의 성격상 현 시점에서는 김회장님이 주신 원금의 100%를 돌려드리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 생각됩니다. … 원금의 50%는 2005년 5월15일까지 돌려드리고, 나머지 50%는 2005년 11월15일까지 돌려드리는 방안입니다. (2005년 2월5일)

‘특수 자금’이 ‘정치 자금’으로 둔갑

‘특수 자금을 가지고 특수 사업을 추진하던’ 김의원과 김씨. 그러나 김씨에게 정성을 쏟는 듯했던 김의원은 갑자기 입장을 바꾼다. 2005년 8월12일, 김의원이 김씨에게 보낸 내용증명 내용이다. “귀하가 스스로 제공한 정치자금이 법률상 갚을 돈인지 의문이 있으나 본인에게 자연 채무가 있다면 귀하가 얼마를 반환받고자 합니까?” 이 내용증명에는 ‘특수 자금’이 ‘정치 자금’이 되어 있었다.

 
김씨는 김 전 의원으로부터 정치 자금 영수증을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설령 정치자금이라 하더라도 정당한 절차를 거쳐 받았는지, 타인 명의의 계좌로 정치자금을 송금받았는 것도 따져볼 대목이다. 올 초 검찰 조사에서 김 전 의원은 “2000년 6월 께 엄아무개씨를 통해 김씨가 고위층과 줄을대 비자금을 교환하려고 자신에게 접근했다는 것을 알았으나, 엄씨의 말이 그동안 교부한 돈은 정치자금이라고 하면서 고소인 김씨에게 좋은 기회를 만들어주면 된다는 식으로 말하여 안심했다”라고 진술했다. 정치자금법 위반 공소시효는 3년이다.

지난해 9월 김씨는 한나라당에 찾아가 김의원 건을 따졌다고 한다. 이때 김씨는 한나라당의 한 의원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용균 의원은 원래 그런 사람이다. 문제가 있어서 공천에도 탈락했다.” 이때 한나라당은 김의원의 ‘문제’에 대해서 어떠한 조처를 취하지는 않았다.

결국 지난해 말 김씨는 검찰에 김 전 의원을 고소했다. 이후 검찰은 도피 중인 엄 아무개씨를 조사한 후에야 진상을 파악할 수 있다는 취지로 참고인 중지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담당 검사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현재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서 밝힐 수 없다”라고 말했다.

7월12일 김용균 전 의원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다 끝난 일이다. 그쪽에서 하도 괴롭혀 써달라는 대로 써주고 말았다. 자세한 것은 만나서 이야기하겠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 전 의원은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고, 기자와의 전화 통화도 피했다. 다만 측근이 전화를 걸어와 “기사를 쓰면 무조건 소송하겠다”라고 말했다. 김 전 의원은 2004년 현역 의원 신분으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위원 대리인 실무 간사로 활동했고, 지난해까지 한나라당 제2 사무부총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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