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익의 적자, ‘완전 군장’을 꿈꾸는가
  • 도쿄·채명석(재일언론인·<단도와 활> 저자 ()
  • 승인 2006.09.18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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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일본 총리가 될 것으로 확실시되는 아베 신조는 극우 혈통을 이어받은 ‘보수 방류’의 정치인이다. 그가 바라는 일본의 미래상은힘으로 무장한 ‘위대한 보통 국가’이다.

 
‘우쓰쿠시이 쿠니’. 아베 신조 총리 후보가 지난 9월1일 기자 회견을 하면서 20분 동안 여덟 차례나 연발한 말이다. 우쓰쿠시이 쿠니(美しい國)는 ‘아름다운 나라’라는 뜻이다. 아베는 9월1일 원자폭탄 투하지인 히로시마에서 자민당 총재 선거 입후보 의사를 밝히면서 “아름다운 자연에 둘러싸인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갖고 있는 나라로서의 긍지를 느끼고 새로운 국가 건설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디딜 시기가 도래했다”라고 선언했다. 이어 아베는 정권 공약 ‘아름다운 나라, 일본’을 공표하고 ‘문화·전통·자연·역사를 소중히 하는 나라’가 자신이 지향하는 아름다운 나라의 모습이라고 정의했다.

아베는 7월에 발간한 저서 <아름다운 나라에로>에서도 “어린이들이 일본에서 태어난 것을 자랑으로 생각하는 나라를 만들겠다”라고 공약하면서 “아름다운 자연과 오랜 역사, 독자의 문화를 갖고 있는 일본인이라는 사실에 긍지를 느끼고, 일본의 결점을 찾아 헐뜯는 것보다 일본의 내일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 가를 말하자”라고 호소했다.

"싸우는 정치가 되겠다" 공언

아베는 이날 기자 회견에서 여러 번 ‘아름다운 나라’를 언급했지만 헌법 개정·주장하는 외교·강한 일본·전후 체제로부터 탈각·싸우는 정치가와 같은 초우익 성향의 공약이 잇달아 튀어나오자 기자회견장에서는 아베가 꿈꾸는 일본은 ‘아름다운 나라’가 아니라 오히려 ‘무서운 나라’라는 탄식이 새어나왔다.

아베는 정권의 기본적 방향성을 제시하면서 첫 번째 공약으로 전후 민주주의를 전면 부정하는 ‘21세기에 걸맞은 헌법의 제정’을 내걸었다. 아베는 또 구체적 정책으로 ‘주장하는 외교’를 내걸고 ‘강력한 일본’의 구축과 ‘전후 체제에서의 탈각’을 공약하면서 안보리 상임 이사국 진출을 선언했다. 저서 <아름다운 나라에로>에서는 스스로 ‘싸우는 정치가’임을 선언하기도 했다.

아베는 또 자유와 규율의 나라를 구축하겠다고 선언하면서 교육의 발본 개혁을 공약했다. 아베는 그 일환으로 자신이 총리가 되면 교육기본법 개정안을 곧바로 임시국회에 상정하겠다고 공약했다. 자민당의 교육기본법 개정안은 전통·도덕·애국심 교육을 의무화하고 있어 야당들로부터 전쟁 전의 교육 칙어(메이지 천왕의 명으로 국민 도덕의 근원과 국민 교육의 기본 이념을 명시한 것)의 부활이라는 비난을 듣고 있다.

일본의 저명한 저널리스트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 다나카 전 총리의 금맥 연구로 유명)도 “만주사변(1931년)이 발발할 때처럼, 일본 사회 전체가 갑자기 우경화해 과격한 내셔널리즘이 등장할 것 같은 무서운 분위기”라고 걱정하고 있을 정도이다.

아베 자신도 스스로 ‘보수주의자’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는 7월에 발간한 저서 <아름다운 나라에로>에서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가 ‘보수 반동의 화신’ ‘쇼와(昭和)의 요괴(정계의 흑막)’ ‘A급 전범 용의자’라는 비난을 들을 때마다 반발심이 생겨나 ‘보수’라는 말에 오히려 친근감을 느끼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아베는 그러면서 자신을 스스로 ‘보수주의자’나 ‘열린 보수주의자’로 정의하고 있다.      

아베가 단순한 ‘보수주의자’ 혹은 ‘건전한 보수 정치가’인지 아니면 ‘극우 정치가’인지는, 그의 성장 배경, 그가 속해 있는 정치 파벌의 역사적 계보, 그의 출신 지역 선거 등을 살펴보면 명확해진다.  
일부 한국 언론이 ‘아베는 극우가 아닌 보수 본류’라는 기사를 쓰곤 한다. 하지만 자민당 파벌 변천도를 살펴보면 아베 신조는 건전 보수 세력인 ‘보수 본류’라기보다는 극우 세력에 가까운 ‘보수 방류’로 분류하는 것이 옳다.

