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사냥꾼' 한국 대이동
  • 서종수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4.09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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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대적 M&A 대량 발생 가능...경영권 방어 등 대응책은 미약

 
 
전세계적으로 기업 인수·합병(M&A)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는 가운데 국제 기업 사냥꾼들이 한국에 상륙해 기업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특히 주인 몰래 경영권을 빼앗는 적대적 M&A의 표적이 되고 있는 기업들의 경우 경영권 방어가 최우선 과제로 떠올라 그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올 1/4분기 세계 M&A 거래 규모는 1조1천3백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 늘어난 것으로 조사되었다. 한 분기의 M&A 실적이 1조 달러를 넘어선 것은 처음이다.
네덜란드 최대 은행으로 자산 규모 6백92억 달러인 ABN암로가 M&A 시장에 매물로 나와 있는 사실을 감안할 때 올해 전체 M&A 규모는 사상 최대를 기록할 것이 확실시된다. 영국의 바클레이즈 은행과 미국의 시티그룹이 ABN암로 인수를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시장에서도 M&A 거래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벤처 붐 속에 기업 간 이합집산이 한창이던 지난 2000년 이래 7년 만의 일이다. 증권예탁결제원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거래소시장 법인과 코스닥시장 법인의 M&A는 2005년 대비 8% 증가한 1백31개 사에 달했다.
시장별로 살펴보면 코스닥시장 법인의 M&A가 86개 사로 거래소 시장 법인 45개 사에 비해 거의 2배에 이르렀다. 또 이 가운데 52개 사의 M&A가 우회상장 규제 제도 시행을 앞둔 상반기에 진행되었다.
이처럼 국내 M&A 시장이 달아오르는 것은 주식 시장이 부진 상태에 오래 빠져 주가가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기회로 싼값에 기업을 인수한 후 경기가 회복 국면에 접어들면 덩지를 키울 수 있다고 판단하는 기업들이 많아진 것이다.
산업 구조 개편 차원에서도 M&A가 진행되고 있다. 세계 철강업계 1, 2위 간 합병으로 재탄생한 미국의 미탈-아르셀로가 한국의 포스코에 대해 “신일본제철보다 훨씬 저평가되어 있어 인수·합병(M&A) 대상으로 아주 매력적”이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외신들에 따르면 미탈-아르셀로는 또 “포스코 등 아시아 철강사들은 인수·합병에 소극적이지만 향후 세계 철강업계에서는 먼저 인수하지 않으면 인수당하는 처지가 될 것”이라며 “인수·합병이 철강회사 재평가의 계기가 될 수 있다”라고 전망했다.
무엇보다 전세계 M&A 시장을 주무르는 국제 사모(私募) 펀드들이 국내 우량 기업들을 노리고 있다는 소식이어서 주목된다. 국제 사모 펀드들은 투기성이 강하고 공격적이어서 적대적 M&A에 나설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상된다.


지배 구조 취약한 기업들, 투기 자본의 먹잇감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상장 주식을 5% 이상 보유한 외국인은 27개국에 걸쳐 2백67명으로, 현재 상장 법인 4백50개 사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이 외국인 투자가들이 모두 적대적 M&A 세력은 아니다. 상당수는 장기 투자를 선호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노골적으로 적대적 M&A를 겨냥한 단기성 투기 자금이 속속 상륙하는 분위기이다. 동국제강·현대제철 등 철강 회사들과 현대산업개발·대림산업 등은 주가가 단기간에 이상 급등해 외국 투기 자본이 지분 매입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문제는 해외 투기 자본들이 적대적 M&A나 투기적 목적으로 시세 차익을 올리기 위해 M&A를 하겠다고 위협하는 경우 기업들은 속수무책이라는 점이다. 국내 기업들은 지난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뒤 투명성을 강화하라는 국제통화기금(IMF) 등의 강제적 권고에 따라 미국식 기업 지배 구조를 도입해 적대적 M&A에 대한 규제를 대부분 해제했다. 스스로 무장 해제를 한 탓에 투기 자본들의 적대적 M&A 시도에 앉아서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지난해 2월 KT&G는 미국의 기업 사냥꾼인 칼 아이칸의 공개 매수로 인해 된통 홍역을 치렀다. 아이칸은 매집한 주식을 막대한 시세 차익을 남기고 팔아 KT&G에서 손을 떼기는 했지만 국제 투기 자본들은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국내 기업들의 경영권을 넘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전문가들은 “최우수 지배 구조 기업으로 선정되었던 KT&G가 7%도 채 되지 않는 지분을 가진 아이칸으로부터 경영권을 위협받는 등 주식 시장이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였다”라며 “KT&G처럼 취약한 지배 구조를 노린 투기 자본의 위협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고 자본 시장의 과실을 외국인 투기 자본이 모두 따먹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할 만하다”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적대적 M&A는 국내 기업과 국가 성장 잠재력을 근본부터 뒤흔들고 자리를 잡아가는 시장 경제의 틀을 훼손할 수 있으므로 시장의 자율성을 존중하면서도 기업에 대해서는 경영권 방어를 위한 조처나 제도를 마련해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 3월 초 <해외 투기자본 유입 증가에 따른 적대적 M&A 위협 및 대응방향>이라는 자료를 내고 “국제 투기 자본에 의한 M&A 위협이 현실화되고 있고 선진국들은 다양한 경영권 방어 제도를 두는데도 불구하고 M&A가 활발하게 나타난다는 점에서 다양한 방어 제도가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전경련은 “의무 공개 매수 제도, 차등의결권 주식, 독약 증권(Poison Pill: M&A 시도가 있을 경우 신주 또는 자사주를 매우 낮은 가격으로 살 수 있는 옵션을 기존 주주에게 배당해 M&A 시도자의 지분을 희석시키는 제도), 소량 주식 보유자 정보 제공 요청권 등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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