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쇼’를 빛내는 사람들
  • 김회권 인턴기자 ()
  • 승인 2006.07.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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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스포츠 관련 직업 다양…맵 제작자·옵서버 등 게임 더 재미있게 만들어

 
e스포츠는 마우스와 키보드로 관중에게 환희를 제공한다. 선수가 무대의 주인공이라면 감독과 코치, 스태프는 선수들이 펼치는 쇼를 더 화려한 볼거리로 치장해주는 조연들이다.

e스포츠는 ‘PC방 속 그들만의 리그’에서 10만 관중을 끌어들이는 화려한 쇼로 변신하면서 새로운 직업군을 만들어냈다. 전략과 전술을 지도하는 감독과 코치, 맵 제작자, 게임을 보여주는 옵서버, 경기를 규율하는 심판, 그리고 캐스터와 함께 시청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해설자가 e스포츠가 탄생하면서 새로 생긴 대표적 직업으로 꼽힌다.

감독과 코치
다른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감독과 코치는 게임단의 ‘두뇌’다. 프로 게이머는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어린 선수들이다. 평소에 이들을 관리하는 것이 감독과 코치의 임무다. 혈기 왕성한 나이에 연습실에서 10시간 이상 갇혀 게임만 하는 것은 보통 고역이 아니다. 이들을 잘 다독이며 좋은 선수로 이끄는 것이 감독과 코치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두뇌’의 역할은 경기장에서 특히 빛을 발한다. 경기에서 이기려면 상대 팀 출전 선수를 잘 예측해야 한다. 선수마다 장단점이 있어 어떤 선수와 맞붙느냐에 따라 전적이 확 달라진다. 프로 리그에서는 경기 한 시간 전에야 출전 명단을 교환하기 때문에 감독은 상대 선수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예측해 출전 선수를 정해야 한다. 상대 투수가 누가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출전 명단을 짜야 하는 야구와 비슷하다.  

코치는 주로 전략과 전술 등 경기 내적인 부분을 맡는다. 상대 팀의 출전 선수를 예상하고 거기에 맞는 전략과 전술을 연구하여 선수에게 연습시킨다. 이전에는 감독이 떠맡던 역할이지만 e스포츠의 발전과 함께 분업화되어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프로 게이머 출신이 코치를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맵 제작자
맵 제작자란 말 그대로 맵을 만드는 사람이다. 맵은 e스포츠의 주 종목인 스타 크래프트  게임의 경기장을 말한다. 맵은 게임의 흥미를 돋우는 역할을 한다. 어떤 맵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경기는 지상전이 될 수도 있고 섬전이 될 수도 있다. 언덕이 많은 맵에서는 언덕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리기도 하고 입구의 넓이에 따라 건물 배치도 달라진다. 일반 게이머도 맵을 만들어 즐길 수 있지만, 전문 맵 제작자들이 제작한 맵을 주로 이용한다. 특히 e스포츠 경기에서는 게임을 더 다양하고 흥미진진하게 진행하기 위해 맵 제작에 심혈을 기울인다.

맵을 만드는 과정은 꽤 복잡하다. 리그 시작 전에 관계자들이 모여 회의를 한다. 이전 리그에 사용된 맵에서 문제가 된 부분을 논의한 뒤 방향을 정한다. 어떤 맵에서 수비 전략이 유행했다고 판단하면 공격을 유도하기 위해 맵 지형을 바꾼다. 아예 새로운 맵을 제작할 수도 있다. 네 명의 맵 제작팀이 복수의 맵을 만들면 공식 맵을 선정한 뒤 프로 게이머를 대상으로 온라인 테스트를 벌인다. 그래야 실전에서 생길지도 모를 문제점을 사전에 파악하고 수정할 수 있다. 2001년 ‘온게임넷 맵 공모전’에서 1위를 차지하고, 기발한 맵을 제작하기로 유명한 김진태씨(26·온게임넷 맵 제작팀장)는 “프로 게이머들은 미세한 지형에서도 승패가 갈리기 때문에 맵을 만들 때 세심한 것까지 신경을 써야 한다”라고 말했다. 맵 제작자가 가져야 할 필수 능력으로 세심함을 꼽은 것이다.

