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갈증, 해갈이 쉽지 않네
  • 홍선희 편집위원 ()
  • 승인 2007.01.30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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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청소년들, 일반학교 적응 만만치 않아...대안학교가 해결사 역할

 
굶주림과 추위, 공포의 터널을 뚫고 대한미국에 도착한 탈북자가 정착 초기 일상생활에서 겪는 크나큰 어려움은 무지이다. 풍족하게 먹고, 등 따숩고 유행 패션을 걸치지만 속마음은 불편하다. 체제, 교육, 사람들의 사고, 구사하는 어휘가 다르니 밖에 나가 사람과 접촉하는 것이 두렵다. 그래서 청년들이 이주 초기에는 컴퓨터 게임이나 북한 영화 비디오에 몰두하고 자기들끼리 모여 야외 스포츠장을 찾는다.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들은 처음에는 북한 억양 때문에 놀림감이 되지만 언어 습득과 적응 능력이 뛰어나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동화된다. 그러나 입 하나라도 줄이고자 열 살 언저리에 가출해 타국에서 수년간 생존하느라 청소년기 없이 훌쩍 청년기로 접어든 이들의 경우 한국의 대학 입시와 경쟁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나원에서의 3개월 교육기간은 사회를 알고 적응하기에 너무 짧은 시간이다. 1년 정도 자신의 적성을 찾아 준비하고 사회에 진출할 경우 적응이 수월하고 한국인들과 융화될 수 있다는 것이 관련 교육자들의 말.
기독교 계통의 쉼터에서 갈 곳 없는 새터민들을 위하여 제공하던 교육 프로그램이 대안학교 형식으로 발전한 것은 2003년경으로 현재 이들을 위한 대안학교는 전국에 6개소가 있다.
서울 관악구의 여명학교, 영등포의 셋넷학교, 천안의 하늘꿈학교, 송파의 하늘꿈학교, 남양주의 한꿈학교 그리고 원불교가 운영하는 한겨레학교 등 여섯 개이다.


경제적 이유로 학교 그만두기도


 
여명학교의 시초는 야학 교습소인 자유터이다. 자유터는 정규학교에 다니는 탈북 청소년들의 학습을 돕고자 시작한 것으로 여기서도 수업 진도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학생들을 위하여 만든 것이 중·고교 과정인 여명학교다. 10여 개 교회가 공동 출자한 건물이 낮에는 여명학교로, 밤에는 자유터로 쓰이는 이곳에는 50여 명이 다닌다.
북한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4년 전 입국한 김철리씨(22)는 수능을 거쳐 서강대 법대에 진학해 어머니를 기쁘게 했다. 1년간 서울 마포의 고등학교를 다닌 후 자유터에서 원어민 봉사자들로부터 영어를 배웠단다.
탈북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도시형 대안학교 ‘셋넷학교’(서울 영등포 당산동)는 다양한 체험학습과 문화적응 훈련을 염두에 둔 커리큘럼이 특징이다. 일부 학생들은 친척도 없고, 생활 기반도 없어 가족 같은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학교의 인테리어를 일반 집처럼 꾸몄다.
셋넷학교 학생들은 2005년 자신들의 탈북 여정을 담은 30분짜리 다큐멘터리 <머나먼 여정>을 제작했고 지난해에는 <기나긴 여정2>를 만들었다. 다음 주제는 남한에서 겪은 차별이라 한다.
셋넷학교 박상영 교장(45)은 자신의 길을 찾으려면 다른 문화를 다양하게 접하고 자기다운 방식으로 소화시키는 힘을 길러줘야 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경제적 이유로 학교를 중도에 그만두기도 한다. “20대 초반이면 성인이다. 집에서 돈을 탈 수 없다. 휴대전화도 쓰고 차비도 쓰고 친구도 만나고 하려면 최소한 30만~40만원이 필요하다. 대부분 집안 형편이 어렵고 그러다 보면 학생들이 ‘선생님 몇 달 정도 아르바이트하다 올게요’하고 떠난다”라며 안타까워 했다.
 
천안 하늘꿈학교의 김성원 교장(39)은 “탈북 청소년 대부분은 폐쇄적인 성향이 강하다. 취미 활동뿐 아니라 농촌 일손 돕기, 또래 집단과 자매 결연, 해외 연수 등의 활동도 한다. 아무리 어려워도 후원금의 10%를 따로 떼어 이들에게 견문을 넓혀주기 위해 1년에 한두 차례 해외 연수 경비로 쓴다”라고 말했다.
탈북 청소년들이 일반 학교에 바로 적응하기 어렵다는 것은 그간 누누이 알려졌으나, 아직도 실질적인 대안이 마련되지 않았다. 현재 대안학교에 다니는 학생들 중 상당수는 4월에 있는 검정고시를 앞두고 시험 공부에 매달려 있다.
이들의 공부를 돕기 위하여 대학생만 아니라 교수·주부·퇴직자들이 자원봉사자로 나서고 있다. 셋넷학교의 경우에는 여름 캠프에 여의도고교와 의정부고교 학생들이 학생 교사로 참가한다.
자원봉사자로 활동한 어느 사범대학생은 자신의 블로그에 이렇게 적고 있다. “봉사라는 것의 의미를 잘 모르겠거니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은 봉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나는 그들에게 제대로 해주는 것이 없는데 나는 그들로부터 더 큰 무언가를 많이 느끼고 받아왔기 때문이다.”
2~5년 전 입국한 탈북 청소년들이 낯선 대학 생활과 진로·졸업·취업 등의 어려움을 심각하게 호소하기도 한다. 등록금은 정부에서 지원해주지만 생활비나 용돈을 마련하느라 학업에 전념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북한인권시민연합은 수년 전부터 탈북 대학생들에게 바람직한 대학 생활 및 학업 성과 극대화, 졸업 후 진로, 인생 계획 설계를 위한 비전을 제시하며 리더십을 함양하도록 지원해왔다. 직업 적성검사, 기업 및 전문기관 인턴 채용 기회를 소개하며 국내에서 개최되는 국제워크숍 프로그램에 파견해 국제적 감각을 익히도록 돕고 있다.


시민단체에 새터민 교육 떠맡겨서야


이에 덧붙여 통일 후 남북 주민 간 ‘마음의 통합’을 중재할 전문 인재로 양성하고자 탈북 대학생 리더십 캠프를 개최해왔으며, 2007년에는 외국 교육기관과 연대해 연 2회 실시할 계획이다.
탈북 청소년들의 교육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북한에 대한 한국 학생들의 올바른 인식이다. 북한인권시민연합은 2003년부터  한국의 대학생들과 같은 또래의 탈북 동포 대학생을 선정하여 북한 생활, 탈북 과정, 남한 생활 적응 과정에서의 경험, 남북한 생활 비교, 현재의 고민 등에 관해 한국 대학생들과 솔직한 대화를 나누게 하여 현재까지 5천여 명이 이 과정을 이수했다.
통일 교육 사이트 ‘통일에듀넷’을 운영하는 남북통일교육원은 새터민 청년을 간사로 발탁했다. 기독교의 지원을 받는 시민단체나 자원봉사자들에게 새터민 교육을 떠맡긴 형국이다. 그러나 새터민이 1만명에 돌입한 지금은 정부가, 의회가, 법조계가 총체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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