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국감’ 벼르는 국회 ‘숨은 손’들
  • 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6.09.01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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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의정 활동을 전방위로 돕는 보좌진들의 움직임이 더욱 분주해졌다. 국정감사의 ‘엑스맨’ 의원 보좌진의 세계를 설문 조사를 통해 들여다보았다.

 
온 나라가 ‘바다이야기’에 빠져 허우적대던 지난 8월 중순. 특히 정치부 기자들은 익사 직전이었다. 자기 혼자 익사하는 낙종의 악몽에서 벗어나려 했고, 특종으로 이어지는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국회 본관에 위치한 기자실을 맴돌던 기자들은 국회의원 회관으로 돌진했다. 자정까지 의원회관을 서성대는 기자들이 많았다.

기자들은 국회 문화관광위원회(문광위) 소속 의원실을 찾았다. 관련 상임위원회였기에 특종으로 통할 수 있는 ‘게이트’였다. 기자들은 의원보다 보좌관과 비서관을 찾았다. 지난해 국정감사 때부터 사행성 오락 산업의 문제점을 파고든, 이른바 ‘빠끄미’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들 보좌진이 ‘특종 게이트’를 열어줄 열쇠를 쥐고 있었다. 검찰 수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바다이야기’와 관련한 새로운 사실은 대부분 이들에게서 나왔다.

하지만 언론에는 보좌진 이름이 쏙 빠졌다. 대신 자신들이 모시는 의원들이 등장했다. 보좌진을 ‘얼굴 없는 의원’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전에 보좌진 하면 ‘가방 모찌’라는 말을 쉽게 떠올렸다. 이제는 달라졌다. 의원이 오히려 ‘얼굴 마담’으로 변하고 있는 추세이다.

국회의원 의정 활동의 성공 여부가 이제 보좌진 손에 달려 있다. 국회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 의원 보좌진의 세계를 들여다보았다. <시사저널>은 여론조사 기관 ‘더피플’과 공동으로 설문 조사를 했다. 현재 국회의원 한 명당 할당된 보좌진은 여섯 명이다. 4급 두 명, 5급·6급·7급·9급 각 한 명씩이다. 여기에 인턴 두 명을 포함하면, 총 여덟 명의 보좌진을 국가 예산으로 채용할 수 있다. 이번 설문 조사는 4급 보좌관과 5급 비서관을 상대로 했다. 이들이 주로 정책과 정무를 담당하는 핵심 보좌진이기 때문이다. 설문은 총 3백11명이 응했다.

이들 보좌진의 학력을 먼저 살펴보면, 학력 인플레 현상이 두드러진다. 설문에 응한 99.4%가 대졸 이상이었다. 이 가운데 석사(박사 과정 포함)가 41.5%(1백29명)였고,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도 10.3%(32명)나 되었다. 지난 16대 4급 보좌관 1백4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박사는 9명이었다(안득기 <16대 의원 보좌관의 역할 수행에 관한 연구>).

고학력자 대거 포진…다수가 인맥 통해 채용

학력 인플레는, 박사 학위자가 보좌관이 되기도 하지만 주로 주경야독으로 보좌관을 하면서 학위를 따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1996년부터 국회에 둥지를 튼 한나라당 임태희 의원실의 문형욱 보좌관도 그런 경우다. 문보좌관은 현재 서울디지털대학 사회복지학부 강의교수이다. 그는 “보좌관은 현장과 이론을 동시에 맛볼 수 있다. 자기 향상 욕구가 생길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고학력자들이 포진해 있지만, 보좌관의 취업 경로는 공채보다는 인맥을 통한 경우가 여전히 더 많았다. 설문에 응한 보좌진 열 명 중 여섯 명은 지인이나 단체의 추천(37.4%), 의원의 권유·제안(25.5%) 등 인맥으로 채용되었다. 순수하게 공채된 경우는 28.4%에 그쳤다. 공채를 거친 3년차 한 비서관은 “지원하면서 솔직히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들어와보니 정말 바늘구멍을 통과한 것을 알게 되었다. 다른 보좌진들은 주로 학교 선 후배나, 지역 선 후배 등 아는 사이였다”라고 말했다.