창의성도 맵 제작자에게는 중요한 능력이다. 맵을 창조하는 과정은 예술가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김진태씨는 “Bifrost라는 맵은 신화에서 힌트를 얻었다. ‘무지개다 리라’는 뜻으로 일곱 개의 다리를 맵에 설치했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음악이나 독서에서 영감을 자주 얻는다고 한다.

옵서버
게이머는 상대방의 화면을 보지 못하며 플레이를 하기 위해 화면을 매우 빠르게 전환한다. 하지만 옵서버는 전체 화면을 볼 수 있다. 모든 화면을 보면서 시청자들이 꼭 시청해야 할 화면만 선택해서 보여주는 것이 옵서버의 역할이다. 김희제씨(32·온게임넷 편성·제작팀)는 옵서버의 역할을 “스포츠 경기를 보여주는 카메라 맨과 같다”라고 설명했다. 코너킥을 찰 때 골문 앞의 몸싸움을 보여주지 않고 공 차는 선수를 보여주는 것처럼 옵서버 역시 부수적인 것보다는 핵심적인 모습을 잡기 위해 노력한다. 따라서 옵서버는 게임뿐 아니라 방송에 대해서도 꿰뚫고 있어야 한다. 자신이 제공하는 게임의 화면도 방송의 컷과 같기 때문에 PD와의 호흡이 중요하다.

옵서버에게 체력과 집중력은 필수다. 하루에 최대 서넛 시간 동안 게임 화면을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화면을 잡아내는 순발력도 필요하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쏟아지는 시청자들의 비난을 각오해야 한다. 현재 한국에서 옵서버는 네댓 명에 불과하다.

심판
축구나 야구처럼 모든 스포츠에는 심판이 있다. 심판의 권한은 경기의 승패를 좌우할 정도로 막강하다. 그러나 e스포츠에서 심판의 영향력은 그다지 크지 않다. e스포츠에서 심판은 문제가 생길 때만 판정을 내린다. 스타 크래프트의 경우 갑자기 네트워크 이상으로 게임이 중단되거나, 버그가 발생했을 때, 금지된 채팅을 했을 때 주로 심판이 개입한다. 문제가 생기면 심판은 재경기나 몰수패 등의 판정을 내린다.

e스포츠협회 공인 심판 1호인 황규찬씨(27)는 “판정을 위해서는 게임을 훤히 뚫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국내 게임 중 안 해본 것이 없다”라고 말했다. 심판은 규정도 숙지해야 하며 어린 선수들의 잦은 항의를 무마하고 설득할 수 있는 말솜씨도 있어야 한다. 황규찬씨는 “게임 내에서만 심판의 역할을 한정하면 안 된다. 게임 팬의 견해도 생각해 판정을 내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즉 심판은 선수와 시청자의 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설자
해설자는 관중이 경기를 좀더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해설자는 약방의 감초와 같다. 해설자의 입담이 스포츠 경기를 더 즐겁게 만들어주는 것처럼 e스포츠 경기도 재미가 나뉜다. 스타 크래프트 해설자는 젊은 층에서 이미 유명인이자 선망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해설자는 보통 프로 게이머 출신이다. 일반인 가운데 유일하게 해설자가 된 이승원씨(33·MBC 게임 해설위원)는 게임 방송국 PD의 부탁으로 우연히 마이크를 잡았다가 이 길로 방향을 틀었다. 이승원씨는 “게임을 분석하기 위해 게임단을 방문해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연습 장면을 지켜본다. 계속 변화하는 전략의 흐름을 따라가지 않으면 해설자로서 뒤처지기 쉽다”라고 말했다. 해설자는 게임 내용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기 위해 표현이나 어휘 개발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인다. 이승원씨는 출·퇴근 길에 라디오를 들으며 방송 표현과 어휘를 익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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