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통계로 잡히는 소비 집단은 없다
  • 황상민(연세대 교수, 인간발달 소비자심리 전공) ()
  • 승인 2007.02.05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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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 '6대 블루슈머'는 과용...소비의 사회 현상도 통계로 뒷받침해야

 
'2007년, 기업인이 주목해야 할 한국의 블루슈머 6’이라는 타이틀로 통계청이 우리 사회의 주목할 만한 소비자 집단을 선정해 발표했다.
‘하루 평균 이동 시간이 5분 증가했다(이동족)’ ‘범죄 피해에 두려움을 느끼는 한국 여성은 67.8%이다(무서워하는 여성)’ ‘한국의 20대 중 49.7%는 아침 식사를 거른다(20대 아침 사양족)’ ‘직장인 중 피로도를 느끼는 비율은 89.1%(피곤한 직장인)’ ‘3050 일하는 엄마(3050 여성 취업자 수는 6년 전보다 16.8% 급증)’ ‘지방질 섭취량 88.6g, 칼로리 공급량 3천14Kcal로 증가세(살찐 한국인)’ 등등.
통계 자료를 통해 소비자 집단을 찾으려는 시도는 신선했다. 블루오션(Blue Ocean) 전략을 응용한 통계청의 노력은 공무원들의 경쟁력 향상 모델처럼 보인다. 그 자체로 국가 통계 자료를 기업 마케팅에 이용하는 새로운 블루오션을 개척한 것 같다. 하지만 발표 내용은 통계청 스스로가 통계 자료를 얼치기로 활용할 수 있는 예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통계청은 이동 시간이 5분 증가했다는 통계 자료로 ‘이동족’, 범죄 피해를 두려워하는 한국 여성이 67.85%라고 해서 ‘무서워하는 여성족’이 있다고 말한다. 피로를 느끼는 직장인이 89.1%라고 하여 ‘피곤한 직장인’이라는 소비 집단을 이야기한다. 여성 취업자 수가 6년 전보다 16.8% 급증했다고 해서 ‘일하는 엄마’라는 소비 집단을 유추한다. 이런 상상력은 바로 ‘한 마리의 제비를 보고 봄이 왔다’고 판단하는 이솝 우화의 ‘통계청 판’이라 할 만하다.
일반적으로 통계 자료는 평균을 통해 대표적이거나 일반적인 성향을 찾을 때 이용된다. 하지만 이 경우 특정 통계 자료가 나타내는 특정 소비자 집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특정 소비 집단이란 하나의 통계치로 도출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살기 위해 밥을 먹는다’는 명제와 ‘밥을 먹기 위해 살아야 한다’는 명제가 서로 같은 뜻이 아닌 것과 같다.
특정 통계 자료를 기초로 이것에 근거한 특정 소비 집단이 있으리라고 가정하는 것은 ‘살기 위해 밥을 먹는다’라는 명제가 옳다면, ‘밥을 먹기 위해 살아야 한다’라는 명제도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특정 통계 자료에서 유추되는 인간 욕구를 근거로 특정 소비 행동이 나타날 것이라는 주장은 통계 자료가 제공하는 정보와 전혀 관계가 없다. 소비자 집단을 추측하는 작업은 하나의 통계 자료가 아닌 다양한 통계 자료의 종합판이다. 왜냐하면 소비 집단은 하나의 행위만 하는 인간이 아니라 생활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발표 자료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상황을 알려주고 있다. ‘한국 사회의 직장인은 피곤하다. 도심 가까이 집을 가지기에는 너무 비싸니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움직여야 한다. 더욱이 남편 혼자 벌어 살 수 없으니, 주부의 취업률은 더욱 높아진다. 여성의 사회 활동이 증가하면 할수록 잠재적인 범죄 피해에 대한 우려도 높아진다. 증가하는 스트레스는 바로 살찐 몸매를 만들어낸다.’
이런 상황을 근거로 볼 때, 한국 사회에 ‘이동족’ ‘무서워하는 여성’ ‘20대 아침 사양족’ ‘피곤한 직장인’ ‘일하는 엄마’ ‘살찐 한국인’과 같은 6개의 소비자 집단이 있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보통 사람의 삶이 피곤하고 불안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통계 자료를 통해 특정 소비자 집단의 소비 트렌드를 파악하는 것은 단순히 특정 통계 자료로 추정될 수 없다. 이것은 기상청의 슈퍼컴이 내놓는 자료만으로 우리가 정확한 일기예보를 할 수 없는 상황과 같다. 소비 행동이나 소비 성향은 하나의 변수에 의해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집단이 나타내는 라이프스타일이다.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은 서로 구분되는 다양한 통계치로 표현된다.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이 존재하고, 각 라이프스타일은 다양한 통계치로 표현된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 예가 일명 ‘된장녀’와 ‘웰빙족’이라는 소비 집단이다. 이 둘은 한국 사회의 주요 소비 트렌드를 나타낼 뿐 아니라 새롭게 형성된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다.
‘된장녀’는 이미지에 살고 죽는다. 남들이 하는 것은 나도 한다. 명품을 선호하고, 트렌드를 열심히 찾는다. 때로는 알뜰한 멋쟁이처럼 보인다. 버스비를 아껴서라도 돈을 모아 사고 싶은 것을 산다. 이것을 속된 말로 ‘지른다’라고 표현한다. 마시는 커피는 4천원짜리 스타벅스이지만 먹는 밥은 1천원짜리 김밥이 될 수 있다. 이 집단은 ‘저출산 경향’ ‘인터넷을 통한 대중문화와 소비 행동’ ‘외모 가꾸기’ ‘웰빙 문화의 추종’ ‘빈부 격차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사교육의 의존성’과 관련된 통계 자료로 다른 소비 집단과 구분된다.