 
17대 국회 들어 친·인척 보좌진은 줄었지만, 인맥을 통한 끼리끼리 채용은 여전한 셈이다. 예컨대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실에는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의 셋째 딸이 근무하고 있다. 박회장은 노무현 대통령의 후원자다. 노무현 캠프에 불법 정치자금 7억원을 주었다는 혐의로 기소되었다. 그런 박회장의 셋째 딸이 노무현 정부 출범 초기 국정상황실에 8급으로 취업해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지금은 이광재 의원의 6급 비서로 근무 중이다. 정동영 전 의장의 수행비서를 담당했던 인사도 정동영계로 통하는 정청래 의원실의 보좌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끼리끼리 채용은 한나라당도 예외가 아니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보좌진은 의원과 마음이 통해야 한다. 내 사람을 뽑는 건 당연하다”라고 말했다.

한·미 FTA를 국감 최대 이슈로 꼽아

국회 보좌진은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채용되는 별정직 공무원이다. 임금은 공무원 보수 규정에 따라 지급받는다. 4급 보좌관은 본봉 2백92만2백원(4급21호봉), 5급 비서관은 본봉 2백71만8천8백원(5급24호봉)을 받는다. 여기에 수당이 붙는다. 기본 수당과 가족수당·직급비 등 각종 수당이 붙으면 4급 보좌관 연봉은 평균 6천만원, 5급 비서관 연봉은 평균 5천만원 선이다. 설문에 응한 보좌진 나이가 보통 30대(63.3%), 40대(28.6%)인 때문인지, 보수에 대한 불만은 낮았다. 보수가 불만족스럽다는 의견은 12%에 그쳤다.

 
오히려 개인 시간이 없다거나, 정신적 스트레스 때문에 불만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전문가라는 자긍심이 높았고(82%), 자기 계발에 도움이 된다(43%)는 의견이 많았지만, 정신적으로 힘들고(86.2%) 개인 시간을 가질 수 없다(71.4%)는 데 불만이 높았다. 열린우리당의 한 5년차 보좌관은 “정무 보좌진뿐 아니라 정책 보좌진도 의원 전화 한 통이면 새벽에라도 나와야 한다”라고 말했다. 종합적으로 직업 만족도를 물었더니, 자신의 직업에 만족한다는 응답이 44.4%였고, 만족하지 못하다는 응답은 13.5%였다.

형식적으로 4급과 5급 보좌진은 국회의장이, 6·7·9급 보좌진은 국회사무총장이 임명한다. 하지만 실제 임면권은 의원이 쥐고 있다. 의원의 마음에 따라 보좌진은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보좌진들은 스스로를 ‘고임금 비정규직’이라고 부른다. 응답자 열 명 중 일곱 명이 고용 불안을 느낀다고 답한 것도 이 때문이다(69.7%). 보좌관 생활을 하면서 가장 후회스러웠던 시기는 역시 고용 불안을 느낄 때(26.9%)가, 능력 부족을 절감할 때(27.8%)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흔히 보좌진은 정책형과 정무형으로 나뉜다. 그러나 의원 대부분은 멀티 플레이어를 원한다. 정책을 펴면서, 민원도 해결하고, 때로는 수행까지 하는 식이다(상자 기사 참조). 보좌진이 멀티 플레이어가 되어야 할 시기가 이맘때다.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때이기도 한데, 바로 국정감사를 앞두고서다. 국회법에 따르면 국정감사는 9월10일부터 20일간이다. 이번에는 ‘바다이야기’ 사태 때문에 여야가 합의해 10월11일로 연기되었다.

보좌진들에게 국정감사(54.9%)는 민원·예산 챙기기(22.7%) 선거(10.4%) 후원금 모금(4.5%)보다 스트레스를 더 주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보좌진에게 국정감사는 시험 기간이나 다름없다. 성적표는 이 기간 자신이 보좌하는 의원들의 언론 노출 빈도다. 어느 의원이 언론의 관심을 얼마나 받느냐에 따라 보좌진의 성적이 달라진다.