일본의 정치학자들은 자민당 ‘보수 본류’ 뿌리는 경무장·경제 우선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일본을 경제 대국으로 이끈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총리)라고 본다. 보수 본류는 그후 이케다-오히라-스즈키-미야자와-탄바 고가- 다니가키-고노 그룹으로 변천해온 파벌과 사토-다나카-다케시타-오부치-하시모토-쓰시마로 변천해온 파벌로 대별된다(표 참조).

반면 ‘보수 방류’는 A급 전범 용의자였던 기시를 정점으로 후쿠다-아베-미쓰즈카-모리, 이부키 파로 변천해온 파벌과 패전 후 공직에서 추방된 바 있는 하토야마를 정점으로 고노-나카소네-와타나베-야마사키 파로 변천해온 파벌로 대별된다.

경제 우선과 미·일 안보 중시, 경무장을 주장하는 요시다 노선은 이케다·오히라·미야자와 총리에 의해 계승되었다. 정치 우선·대미 자립·자주 헌법 제정·재군비를 주장하는 기시·하토야마 노선은 기시·후쿠다·나카소네 총리에 의해 계승되어 왔다.

따라서 보수 본류보다 보수 방류 파벌이 더 우경화해 있다는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아베는 기시-후쿠다-아베-미쓰즈카-모리로 이어지는 보수 방류 파벌에 속한다. 이런 파벌 흐름으로 볼 때 아베의 정치 성향은 ‘건전 보수’보다는 ‘극우 정치’ 세력 쪽에 더 가깝다.

아베의 정치적 고향은 야마구치다. 야마구치 현 4구가 선거구인 아베는 자신이 존경하는 인물로 막부 말기 존황양이(尊皇攘夷)를 부르짖으며 막부 타도에 앞장선 조슈 번(현재의 야마구치 현)의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晋作))와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을 꼽고 있다. 아베와 그의 부친 아베 신타로(晋太郞)는 그래서 이름에 다카스기 신사쿠의 ‘晋’자를 사용하고 있을 정도이다.

 
다카스기 신사쿠는 요시다 쇼인이 세운 인재 양성학교 쇼카손주쿠(松下村塾)의 문하생이다. 한반도 침략과 병합에 앞장선 이토 히로부미·야마가타 아리토모 등도 쇼카손주쿠를 거쳤다. 요시다는 일찍부터 ‘조선을 취할 것이냐, 시나(중국)을 취할 것이냐’를 논하던 외정(外征)론자로 메이지 정부가 시마네 현 조례로 독도를 편입하기 48년 전에 독도 찬탈을 제기한 인물이다. 그런 요시다를 아베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고 있다는 것과 그의 정치 고향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이처럼 아베의 집안(20~22쪽 딸린 기사 참조)·소속 파벌·출신 지역 등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의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다.

‘아름다운 나라’라는 구호에는 나름의 맥락이 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가 지난해에 작성한 신헌법 전문의 초안에도 다음과 같은 기술이 등장했었다고 한다. “일본 국민은 아시아의 동쪽, 태평양과 일본해의 파도 넘치는 ‘아름다운 섬들 사이에’ 천왕을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 존경하고...”
일본 시사 주간지 <주간현대> 2006년 9월23일자에 따르면 아베의 ‘아름다운 나라’ 구상은 이미 1993년에 당시 자민당 총재였던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현 중의원 의장)가 제창한 개념이었다. 즉 고노는 당시 연립여당 신생당의 대표였던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현 민주당 대표)가 제창한 ‘보통국가론’에 대항하기 위해 “자민당은 보수 정당으로서 일본의 전통과 역사, 질서를 소중히 해가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아름다운 나라 구상을 발표한 바 있다.

"임기 중 헌법 개정 둘러싸고 격변 일어날 것"

<주간현대>는 아베는 고노의 구상을 표절·도용하면서 고노와는 정반대로 ‘경제 지상주의에 의한 사회 건설, 국익이 대립하면 무력 충돌도 불사하는 나라, 근린 제국이나 아시아 외교의 현실을 외면한 편협한 내tu널리즘의 고취·일본을 군사 국가로 변모시키기 위해 국민을 선동'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바로 아베의 ‘아름다운 나라 일본’의 구상이라고 비난했다.

일본은 지금 제4기 극장 국가로 전환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제4기 극장 국가의 구호는 ‘보통 국가’이다. 보통 국가는 천황을 정식 국가원수로 두고, 자위대를 정식 군대로 삼으며, 안보리 상임 이사국에 진출하는 정치·군사·경제 대국이다.

