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의 진화
  • 전진삼(건축비평가·발행인) ()
  • 승인 2006.12.14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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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이 돌아온다. 스펙터클 사회로 질주하는 오늘날 도시건축의 지형에서 한옥의 생환 혹은 귀환은 반가운 일인가?
북촌을 찾는다. 최근에 그곳을 가보지 않은 당신이라면 낯선 도시동네의 풍경에 심히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길가로 나선 한옥의 아이콘이 현대건축과 절묘한 조합을 보이고 있는 가회헌(황두진 설계)을 비롯하여 건물의 옥상에 마치 오래전부터 그곳에 있어온 듯한 정자 분위기의 3칸 집, 서미갤러리(유태용 설계)의 한옥을 볼 수 있다. 오래 전의 우리네 집들이 지형의 표고차를 수용하며 집을 앉혔듯이 이 둘의 관계는 평지에 지은 현대건축의 일부임에도 불구하고 한옥을 앉힌 바닥면의 높이의 차를 이용한 기와 지붕선의 중첩을 보여줌으로써 동네의 경관을 풍요롭게 한다.

가회헌 서쪽 길모퉁이의 작은 집, 통유리와 강렬한 색면 그리고 금속성 재료의 지붕을 얹은 비정형에 가까운 형태의 이 집은 건너편 건물의 외장재와 유사 패턴으로 동네의 분위기를 한껏 띄우고 있다. 이질적인 볼륨과 형태와 재료들의 조합임에도 하나가 된 풍경을 발견하는 것은 이 동네가 지닌 공간문화적 잠재성을 깨운 사건으로 기록될만하다.

북촌에는 디자이너, 아티스트들의 작업실로 쓰이는 한옥의 리모델링 사례가 다수 존재한다. 외양은 한옥의 모습을 유지한 채 와인바 등 분위기 있는 상업공간으로 내부 기능을 바꾼 집의 형식. 두가헌(최욱 설계)이 대표적이다. 더러는 작은 고물품의 상점으로 바뀐 집도 있고, 하루헌(박민철 설계)같이 처음부터 세컨드하우스의 개념을 도입하여 개인 서재 겸 문화사랑방 같은 커뮤니티 공간으로 용도를 변경하여 쓰는 집도 있다.

한옥을 리모델링 할 경우 공사비는 생각보다 많이 든다. 평당 2천만 원 쯤은 들여야 제대로 된 집이 지어지니 한옥은 비싼 집이다. 그래도 인기는 높다. 소수의 엘리트층이 주 고객인 이 동네 한옥마니아들은 기품 있는 생활공간에서 전통과 현대가 조화되어 있는 새로운 주거 트렌드의 프리미엄을 만끽하며 살아가고 있다. 서울 강남에서 20평대 아파트 가격이 10억 원을 넘어선지 오랜데 북촌에서 그 돈이면 50평 대지에 지상 30평 지하 10평 총 40평 규모 이상의 내 집을 가질 수 있다. 마당까지 더하면 집의 크기는 강남의 서너 배 이상은 된다. 단, 당신이 자녀의 학군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그런가하면 한옥은 춥고 불편할 거란 상식이 수정되어야 할 판이다. 현대건축에서 활용되는 신 자재와 공법이 접목되면서 내부공간이 개량된 한옥은 분위기 좋고, 지내기 편한 집으로 변신하고 있다. 더러 불편의 공간 철학을 즐기는 이들도 존재하지만 오늘날의 한옥은 젊은 건축가들의 실험의지가 개입되면서 나날이 진화되어가는 중이다.

흥미로운 것은 한옥의 리모델링 혹은 한옥과 현대건축의 조합을 이룬 설계자들의 연배가 대체로 40대 초반의 현대건축을 전공한 건축가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한옥의 설계행위를 통하여 작가의 위상을 견고하게 하며, 작업된 결과는 실험성 짙은 현대건축으로서 한국건축의 지평 확장에 기여했다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에서 실험적인 현대건축가로 주목받으려면 한옥에 도전하라.

역설적이지만 도전하는 소수의 건축가들에 의하여 21세기 사용자의 공간개념을 뒤바꿀 유비쿼터스 공간과 한옥이 날로 가까워지고 있다. 우리의 젊은 건축가들이 미학적이며 동시에 실용적인 한옥의 잠재성을 드러내는 데에 열심인 까닭이다.

반면에 북촌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한옥의 주거상이 결코 밝지만은 않다. 단층 주거군락을 이루는 한옥마을의 이미지에 가려진 원주민들의 생활공간으로서의 한옥과 오늘 우리가 주목하고 있는 일련의 한옥은 다르다. 불량 한옥의 개선을 위한 지원금 제도가 있지만 액수가 크지 않을뿐더러 그렇게 하여 일부 개량한 집이 살림집으로서의 지속적인 매력을 키우는 데는 역부족이다. 그들 대다수에게는 강남의 집값 몰이가 낯설기만 하다.

북촌은 작은 필지에 지어진 크지 않은 집들이 많아서 특히 재미있는 동네이다. 장구한 동네의 숨소리가 작은 집들과 골목길 위에 촘촘하게 녹아 있다. 그러나 북촌 바깥에선 급격하게 다수의 작은 집들이 사라져가고 있는 추세다. 서울시 전역에 걸쳐서 벌어지고 있는 뉴타운 사업으로 말미암아 고밀도의 대형 주거단지로 재개발되는 사업들의 대부분은 도시에 누적된 시간성을 한순간에 지워버리는 무모함을 경시한다. 그 결과 개발은 일사천리 이루어지지만 도시의 깊이는 실종된다.

지금 이곳은 확실히 예전의 북촌 풍경이 아니다. 부쩍 늘어난 외국인 관광객들과 낮부터 밤까지 이곳의 거리 분위기를 즐기는 기업체 임직원들과 주민들의 동선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삼청동, 사간동, 화동, 안국동, 재동, 가회동, 원서동에 이르는 동네가 주거 중심에서 소형 아트숍과 전문화랑과 미술관과 복합 기능의 와인바, 커피숍 등으로 확산일로에 있으며 그 중심에 한옥이 존재한다.

마지막 희망은 북촌에 남아 있는 700여 채 한옥의 향방에 달려 있다. 현재의 대다수 주민들이 안고 있는 취약한 거주성과 자산가치에 대한 불투명한 미래를 극복할 수 있는 획기적인 제도의 마련과 정책의 조정이 가능하다면 북촌 한옥마을은 생활공간으로서 프리미엄이 높은 고품격 동네로 다시 태어날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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