현존하는 다양한 소비 집단부터 먼저 밝혔어야


된장녀와 다르지만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또 다른 소비 트렌드가 바로 ‘자기만의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들의 소비 성향이다. 된장녀와 구분되는 라이프스타일로 유기농 소비와 품위 있는 웰빙적 삶을 추구한다. 이들의 소비 성향을 신귀족 또는 웰빙 성향이라고 한다.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여유롭고 업그레이드된 그리고 ‘트렌디한 삶’이다. 이들에게 소비 행위는 결핍의 보완이 아니라, 개인의 가치를 표현하는 수단이다. 안락함, 부드러움, 인간 친화성 등의 심리적 만족이 그것이다. 소비 행태를 바로 자신의 사회적 지위나 신분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중요 소비 포인트는 ‘장인의 손’ ‘사회적 신분’ ‘외모 가꾸기’이다. 이 집단은 다른 소비 집단에 비해 ‘자신의 몸과 마음의 건강에 대한 지출’ ‘개성과 독특함을 나타내는 제품과 서비스’ ‘여성의 경제 활동과 남성의 가사와 육아 참여’ 성향에 관한 통계 자료로 확인할 수 있다.
통계청이 통계 자료를 통해 한국 사회의 새로운 소비 집단과 트렌드를 추론하려고 했다면, 현재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소비 집단을 먼저 구분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소비 집단들이 주도하는 특정 소비 행위나 유행이 무엇인지를 확인해주어야 한다.
현재나 미래 한국 사회에서 뚜렷한 소비 행동은 된장녀 집단이든 웰빙족이든 관계없이 ‘명품 소비’ ‘성형수술 열풍’ ‘웰빙형 소비’ 또는 ‘지름신 강림’ 등의 다양한 사회 현상으로 표출된다. 이런 소비 행동을 나타내는 통계 자료가 무엇인지를 알려준다면, 통계청은 ‘살기 위해 밥을 먹는’ 모습이 된다.
‘소비자 집단’이라고 구분되는 ‘인간 분류’는 유사한 특성을 가진 다양한 개인의 다양한 소비 행동과 성향, 가치를 반영한다. 한두 가지의 통계 자료를 통해 특정 소비 성향의 집단을 추정하는 것은 1년 중 하루의 날씨로 그해의 풍년을 예측하는 것과 같다. 블루오션을 찾으려는 통계청의 노력이 동네 저수지가 아닌 태평양 같은 오션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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