아베의 ‘아름다운 나라, 일본’ 구상도 전후 체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헌법 개정, 강한 일본, 주장하는 외교, 안보리 상임 이사국 진출 같은 구호가 보여주듯이 단숨에 정치·군사·대국을 지향하겠다는 ‘보통 국가’ 선언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는 나카소네 야스히로가 1982년에 발표한 ‘전후 정치의 총결산’, 오자와 이치로가 93년에 발표한 ‘일본 열도 개조 개혁’보다 훨씬 급진적인 구호이다. ‘아름다운 나라‘는 ‘보통 국가’라는 우익 단어를 정치적 ‘다테마에’(수사)로 바꾼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아베는 전후 일본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뒤엎을 대사건인 헌법 개정을 하는 데는 5년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나카소네 전 총리도 아베가 집권하면 자민당 결성 50주년을 맞이해서 2005년 11월에 작성·발표한 제1차 신헌법 초안(상징 천왕제 유지, 자위군 창설)을 대폭 수정해 더욱 강경한 헌법 초안을 마련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나카소네는 그러면서 헌법 개정을 위해서는 중의원 해산, 대연립, 정계 재편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으며 앞으로 5년 사이에 헌법 개정을 둘러싸고 일본 정계에 격변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헌법 개정의 초점은 물론 상징 천왕제 유지를 별도로 한다면 제9조의 개정 문제이다. 현재의 평화헌법은 9조 1항에서 ‘국권의 발동인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이를 영구히 포기한다’라고 ‘전쟁 포기’를 명문화하고 있다. 2항에서는 ‘전 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육·해·공군 기타 전력은 보유하지 않으며, 국가의 교전권은 인정하지 않는다’라고 ‘전력의 불보유’와 ‘교전권 불인정’을 명문화하고 있다.

아베를 비롯한 자민당 우파 세력은 이미 자위대를 자위군으로 명기하자는 데는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또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해 유엔군뿐 아니라 다국적군, 미군과의 무력행사에 참여할 길을 열자는 데도 합의를 본 상태이다.
다만 개헌안 발의에 필요한 3분의 2 이상 의석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9조의 전면 개정에 반대하는 야당인 민주당과 연립여당인 공명당을 설득하는 일만 남아 있다. 그래서 아베 정권은 우선 국민투표법을 제정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면서 9조의 전면 개정을 유보하는 전략으로 나올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일단 헌법을 개정해 개헌안 발의 선을 재적의원 과반수 이상의 찬성으로 규정해놓으면 과반수 획득에 별 어려움이 없는 자민당으로서는 얼마든지 단독으로 9조를 개정해 자위군이 아니라 국방군, 나아가 일본군을 창설할 수도 있으며,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적 기지에 대한 선제 공격이 가능하도록 헌법을 임의로 고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헌법 개정 움직임이 가시화하면 ‘비(非)핵 3원칙(핵의 제조·보유·반입 금지)’ ‘전수 방어 원칙(무력 행사를 금지한 현행 헌법에 입각해 방어에만 전념한다는 원칙)’ ‘무기수출 3원칙(공산권, 국제 분쟁 당사국에 대한 무기 수출 금지 원칙)’과 같이 지금도 겉만 번드르한 무슨 무슨 원칙들이 한꺼번에 자취를 감출 것이다. 또 일본도 핵 무장을 서둘러야 한다는 소리가 급격히 팽창해갈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적어도 2010년대 초반 내지 중반께에 우리는 다시 ‘대일본주의’를 부르짖는 ‘보통 국가 일본’의 큰 위협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일본 우익 세력들의 억눌린 불만이다. 두 번 다시 전쟁을 도발하지 못하도록 족쇄를 채운 평화헌법 제제에서 60여 년간 누적되어온 일본 우익 세력들 사이에 쌓인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국민들의 지지도가 낮고 야당들의 반대에 부딪혀 헌법 개정이 지지부진할 경우 일본 우익 세력들이 일거에 들고 일어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아베는 어떤 면에서 보면 제도권의 정치가이다. 헌법을 개정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합의를 도출해야 하고 야당들의 협력을 끌어 내지 않으면 안 된다. 참고로 민주당의 오자와 이치로 대표는 “국민들을 계몽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분간 개헌은 무리이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따라서 총리 신분으로서 아베가 법을 무시한 채 독주를 하지는 못할 것이다. 정작 눈여겨 보아야 할 부분은 아베 신조 총리 한 명이라기보다는 그의 뒤에 서 있는 일본 우익 세력의 동향이다.

아베 신조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아름다운 나라, 일본’이라는 문장은 아베 스스로의 발명품이 아니다.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는 1968년 12월12일 스웨덴 아카데미에서 열린 노벨문학상 시상식 자리에서 ‘아름다운 일본과 나’라는 제목으로 연설해 일본의 신비성을 강조하고 아름다운 일본과 일본인의 존재를 부각시켰다.  

그러나 지난 1994년 일본인으로서 두 번째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는 이 수식어를 부정했다. 오에는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아름다운 일본’론을 부정하며 이를 ‘애매모호한 일본’이라는 말로 대체했다. 부전을 맹세했으면서도 개헌 움직임이 꿈틀거리는 일본의 모습을 비판한 것이다. 1994년은 차라리 ‘애매모호한 나라’여서 나았다. 지금 일본은 ‘애매모호한 나라’에서 ‘아름다운 나라’로 치장한 ‘무서운 나라’로 가는 도정에 서 있다. 그 중심에 아베 신조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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