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고 탈 많은 이천수 ‘양치기 소년’인가
  • 김세훈 (경향신문 기자) ()
  • 승인 2006.10.27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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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적절한 언행→반성→망언→사과’ 반복해 신뢰 추락
 
일반적으로 공인(公人)이라고 하면 대중에게 인지도가 높은 사람을 뜻한다. 자신을 아는 사람이 많은 만큼 발언과 행동을 조심해야 하는 것이 공인의 의무다. 자신이 대중에게 미치는 막강한 영향력에 대한 반대급부인 셈이다. 따라서 공인으로서 자칫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날에는 엄청난 타격을 받기 마련이다.

최근 연예·공연·스포츠 등 문화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면서 젊은층의 전폭적 인기를 얻는 운동 선수·연예인들이 국회의원이나 경제계 최고경영자 못지않은 파급력을 갖게 되었다. 관심이 집중되다 보니 마약 복용·음주 운전뿐만 아니라 단 한 번의 실언으로 된서리를 맞는 비운의 스타들이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축구 국가대표팀 공격수 이천수(25·울산)가 공인의 임무를 망각한 대가로 엄청난 홍역을 치르고 있다. 프로축구연맹은 10월22일 인천 경기 도중 판정에 불만을 품은 나머지 심판을 밀치고 삿대질을 하면서 심한 욕설을 하는 등 불미스러운 행동을 일삼은 이천수에 대해 최근 네 경기 출전 정지와 벌금 4백만원이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당초 레드카드로 인해 받은 두 경기 출전 정지까지 포함하면 여섯 경기 출전이 정지되어 내년 시즌 초반까지 뛰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천수는 당시 0-1로 뒤진 후반 막판 장상원의 동점 골이 핸들링으로 판정되자 심판을 밀치며 항의했고, 심판에게 육두문자를 퍼부어 레드카드까지 받았다. 이날 경기가 텔레비전을 통해 안방까지 중계되었다는 점에서 파문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천수의 징계를 바라보는 시각은 대체로 비슷하다. 모든 규칙을 철저하게 지켜야 하는 선수로서 심판에게 육두문자를 퍼부은 행동에 대한 응당한 처분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선망의 대상인 국가대표 선수로서 어린이들이 텔레비전을 통해 지켜보는 가운데 행한 몰상식한 추태는 쉽게 용서받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와 함께 이천수에게 쏠리는 또 다른 시선은 안타까움이다. 이천수의 당시 행동을 이해해야 한다는 면죄부가 아니라 최근 1년 동안 개과천선한 이천수에 대한 아쉬움이다.

사실 이천수만큼 설화에 휘말린 스포츠 스타도 드물다. “나는 아시아의 베컴이다. 잉글랜드 베컴을 뛰어넘겠다” “우리나라 축구 선배 중에는 본받을 만한 사람이 없다” “마음만 먹으면 여자를 100% 꼬실 수 있다” “히딩크 감독은 독사였다” 등등. 거침없는 솔직함, 무서움 없는 당돌함에서 나오는 자유로운 표현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적절한 행동이 뒤따르지 않은 공언은 결국 허언일 뿐이다. 혀천수·입천수·X천수…. 그간 이천수에게 붙은 별명들은 그에 대한 팬들의 평가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무조건 용서 구하며 인간적 성숙 다짐

특히 이천수가 2003년 7월 큰소리치며 스페인 리그로 진출했다가 2년 만에 초라하게 귀국했던 것이 이미지 실추에 ‘결정타’였다. 2005년 여름 ‘조용히’ 스페인에서 돌아온 뒤 그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해 K리그 후반기부터 뛰면서 울산을 4강 플레이오프전에 진출시킨 뒤 챔피언에까지 올려놓았다. 이천수는 지난해 말 박주영을 제치고 ‘2005시즌 K리그 MVP’로 뽑혔을 때 이렇게 말했다. “이제 저는 천방지축 스무 살 때 이천수가 아닙니다. 예전 저의 모습을 모두 잊어주시고 지금 정신 차린 새로운 모습을 봐주세요.”

이천수가 K리그와 대표팀에서 보여준 플레이는 단연 국내 최고였다. 지난 1월 독일월드컵을 준비하기 위해 40여 일간 실시한 해외 전지 훈련에서도 가장 잘 뛴 선수가 이천수였고, 독일월드컵에서도 골을 넣지 못했을 뿐 최고 활약을 펼친 태극전사 또한 이천수였다. “이제서야 이천수가 정신을 차린 것 같다”라는 팬들의 호의적인 분위기가 절정에 이른 순간이었다. 공인의 이미지는 개선시키기는 어려워도 망가지기는 쉬운 법이다. 지난 1년 동안 개과천선했던 이천수는 이번 ‘욕설 파문’으로 또다시 이미지를 구겼다. 인터넷에 올라온 악의적인 댓글을 참아가며 이미지 개선을 위해 쏟아 부은 1년간의 남모를 정성이 한 번의 실수 때문에 수포로 돌아간 셈이다.

이천수는 상벌위원회 결정 이후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한마디 변명도 없이 무조건 용서만 구했다. “너무 죄송합니다. 이기려는 승부욕이 앞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고 말았습니다. 제가 저지른 일인 만큼 어떤 처벌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팬들에게 사죄하는 뜻으로 자선 활동도 하겠고, 심판에게 사과도 할 생각입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다짐했다. “인성적으로도 성숙한 선수가 되기 위해서 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얼마나 많은 팬들이 이천수의 다짐을 한번 더 믿어줄지 모르겠지만 이천수는 대중이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공인을 오랫동안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점만은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이미지 개선을 위해서 과거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함은 물론이다. 팬들로부터 ‘양치기 소년’이라고 불리기 싫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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