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신보호주의 물결 '넘실'
  • 워싱턴 · 정문호 통신원 (eco@sisapress.com)
  • 승인 2006.11.24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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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에 반자유무역주의 정서 퍼져 한미 FTA 협상도 난항 가능성

 
미국 내 대표적인 공화당 텃밭이자 자동차·철강·고무 등을 생산하는 제조업체들이 밀집해 있는 오하이오 주. 부시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지난 6 년 동안 오하이오 주에서는 무려 2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는데, 그 원인이 자유무역 탓이라고 여기는 주민들이 많다. 그런 불만을 가진 주민 한 사람이 최근 영국의 유력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 독자란에 사연을 써서 보냈다. 그는 ‘오하이오 주에서는 일자리가 없으면 의료보험도 없으며, 은퇴할 수 있는 길도 없다. 생명보험도 일자리를 잃으면 끝이다. 실업보험도 곧 사라지고 실직 수당역시 보장이 없다. 자녀 학자금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집세며, 자동차세, 전기·수도 비용도 낼 길이 없다. 우리를 속 좁은 사람들이라고 비난할지 모르지만, 당신도 우리처럼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보면 이런 고통을 느끼게 될 것이다’라고 하소연한 후 일자리를 빼앗기게 된 탓을 자유무역에 돌렸다. 공화당 텃밭인 오하이오 주에서는 이런 반자유무역 정서가 작용해서인지 최근 의회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의 마이크 드와인 연방 상원 의원이 민주당 후보인 세로드 브라운 후보에게 참패하는 이변을 기록했다. 

이번 중간선거에서는 오하이오 주뿐 아니라 미국 전역에서 적지 않은 후보들이 반자유무역주의 구호를 내걸며 당선되었다. 초선에 성공한 민주당 의원들은 물론이고 공화당 의원들 대다수가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보장하겠다’ ‘외국으로 일자리를 옮기는 미국 기업들을 응징하겠다’라는 구호를 내걸어 당선되었다. 미국 의회에 신보호주의 물결이 서서히 밀어닥치고 있는 느낌이다. 특히 이들 의원 가운데는 부시 행정부가 들어선 뒤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한 천문학적인 무역 적자의 원인이 자유무역에 편승한 중국 등 개발도상국들의 무차별 미국 시장 공세라고 여기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이같은 반자유무역 정서의 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미국 하원에 의해 보기 좋게 좌절된 베트남의 대미 항구적 정상무역관계(PNTR) 협정건이다. 대변한다. 베트남 건이 부결된 데는 멕시코와 카리브해 연안국 및 중국으로부터 지난 10년간 값싼 섬유제품이 쏟아져들어오면서 큰 타격을 입은 미국 섬유업계의 강력한 로비가 주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반자유무역 기류를 반영하듯 이번선거에서 대승한 민주당 지도부는 미국이 외국과 맺은 자유무역협정이 의회를 통과하기가 힘들 것이라고 공공연히 떠들고 있다. 또 의회가 위촉해 설립한 미중 경제안보검토위원회는 통화 조작과 지적 재산 보호를 소홀히 한다는 의혹을 받아온 중국에 대해 강력한 규제를 권고하는 한편 중국으로 일자리를 옮기는 미국 기업들을 면밀히 조사할 것도 요구하고 있다. 경쟁력이 튼튼한 외국 자동차업체들로부터 강력한 도전에 직면해 있는 미국의 3대 자동차 회사 총수들은 최근 부시 대통령을 만나 외국 기업들 탓에 판매율이 저조해졌다며 구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지난 한미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때 미국 무역대표가 줄곧 한국에 국내 자동차 보호 정책 변경을 요구한 것도 미국 의회의 심상치 않은 반자유무역 정서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현재 미국 의회에 계류중인 대표적인 반자유무역 법안으로는 민주당 중진인 찰스 슈머 상원의원이 공화당의 린제이 그래험 의원과 공동으로 지난 2003년 발의한 대중국 무역 보복 법안을 꼽을 수 있다. 이 법안은 중국이 지금처럼 인위적으로 환율을 이용해 미국을 상대로 대미 무역 흑자를 계속 챙길 경우 중국산 수입품에 27%의 관세를 매기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법안은 부시 행정부의 간곡한 요청으로 지금껏 표결이 지연되기는 했지만 내년 초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하면 어찌될지 알 수 없다. 중국은 이런 미국 의회의 압력에 굴복해 작년 10월 아주 상징적인 수준의 환율 인상을 단행했지만 미국 의회의 기류는 여전히 싸늘하기만 하다. 특히 올해 무역 적자가 지난해보다 8백억 달러나 늘어난 7천9백억 달러에 달하고 그중 2천억 달러 이상이 대중국 무역 적자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민주당 의원들은 중국을 겨냥해 보호주의의 칼날을 갈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지지 세력인 전미노총은 이 같은 무역 적자로 인해 지난 5년간 미국에서 3백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노조의 입장을 누구보다 앞장서 지지해온 많은 민주당 의원들은 중국 등 저임금 국가들의 저가 수출 공세로 인해 무역 불균형의 골이 깊어지고 제조업 분야에서 미국인의 일자리가 흔들리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최근 부시 행정부가 서명을 끝낸 페루와 콜럼비아와의 자유무역협정에 대해서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민주당이 주도하게 될 하원에서 막강한 세입세출위원장을 맡게 될 찰스 랑겔 의원은 “우린 미국 산업, 미국인 일자리 그리고 미국의 제조업자들을 보호해야 한다”라면서 보호주의의 칼날을 벼리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부시 대통령이 자신의 권한으로 대외무역협정을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한 권한도 내년 6월 말까지로 얼마 남지 않았다. 민주당 주도의 의회에서 예견되는 반자유무역 정서를 감안할 때 기한이 연장될 가능성도 희박하다. 미국 최대 노조 세력 중 하나인 유나이티드 철강노조의 레오 제라드 의장은 “부시 대통령의 신속 처리 권한 연장 여부가 행정부와 의회간의 첫 격돌이 될 것이다”라고 벼르고 있다.

이처럼 내년에는 미국 의회에서 반자유무역주의 정서가 과거 어느 때보다 강하겠지만 그렇다고 미국이 본격적인 반자유무역주의의 길로 들어설 것으로 판단하는 것은 이르다. 민주당 입장이 무조건적인 반자유무역이라기보다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려는 나라들이 엄격한 노동 및 환경기준을 지킬 수 있도록 협정안에 이를 명시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그런 기준을 요구할 경우 유럽이나 남미, 아시아 교역국들이 가만 있지 않을 터이니 미국도 자기 마음대로 할 처지가  못 된다. 이래저래 세계 최강의 경제대국 미국은 이른바 ‘세계화’ (globalization) 공세를 펼치며 자유무역 주의를 전파해왔지만 공교롭게도 국내적으론 지구화에 적응하지 못한 많은 업체들의 도산과 그에 따른 일자리 상실로 인해 홍역을 앓고 있는 셈이다. 과거 클린턴 행정부 시절 의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는 크리스토퍼 콜포드 씨는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 의원들 마음 속에 자유무역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어 현재 추진 중인 각종 자유무역 협정이 내년에 과연 의회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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