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와 무샤라프 '괴이한 동거'
  • 조흥래(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6.04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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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파키스탄에 알 카에다 소탕 자금 56억 달러 지원...성과 없는데 계속 돈 보내 '의혹'

 
파키스탄의 무샤라프 대통령은 1999년 민선 정부를 전복하고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 독재자다. 언론을 통제하고 야당을 탄압했다. 인권 유린은 다반사가 되고 헌법은 있으나마나다. 중동에서 민주주의를 확산하고 인권을 신장한다는 명분으로 이라크를 침공한 부시 대통령이 바로 자신의 대의를 짓밟는 파키스탄과는 밀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외교에서 적과의 동침은 필요악이라고 한다. 부시와 무샤라프의 밀착은 미스터리를 연상시킬 만큼 전례가 없다.
미국은 파키스탄 내 알 카에다 조직을 소탕하는 무샤라프 군대를 지원하기 위해 매년 10억 달러를 지원한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시작된 이 프로젝트에 따라 파키스탄에 제공된 돈은 56억 달러에 달한다. 이렇게 많은 돈을 받고도 테러 조직 소탕은 별 진전이 없다. 무샤라프는 오히려 소탕 작전을 축소하기까지 했다.
보다못한 미국 관리들은 원조와 작전 성과를 연계시키자고 건의했다. 백악관은 듣지 않았다. 돈은 계속 송금되었다.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파키스탄 내 알 카에다 조직과 활동이 지난 5개월간 오히려 증가했다. 돈은 돈대로 받고 작전은 대충대충 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파키스탄 내 테러 조직이 강화될수록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저항군의 공격도 거세진다. 무샤라프도 할 말은 있다. 테러분자들을 추적하면 아프가니스탄 국경으로 넘어간다. 그 이상은 추적할 수 없다. 그러니 방법이 없지 않느냐는 식이다.
파키스탄은 5개월 전 아프가니스탄 국경 지대에서 벌여온 테러 조직 색출 작전을 대폭 축소한다고 발표했다. 백악관은 이 발표에도 불구하고 지원금을 계속 제공하는 이유에 대해 직접 답변을 하지 않았다. 국가안보보좌관 스티븐 해들리가 “파키스탄은 미국에 전략적인 지역”이라고 말한 것이 전부이다. 테러와의 전쟁 및 아프가니스탄 사태에서 파키스탄의 협력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미국의 판단이다. 지원금 투자는 시간이 흐르면 성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관리들은 말한다. 효과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양국은 테러 조직의 소재와 활동에 관한 중요 정보를 공유한다. 이것만 해도 적잖은 소득이다.


 
부시가 무샤라프에게 큰돈을 주는 까닭은?

미국 국방부에 의하면 2001년 10월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부터 시작된 작전 비용 지원은 매월 8천만 달러꼴이다. 파키스탄 국방비의 5분의 1에 달하는 규모이다.
부시 행정부는 지난 1월 파키스탄군이 미군으로서는 달성하기 어려운 작전 성과를 냈다고 의회에 보고했다. 합동 작전, 관측소 설치, 지상 및 해양에서의 검문과 압수 등을 사례로 들었다.
그러나 무샤라프는 지난해 9월 알 카에다 부족과의 전투에서 큰 피해가 나자 북부 주요 거점에 대한 작전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얼마 뒤 파키스탄을 방문한 부시와 함께 기자들 앞에 나타난 무샤라프는 거점 지역 작전은 현지 민병대와 부족 지도자들이 담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관리들은 오사마 빈 라덴이 문제의 지역에서 이미 도주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미군 지휘관들은 행정부 관리들의 태평한 발언에 불만을 토로했다.
지난해 파키스탄을 방문한 잭 리드 민주당 상원의원은 국방부에 낸 보고서에서 전비 지원 방식을 바꾸라고 건의했다. 미군 지휘관들도 찬성했다. 국가안보회의 대변인 존 드로는 그런 건의가 있었는지 아는 바 없다고 일축했다.
익명을 요구하는 미국 관리들은 흥미로운 얘기를 들려준다. 무샤라프에게 주는 돈은 파키스탄 군부에 대한 격려금 성격이라는 것이다. 군부는 무샤라프의 권력 기반이다. 그가 군의 지지를 상실하면 정권은 무너진다. 그의 집권을 유지시켜주기 위해 돈을 준다는 말이다.
대테러 작전 지원은 구실에 불과하다. 무샤라프의 인기는 요즘 바닥을 헤맨다. 특히 자신을 비판하는 대법원장을 해임한 후 도처에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 수십 명이 죽었다. 타국의 반민주주의 조처를 자주 규탄하는 미국은 이 사태에 대해서만 국내 문제라고 치부했다.
국제전략연구소의 한 보고서는 2002년부터 파키스탄에 제공된 미국의 원조금은 총 100억 달러라고 밝혔다. 이 돈으로 개선된 파키스탄 무기들은 알 카에다 추적보다는 인도를 견제하는 데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파키스탄의 부채 상환을 위해서도 16억 달러를 지원했다. 보건, 식량, 민주주의 증진 및 교육을 위해 준 돈은 9억 달러에 불과하다. 파키스탄의 문맹률은 50%나 된다. 교육 결핍이 일부 종교 학교들로 하여금 극단주의에 빠지도록 해 알 카에다 동조 세력을 만드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의 원조는 엉뚱한 곳에 집중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나토군도 파키스탄의 작전 성과에 불만이 많다. 나토에 배속된 전·현직 미군들은 알 카에다 분자들이 수시로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국경을 넘나들어도 파키스탄 국경 초소 병사들은 이를 모른 척한다고 말했다. 파키스탄은 이를 모함이라고 반박했다.
더 기가 막히는 일도 있다. 파키스탄 보안군이 가끔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을 공격하는 알 카에다를 도와 지원 사격을 한다는 것이다. 뉴욕 타임스가 입수한 미군 보고서에는 이를 입증하는 증거가 첨부되어 있었다. 이에 따르면 적을 지원하는 사격에는 중기관총이 사용되었는데 파키스탄 관측소에서 이를 사용해 사격을 했다고 한다. 이 사격으로 군인들이 죽고 탄약고가 폭파되는 등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은 큰 피해를 입었다. 파키스탄군은 지금도 국경 초소에서 알 카에다를 지원하는 사격을 하고 있다고 보고서는 주장했다.
랜드연구소의 분석가이며 전 아프가니스탄 주재 미국 고위 외교관이었던 제임스 도빈스는 군인들이 자신에게도 비슷한 말을 했다고 밝혔다. 알 카에다 지원 사격은 파키스탄 내 부대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정부군과 싸우는 탈레반 및 알 카에다를 돕기 위해 자행했다고 그는 말했다. 주미 파키스탄 대사 두라니는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그는 파키스탄군이 알 카에다와 전투 도중 7백명이 죽었다면서 알 카에다를 지원한다는 일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파키스탄 관계에는 미스터리가 많다. 파키스탄의 핵 과학자 A.Q. 칸이 북한을 포함해 여러 나라에 핵 기술과 물질을 판매한 사실이 밝혀졌을 때도 미국은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무샤라프가 미국에 협조하는 한 양국 밀월은 계속될 것이라고 외교관들은 말한다. 파키스탄에 대한 미국의 총애는 거의 맹목적 수준에 가깝다. 다른 나라에 대한 기준과 배치되는 것은 물론이다. 이라크 전쟁의 수렁에 빠진 부시가 단 한 사람의 협조자라도 확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파키스탄의 경우는 너무 특이하고 도를 넘은 것이라고 외교관들은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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