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 승부처는 ‘강남’ 이다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6.11.20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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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다시 나왔지만 서울 강남 지역은 여전히 ‘잠재적 화약고’로 남아 있다. ‘세금 고지’까지 점령하려는 강남 연합군의 기세가 등등한 데다, 수급 불균형까지 잠복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저

 
“참여정부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이 이상을 요구하는 것은 정부 간판을 내리라는 얘기다.” 노무현 정부 부동산 정책의 대표적인 반대론자로 알려져 있는 한 전문가는 11·15 대책이 발표되던 날 이렇게 논평했다. ‘수요 억제’에서 ‘공급 확대’로 부동산 정책의 중심축을 급격히 이동시키며 전략적 후퇴를 감행한 이 정부로서 마지막 남은 보루는 강남의 실수요를 여전히 무시하면서, ‘세금 폭탄’으로 부자들을 계속해 옥죄는 강남 압박 전략 정도라는 것이다.

그러나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한 ‘강남 연합군’은 내친김에 이 최후의 보루마저 무너뜨릴 기세로 진군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관련 세제며 정책을 반시장적이라고 줄기차게 비판해온 한나라당은 종합부동산세·양도세 등 세금 폭탄의 뇌관을 이참에 아예 제거하려 시도하며 여론 눈치를 살피고 있다(딸린 기사 참조).
 
진보 진영으로부터 ‘건설 5적’이라고 지목받는 나머지 연합군(정치인-건설 재벌-경제 관료-보수 언론-보수 학자) 또한 이번 11·15 부동산 대책에는 핵심이 빠졌다며 정부를 맹공하는 중이다. 이른바 강남 대책이 빠진 공급 확대론은 ‘팥소 없는 찐빵’이요, 이런 반쪽자리 대책으로는 집값 급등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이 내세우는 주요 논거이다.

김경환 교수(서강대·경제학)는 “참여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시장을 일시적으로 ‘기절’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집값을 폭등시키는 악순환을 계속해왔다”라며, 이번 11·15 대책에서도 정부가 ‘공급을 하기는 하는데, 사람들이 원하는 데는 쏙 빼고 공급’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지난 3년간 강남 집값은 정부 의도와 정반대로 움직여왔다. 2003년 10·29 대책 발표 이후 한동안 소강 상태를 보이던 강남 집값은 2005년 상반기부터 다시 급등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정부 대책이 발표된 직후 잠시 안정되었다 3~6개월 뒤 더 높이 재점핑하는 이같은 집값 등락 패턴은 8·31 대책, 3·30 대책, 10·27 대책 이후에도 어김없이 되풀이되었다(그래프 참조).  

 
결국 문제는 여전히 강남인 셈이다. 강남을 투기적 가수요의 진원지로 지목하며 강남 집값을 잡아 부동산을 안정시키겠다고 칼을 빼들었던 노무현 정부는 바야흐로 강남의 대반격에 직면하게 되었다. 일단 정부는 이들의 도발에 무시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정부부처 부동산 특별대책반장을 맡고 있는 박병원 재정경제부 제1차관은 “강남 집값이 더 올라도 그것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다”라고 말했다(‘시사저널 32쪽 인터뷰’ 참조). 강남은 지금 투기꾼끼리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을 뿐이며, 이들 지역 집값이 수도권 다른 지역 집값을 견인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동산 전문가 상당수는 향후에도 강남이 ‘잠재된 화약고’라는 데 의견을 일치시키고 있다. 비강남권·중소형 아파트가 중심이 된 최근의 집값 이상 급등세는 이번 11·15 대책으로 당분간 진정 기미를 보일 것이라고 이들은 전망하고 있다. 이상영 부동산114 대표는 “경제성장률·금리 등 거시 변수로만 보면 내년 집값은 하향-안정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라고 말했다. 내년부터 1가구2주택 양도세 중과세 등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세제가 위력을 본격 발휘한다는 점도 이같은 전망을 뒷받침한다. 

