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붐, 기쁘거나 얼떨떨하거나
  • 신영수(<베이징 저널> 발행인) ()
  • 승인 2007.02.05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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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 <중국청년보> 여론조사에서 자신감, 회의감 교차

 
세계 곳곳에서 지금 ‘중국 붐’이 뜨겁게 일고 있다. ‘21세기는 중국의 세기’라는 말이 그리 어색하지 않게 들린다. 중국과 이웃한 한국에서도 중국 붐은 예외가 아니다.
중국 붐은 중국의 국력 신장에서 비롯된 것이다. 과거 2백년 가까운 치욕의 역사를 겪어온 중국인들이 국가 중흥에 절호의 기회를 잡은 결과물이다. 이같은 중국의 새로운 현상을 중국인들 스스로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또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이 중국의 부상에 대해 우려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사람들은 오늘날 중국을 ‘세계의 공장’으로 부른다. 실제 세계 전체에서 차지하는 중국의 생산 능력을 보면 이 말을 실감할 수 있다. △냉장고 20% △세탁기 30% △양말 40% △오토바이 50% △TV 55% △페니실린 60% △시계 75% △트랙터 80% △라이터·단추 90% 등.
요즘 세계적으로 중국 붐이 일게 된 데는 뭐니 뭐니 해도 중국에서 제조된 값싼 중국산 제품(메이드 인 차이나)이 세계 구석구석으로 침투한 것이 큰 몫을 차지한다. 게다가 지난 20년 가까이 연평균 9% 이상의 경제성장을 구가해온 중국은 그 자체로 세계 최대 시장이기도 하다. 세계 500대 다국적 기업들이 대부분 중국에 투자한 까닭이 어디에 있겠는가.
세계적으로 중국어 학습 열풍이 불고 있는 것도 알고 보면, 중국과 중국인을 이해하고 궁극적으로는 중국 시장을 활용하기 위한 수단을 장만하려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53%가 “세계적 중국 붐 실감한다”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이 지난 1월13일자 판에서 커버스토리로 ‘중국-새 왕조의 시작’이라는 주제를 다룬 것은 전세계 각 언론 매체들이 다투어 ‘중국의 세기’를 줄기차게 떠들어온 여러 판본 중의 최신판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면 중국인들은 세계적인 중국 붐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그들의 자가 진단 결과를 한번 살펴보자. 중국 공산청년단(공청단) 기관지인 <중국 청년보>는 지난해 12월29일자에서 중국인의 53.4%가 중국 붐이 일고 있는 것을 느낀다는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중국 청년보> 산하 사회조사센터가 포털 사이트 시나(新浪) 닷컴과 텅쉰(騰訊) 닷컴 공동으로 1만2천58명의 중국인을 대상으로 최근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중국 붐을 느끼게 하는 요인으로, 갈수록 많은 외국 매체들이 중국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꼽은 응답자가 56.3%로 가장 많았다. 중국 붐을 느끼게 하는 그 밖의 요인으로는 △‘중국제’의 세계적 보급(52.1%) △다국적기업들의 경쟁적 중국 투자(50.4%) △갈수록 많은 외국인의 중국 방문(38.6%) △세계적인 중국어 열풍(33.0%) 등을 꼽았다.
중국 붐을 가져온 원인에 대해서는 압도적으로 많은 응답자(70.9%)가 ‘경제적 목적에서 중국의 거대 시장을 겨냥한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중국이 세계 문제에 적극 참여하기 때문’이라는 응답도 48.8%를 차지했다. ‘외국인이 중국의 전통 문화를 이해하고 싶어하기 때문’을 중국 붐의 원인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18.4%에 불과했다. 이번 조사에서 49.7%의 중국인들은 중국 붐을 자신들에 대한 일종의 ‘도전’으로, 33.9%는 일종의 ‘기회’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15.6%는 관망하는 태도를 보였다.
<타임>이 커버스토리에서 ‘21세기는 중국의 세기’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 응답자의 36.0%가 동의하는 입장을 보였고, 42.9%는 동의하기를 거부했다. 20.1%는 ‘말하기 어렵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중국 청년보>는 이번 조사에서 중국이 외국인들을 끌어들이는 최대 흡인력은 ‘물건 값이 특별히 싸다’는 것임이 밝혀졌다면서 장궈칭(張國慶) 중국 사회과학원 미국연구소 연구원의 우화적인 비유를 소개했다. “1980년대에는 외국 기자가 중국에 오면 판다 곰을 보여달라고 했고, 1990년대에는 반체제 인사를 만나게 해달라고 요구했는데, 21세기 들어서는 상무부로 데려다달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 청년보>는 이번 조사 결과를 분석해 보도하면서 과거 찬란한 문화를 자랑했던 중국이 오늘날 선진국 기업들의 제품을 대리 생산하는 하청 업체로 전락한 현실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지난해 9천6백91억 달러 규모의 제품을 수출해 무려 1천7백75억 달러의 무역 흑자를 기록하는 대단한 실적을 거두었지만, 중국 문화의 대외 교류 면에서는 내내 대규모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의 문화 무역은 10 대 1의 현격한 무역 적자에 허덕이고 있고, 심지어 구미 국가들에 대해서는 무려 100 대 1의 역조를 겪고 있는 실정이다. 그 결과 외국인에게 주는 중국 문화의 인상은 기껏해야 무술, 경극, 붉은색 용 따위나 떠올릴 뿐 전세계에 영향을 미칠 만한 문화 역량은 아직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처 전 영국 총리가 했다는 말은 매우 냉소적이다. “오늘날 중국이 수출하는 것은 텔레비전이지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사상 관념은 아니다.”
중국은 28년에 걸친 개혁 개방을 통해 전세계가 놀랄 만한 경제성장을 이룬 것이 사실이지만, 아직도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빈부 격차, 사회보장 미비, 취업 문제 등 어느 것 한 가지도 간단히 해결될 과제가 아니다. 이번 조사에서 21세기를 ‘중국의 세기’라고 규정한 <타임>의 논법에 대해 42.9%가 찬동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중국인 특유의 자기 비하적 논법은 계속 이어진다. 외국 매체들이 소개하는 중국 붐의 내용인즉, 사실은 베이징과 상하이 같은 대도시들의 찬란한 번영의 현장을 조명한 것일 뿐, 중서부 농촌의 빈궁하고 낙후한 측면은 외면하고 있는 데다, 대부분 ‘중국 제조’일 뿐 ‘중국 창조’는 적다는 사실을 주목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물론, 중국측도 최근 들어 미국을 비롯한 서방 언론이 중국의 부상과 관련해 이전의 정서적 색채를 줄이고 객관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하고 있다. 한때 시끄럽게 제기되던 ‘중국 위협론’이 다소 수그러들고 지금은 ‘중국 책임론’으로 옮아간 것도 일종의 발전이라고 중국측은 받아들이고 있다.
<중국 청년보>는 2년 전 미국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니컬러스 크리스토프가 쓴 ‘카이펑(開封)에서 뉴욕까지’라는 글을 인용해 “망자존대는 대단히 위험하다. 고대 중국은 외국에 대해 아무것도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것이 패망의 시작이었다”라고 지적하기를  잊지 않았다.
중국인의 겸허한 자세를 촉구하는 이런 논조가 오늘날 세계의 최대 화두인 ‘중국의 국제적인 역할’에 대한 해답으로 발전하게 되기를 바라는 것은 비단 최강대국 미국의 희망만은 아닐 것이다. 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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