 
“선출직 공무원 진출이 목표” 33%로 최다

 
그래서 국정감사를 앞두고 의원실 풍경은 전투 체제로 바뀐다. 숨겨두었던 야전 간이침대가 속속 등장하고, 의원실마다 피감 기관 자료가 쌓인다. 국회의원회관 4백33호 열린우리당 최규식 의원실에도 최근 간이침대가 등장했다. 국감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행자위 소속인 최의원의 보좌진은 지난 2년간 성적표가 좋았다. 국감 첫해에는 검열 기관을 자처한 공안문제연구소 문제를 제기해 연구소를 아예 폐쇄시켰고, 지난해에는 수사권 조정· 경찰대학 폐지를 공론화시켰다. 최의원실 보좌진들이 의원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최의원과 호흡을 맞춰 국정감사를 준비한 덕이다.

보좌진이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지만, 그만큼 보람을 느낄 기회가 많을 때도 국정감사 기간이다. 보좌진은 행정부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시정하거나(42.3%), 언론에서 주목되었을 때(30.3%) 가장 보람을 느꼈다고 답했다. 아무래도 언론에 자주 노출되고, 행정부의 피드백이 빠르게 진행되는 기간이 국정감사 때다.
의원회관의 불을 밝히며, 벼락치기 국정감사 시험을 준비하는 보좌진에게 예상 문제를 물어보았다. 상임위원회별로 국정감사의 주요 쟁점을 물었더니, 교육위원회·농림해양수산위원회·보건복지위원회·산업자원위원회 등 여덟 개 상임위 보좌진들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꼽았다(표 참조). 하지만 사행성 게임 산업과 관련된 문광위, 법조 비리가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이는 법사위에서 언론의 이목을 끌 대형 폭로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소문도 돌고 있다.

 
보좌진들은 올해를 사실상 17대 국회 마지막 국정감사로 여기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한 수석 보좌관은 “내년은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이고, 의원들도 재선을 준비하느라 바쁘기 때문에 내년 국정감사는 의미가 없다”라고 말했다. 국회의원과 운명을 같이하는 보좌진도 이제 1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의미다. 이맘때 한 번쯤 보좌진들은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보좌진에게 향후 진로를 물었더니, 역시 국회의원이나 지방의원을 포함한 선출직 공무원(33%)이라고 응답한 이들이 가장 많았다. 다음이 공공기관(24.2%) 진출이었다.

보좌관 출신인 한나라당 이성권 의원은 “의회와 정당 시스템을 보좌관 생활을 하면서 익혔기에 의원직에 적응할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이 가장 큰 강점이다”라고 말했다. 이의원은 박관용 전 국회의장과 일본 고노타로 중의원의 보좌진을 지냈다. 이의원은 출마를 준비하는 보좌진에게 두 가지를 강조했다. 보좌진으로서 경력뿐 아니라 정책 전문가로서 경력을 쌓아야 하고, 바로 중앙 정치인 국회 문을 두드리기보다 지방의회를 거치는 우회 전술을 펴라는 것이다. 실제로 지방의회 유급화 이후 보좌관 출신들의 지방 정치 진출 폭이 컸다. 한나라당보좌관협의회에 따르면, 지난 5·31 지방선거에서 보좌진 출신 53명이 지방 정계에 진출했다.

 
그렇다면 보좌진들이 반대로 국회의원에게 가장 바라는 개선점은 무엇일까? 역설적이게도 입법 기관인 의원에게 보좌진들은 입법과 정책 개발 능력을 높여야 한다고 가장 많이 주문했다(46.3%). 한 보좌진은 보좌진 사이에 유행하는, 능력이 떨어진 의원을 빗댄 농담을 소개했다. ‘예컨대 며칠 밤을 새워 국정감사 밥상을 잘 차려놓았는데 질문도 못하는 의원들을 빗대 물 말아 먹는 의원이라고 한다. 그런 의원들이 더 밥상을 차리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다음으로 보좌진들은 당론을 따르는 거수기보다 소신을 펼치는 정치 행보(21.6%)를 의원들에게 주문했고, 대화와 타협의 능력을 키워야 한다(20.6%)는 점도 주문했다.

의원을 가장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보좌진들의 응답은 이렇게 따끔했다. 다음 총선에서도 당선을 바라는 의원이라면, 멀리 있는 지역민보다 먼저 가장 가까이에 있는 보좌진에게 귀를 기울여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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