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멸종한 까닭은?
  • 한순구(연세대 교수·경제학) ()
  • 승인 2006.09.29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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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였는지 중학교 때였는지 기억이 확실치 않지만, 침팬지와 인간의 중간 정도의 형태로 생긴 그림이 나오면서 바로 그 그림의 주인공이 인간의 조상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라고 교과서에서 본 적이 있다. 요즘 고고인류학 책을 뒤적여보면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과연 인류의 조상이었는지 아니면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사촌이었는지 논란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일단 내가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인류의 조상이라고 일단 가정하고서 생각해보도록 하자.

과연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어디로 간 것일까? 좀더 정확히 이야기해보면,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왜 멸종한 것일까? 모두 사자에게 잡혀 먹어서 멸종했을까? 아니면 어떤 전염병에 휩쓸려 모두 멸종한 것일까? 물론 지금에 와서 아무도 이 질문에 답할 수 없겠지만, 가장 가능성이 큰 학설은 호모 하빌리스와 같이 더 진화한 인류에 밀려서 멸종했다는 설명일 것이다. 또한 호모 하빌리스가 멸종한 이유는 호모 에렉투스의 등장으로 먹이 경쟁 등에서 밀려나서였을 것이고 호모 에렉투스는 호모 사피엔스에 의해 밀려났을 것이다. 

어떤 새끼 들쥐가 태어났을 때 고양이나 올빼미, 여우, 뱀 같은 천적에게 잡혀 먹힐 확률도 크지만 그에 못지 않은 사망 원인이 옆집 들쥐 엄마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옆집 들쥐 엄마로서는 자신의 귀여운 새끼들이 무사히 성장해서 가정을 꾸미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같은 먹이와 같은 배우자를 놓고 경쟁하는 옆집의 새끼 들쥐일 것이므로 옆집의 들쥐 엄마가 집을 비우면 몰래가서 새끼 들쥐들을 죽이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 인류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처지에서는 사자나 악어 같은 맹수들도 생존을 위협했겠지만, 자신들이 잡을 사냥감을 다 잡아가버리고 자신들의 동굴도 다 빼앗아버리는, 자신들보다 훨씬 진화한 능력을 지닌 호모 하빌리스가 가장 큰 위협 요소였을 것이며, 결국 이들처럼 더 진화한 인류에 의해 멸종당했을 것이다.

진화의 힘이란 놀랍고도 신비한 것 같다. 두뇌크기 4백20~5백50cc 정도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살던 마을에 호모 하빌리스의 두뇌 크기인 5백90~8백cc 정도의 뇌를 가진 돌연변이 어린이가 한 명 태어났을 것이다. 두뇌가 큰 이 어린이가 결과적으로 생존 능력 여러 면에서 뛰어나 더 많은 자손을 퍼뜨리기 시작했고 그 자
식들 모두 아버지의 큰 뇌를 물려 받아서 계속해서 더 많이 생존하기 시작했다고 가정해보자. 

처음에는 비정상적으로 큰 뇌를 지닌 어린 단 한 명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어린이에게서 시작된 일이었지만, 몇 만 년이 흐르고 나면 다른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자손들은 모두 경쟁에서 밀려 씨가 마르고 결국 이 뇌가 큰 돌연변이 어린이의 후손만이 남게 된다는 것이 진화론의 논리이다. 요즘의 관점에서 보면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멸종하고 호모 하빌리스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물론 이런 과정을 통해 인류는 발전해왔다. 그 결과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평균 1천3백50cc의 뇌를 갖는 진화한 동물로 발전한 것이다. 하지만, 진화를 다른 관점에서 보면 진화하지 못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들의 멸종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도 생물이기 때문일까? 생물계의 현상들을 보면 우리 경제와 너무도 흡사한 점이 많은 것 같다. 기술의 진보,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통해 한국 경제는 100년쯤 후에 보면 놀라운 발전 또는 진화를 이루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발전과 진화 뒤에는 한국의 특정 농업이나 특정 단순 노동자들의 멸종이 수반될 것임에 틀림없다. 

마치 살아남은 호모 하빌리스가 자신 때문에 멸종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기억하거나 우리들이 우리 호모 사피엔스 때문에 멸종된 호모 에렉투스를 기억하지 못하듯이 100년 후의 한국 사람들은 아무도 멸종된 농업 분야나 단순 노동 분야에 종사하고 있지 않을 것이므로 그들에 대한 기억도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 중에 전차와 버스에 밀려 멸종된 인력거꾼이나 마부들을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듯이 말이다.

물론 인류는 고도의 사고력을 지닌 존재이므로 멸종이 없는 진화를 이루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연 가능할 것인가?  

현재의 어여쁜 장미꽃이 있기까지에는 덜 예뻐서 멸종된 무수한 꽃이 있었을 것이고, 현재의 멋지게 창공을 나르는 독수리가 있기까지는 빠르게 날지 못해서 사라져간 많은 다른 독수리들이 있었을 것이다. 발전과 진화는 바람직한 것이고 혹시 싫다고 해도 막기 어려운 것이다. 발전과 진화가 없었다면 우리 인류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라진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생각하면 왠지 슬픈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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