강남 수요 대체할 매력적 공급지 없어

단 상황을 낙관할 수만은 없다고 이대표는 말했다. 대표적인 미시 변수가 강남 지역의 수급 불균형으로, 이로 인해 다시 집값 상승이 재연될 위험은 여전히 잠복해 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2007년은 강남 지역 아파트 입주 물량이 노무현 정부 들어 최저로 떨어지는 해이다(표 참조). 2005년 9천9백50호에서 2006년 1만3천8백56호로 크게 증가했던 강남 3구(강남구·송파구·서초구) 아파트 입주 물량은 2007년에는 8천2백 호 수준으로 다시 감소한다. 2000년대 초반 대거 인·허가를 받았던 재건축 물량이 거의 소화되면서 다시 나타난 수급 불균형 현상이다.

이번 11·15 대책도 이런 불균형을 해소시킬 것이라는 기대감을 충족시키는 데는 역부족이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이다. 정부는 2010년까지 기존 계획보다 12만5천 가구 많은 1백64만 가구를 수도권에 집중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강남 수요를 흡수하는 효과가 가장 클 것으로 기대되었던 송파 신도시는 공급 물량이 기존 4만6천 가구에서 4만9천1백 가구로 6.7% 늘어나는 데 그쳤다. 용적률이나 개발 밀도를 재조정하는 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강남 지역의 수급 불균형이 부동산 시장의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강남 수요가 투기적 가수요냐 실수요냐 하는,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계속된 논쟁에서 공급 확대론자들은 “강남에 주택 수요가 몰리는 것은 교육 여건 등 우수한 주거 환경에 기인한 것이다”라며, 강남에 살고 싶어하는 이들을 위해 이 지역에 양질의 주택을 대량 공급하는 것이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눈길을 끄는 것은  국책 연구기관이나 국회 차원 연구 자료에서까지 이런 주장이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1월 초 신학용 의원(열린우리당)에게 제출한 자료에서 강남 수요를 끌어들이지 못한 정부의 추가 신도시 계획이 부동산 시장을 제대로 안정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표시했다. 

‘(신도시 건설의) 구체적 효과는 추가 신도시가 위치·거주 환경·주택 규모 등의 측면에서 현존하는 주택 수요를 얼마만큼 충족시켜줄 수 있는가에 달려 있’음에도 후보지로 지목된 검단과 파주는 집값 상승을 주도하는 강남 수요를 대체하기 어려워 집값 안정과 거래 활성화를 유도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 이 보고서에 담긴 주장이었다. 나아가 이 보고서는 ‘검단의 경우 이미 주택 보급률이 1백10%에 가까워 지역 수요를 흡수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라고도 적시했다. 이들 신도시 입주 시점께 ‘강남 등 인기 지역에는 여전히 집이 모자라는데 비인기 지역에는 집이 넘쳐나는’ 국지적 공급 과잉 우려가 현실화할 수도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국회예산정책처가 11월 초 발행한 <2006년도 경제 운용 방향 및 정책 과제 분석>에서도 강남 수요를 인정해야 부동산 시장을 정상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구조적 변화를 겪었는데 그 특징은 첫째, 부동산 가격을 결정하는 데 이자율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거주자의 취향·지역·소득 등에 따라 부동산 시장이 차별화·세분화되면서 이른바 하위 시장이 발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나타난 것이 지역별 또는 규모·유형별로 집값이 양극화되는 양상이다. 

이 보고서는 이런 집값 양극화를 결과적으로 더 심화시킨 것이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라고 지목했다. 고급 주택 및 다주택 소유자들의 세 부담을 높여 집값을 안정시키려던 애초의 정책 목표와 달리 10·29, 8·31 대책 이후 강남 등 인기 지역 집값은 꾸준히 상승한 반면, 비인기 지역 집값은 거의 정체됨으로써 이들 지역의 주택 가치가 상대적으로 하락했기 때문이다.

 
지난 5년간 아파트 시장에서 부의 집중 현상은 더 심화되고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 강남과 비교할 때 지방 아파트 값은 인천 19%, 대전 19%, 대구 18%, 부산 16%, 울산 13%, 광주 10% 수준이다. 6대 광역시의 평당 아파트 가격이 서울 강남구의 20%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셈이다. 서울 내에서도 양극화 추세는 뚜렷하다. 국민은행이 발표한 서울 지역 주택 매매가 추이를 보면 올 9월 이전까지만 해도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 3개구 집값은 지속적으로 상승한 데 반해 강북·노원·도봉 등 강북 3개구 집값은 거의 변화가 없었음을 알 수 있다(그림 참조). 

강남 다주택자 물량 끌어내야

한국경제연구원 송원근 연구위원은 주거지로서의 질적 우수성과 더불어 이 지역에 대한 주택 공급이 지속적으로 부족할 것이라는 기대가 강남 집값을 더 가파르게 끌어올렸다고 지목했다. 이런 희소성의 기대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거래세·양도세 등을 완화해 주택 거래를 활성화하고, 토지 이용 규제 및 재건축 규제 등 각종 규제 정책을 완화함으로써 이 지역 공급 물량을 탄력적으로 늘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강남 지역 실수요를 인정한다 해도 세제 및 각종 규제를 완화하는 방식으로 이 지역에서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반박도 만만치 않다. 11월16일 천정배 의원(열린우리당)이 주최한 부동산 정책 토론회에 발제자로 참석한 김용창 교수(세종대)는 "양도세를 완화하자는 주장에도 일부 일리는 있으나 현재 더 중요한 것은 정책적 일관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말을 따랐다가는 손해만 본다'는 심리가 여기서 더 확산되었다가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부동산 시장은 특성상 경제적 요인 못지않게 심리적 요인의 영향을 민감하게 받는다.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들이 부동산 정책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집값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 시장 일각에서 나오는 것도 이때문이다(딸린기사 참조).

통계로 보면 강남은 특히 다주택자의 천국으로 나타난다. 심상정 의원(민주노동당)이 공개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강남 3구에 자기 집을 소유한 자가 점유 가구 중 2주택 이상 다주택을 소유한 가구 비율은 각각 강남구 20.1%, 서초구 19.1%., 송파구 17.2%로 서울 평균(13.9%)을 훌쩍 웃돌았다(표 참조). 

심의원은 또 1990~2005년 15년간 이들 강남 3구에 9만5천3백58채 주택이 새로 공급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자가 점유 가구 수는 1만3천6백79가구만이 증가해 신규 공급 물량 중 14.5%만이 내집 마련 몫으로 충당된 것으로 나타났다고도 지적했다. 

이는 국세청 자료에서도 확인된다. 국세청이 지난 2005년 강남 소재 9개 아파트 단지를 상대로 주택 거래 실태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전체 취득 건수(2만6천8백21건) 가운데 3주택 이상 보유한 세대가 취득한 건수는 무려 58.8%(1만5천7백61건)에 달했다. 이 시기 시장에 공급된 주택의 상당수가 실수요자가 아닌 투기적 수요자에게 매각되었음을 추정케 하는 자료이다.

심상정 의원은, 이에 따라 신규 공급 물량을 늘리기에 앞서 집 부자들의 주택 과다 소유를 제한하는 조처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택담보대출 제한, 신규 아파트 분양 제한, 보유세 및 임대소득 과세 강화 등이 그것이다.   

김용창 교수는 이들 지역에 대해 한시적으로 주택 소유를 제한하는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1가구 3주택 이상 다주택자의 경우 신규 취득을 아예 금지시키거나, 신규 취득 후 기존 주택을 강제 매각토록 하는 방안 등이 그것이다. 김교수는 이렇게 기존 주택을 강제로 매각하게 함으로써 신규 공급분만큼 주택이 시장에서 공급될 수 있도록 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시장주의자들은 ‘말도 안 되는 재산권 침해적 발상’이라며, 일고의 가치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풀 것인가, 옥죌 것인가. 세제 강화 및 재건축 규제를 통한 투기 소득 환수라는 최후의 보루를 놓고 노무현 정부와 강남 연합군 사이에 벌어진 부동산 전쟁은 이제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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