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의, 악플에 의한 악플을 위한 세상인가
  • 유근원(자유기고가) ()
  • 승인 2007.06.11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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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사냥 ·인민 재판식 사이버 폭력 피해 극심

지난해 말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내놓은 한 책자에 ‘사이버 폭력’으로 피해를 입었다는 장 아무개씨의 글이 실렸다. 글의 요지는 이렇다. 2004년 여중생 체벌 사건으로 관련 여교사가 자살하는 사건이 터졌다. 사건의 전모가 인터넷에 공개되자 당시 체벌을 당했던 장씨의 딸(당시 중학교 2학년)과 이를 학교에 항의했던 장씨는 네티즌으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심지어 살인자라는 비난을 받으며 범죄자 취급을 받았다. 네티즌들은 딸의 실명을 거론하고 사진까지 올렸다. 온갖 욕설과 모욕을 퍼부었다. 결국 이를 못 이겨낸 딸은 가출해서 행방불명이 되었다. 장씨는 글에서 지난 3년이 마치 30년 같은 세월이었다고 고백했다.
장씨처럼 사이버 폭력을 경험한 사람들은 사회 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상처를 입는다. 2005년 ㅅ씨 자살 관련 ㄱ씨 피해 사건도 사이버 마녀 사냥의 대표적 사례다. ㄱ씨는 ㅅ씨와 사귀다 헤어졌다. 이후 ㅅ씨는 애인과의 결별에 비관해서 자살을 했다. 유족들은 ㅅ씨의 미니홈피에 추모의 글을 올렸다. 그 후 이 미니홈피에는 ㄱ씨에 대한 비난 글과 사진, 실명, 직장, 전화번호 등이 올라왔다. 분노한 네티즌은 ㄱ씨에 대한 비난 글과 그의 인적 사항을 퍼 날랐다. 일부 네티즌은 ㄱ씨에게 “죽이겠다”는 등의 문자 메시지를 남겼다.
ㄱ씨는 직장 생활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회사에 그를 해고하라는 항의 전화까지 걸려왔다. 그는 결국 퇴사했다. 또 야간 대학까지 그만두어야 했다. 자신이 다니는 야간 대학 앞에서 자신을 비난하는 촛불 시위까지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결국 법적 소송으로 갔다. 기존 ㅅ씨의 미니홈피는 차단되었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네티즌이 퍼간(복사해간) ㄱ씨의 정보는 다른 미니홈피에 게재되면서 비난은 계속되고 있다.
최근 고등법원은 “4개 포털 사이트는 ㄱ씨에게 1천6백만원의 위자료를 지불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또 ㄱ씨를 비난한 네티즌은 사이버 명예훼손 죄로 형사 처벌을 받았다. ㄱ씨를 비난하는 글을 퍼 나른 네티즌도 같은 이유로 처벌을 받았다. 네티즌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명예훼손이 된다는 것조차 몰랐다. 네티즌들은 자신도 모르게 가해자가 되었고 한편으로는 피해자가 된 셈이다.


 
사이버 몸팅·성폭력·스토킹 피해 늘어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신고상담실 피해구제팀 김계순 팀장은 “가장 큰 문제는 네티즌이 사이버 명예훼손 죄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점이다. 사실을 공개하더라도 그 내용으로 누군가가 명예훼손을 당했다고 주장하면 명예훼손 죄에 해당한다. 면죄가 되려면 그것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임을 증명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팀장은 “이 경우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만약 허위의 사실로 명예를 훼손하면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5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라고 말했다. 이는 기존 형법상 명예훼손 죄(5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보다 훨씬 무거운 처벌이다. 온라인상에서의 명예훼손 행위는 인터넷의 특성으로 인해 현실에서보다 훨씬 큰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6년간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는 총 2만7천7백90건의 사이버 폭력 피해 상담이 접수되었다. 폭력 유형도 날도 다양해지고 있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 피해구제팀 관계자는 “최근에는 화상 채팅을 하면서 몸을 보여달라고 꼬신 후에 그 장면을 녹화했다가 안 만나주면 공개하겠다고 협박하는 ‘몸팅’이 가장 심각한 말썽”이라고 말했다. 그는 명예훼손·모욕·스토킹·성폭력 등의 사이버 폭력에 대한 피해 상담도 줄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특정인에 대한 허위의 글이나 명예에 관한 사실을 인터넷에 공개하는 ‘사이버 명예훼손’은 자신이 작성하지 않고 단순히 퍼 나르기만 했어도 예외가 아니다. 음란한 대화를 강요하거나 성적 수치심을 주는 대화로 상대방에게 정신적 피해를 주는 ‘사이버 성희롱’은 게임이나 채팅을 하면서 특히 많이 발생한다. 개인 블로그나 미니홈피에 2회 이상의 접근을 시도하면서 성적 괴롭힘을 행사하는 ‘사이버 스토킹’과  몰래 카메라 촬영물 등 음란물을 유통시키는 ‘사이버 음란물’ 등도 사이버 폭력의 범주에 해당한다. 네티즌들이 가장 간과하고 흔히 저지르는 잘못이 사이버 모욕이다. 인터넷상에서 특정인에 대해 모욕적인 언사나 욕설 등을 행하는 댓글이 이에 해당한다. 사이버 폭력은 대부분 게시판·댓글·퍼나르기를 통해 이루어지고 블로그·카페·미니홈피·포털 사이트 등에 의해 확대 재생산된다. 최근의 주요 피해 사례는 ‘악플’(惡+reply)이다. 악플은 다른 사람이 올린 글에 대해 비방하거나 험담하는 내용을 올린 댓글이다. 때로 악플을 올리는 악플러들이 집단으로 마녀 사냥식 여론몰이를 통해 인민재판처럼 다수의 논리로 소수를 공격하는 모습을 보인다.
안명옥 한나라당 의원은 “악플은 사회 구성원들의 건강한 정신을 오염시키고 우리 사회를 불신으로 이끌어가는 ‘악성 바이러스’와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올해 7월부터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인터넷 실명제가 근본 해결책인지는 의문이다. 악플을 없애기 위해서는 네티즌들의 성숙한 시민의식과 네티켓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인터넷에 악플을 지속적으로 올리는 것은 자신의 상태와 욕구를 알리고자 하는 과시욕이다. 사람들의 반응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싶어하는 관음증의 발현”이라면서 “이런 욕구가 좌절되면 익명성에서 오는 분노로 인해 더욱 공격적 행동을 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온라인 군중 심리가 오프라인 군중 심리보다 크기 때문에 심한 악플일수록 다수의 의견으로 간주되기 싶다. 사이버 폭력은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감춘 채 남에게는 아무 말이나 해도 괜찮다는 식의 익명성 보장이라는 그릇된 심리에 뿌리를 두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라고 자처할수록 악플은 심해진다. 자신의 영역에서 이견이 있을 경우 악플의 문제는 훨씬 심각하다. 습관적으로 악플을 다는 사람들은 일단 자신의 신념을 절체절명의 진리로 확정해놓고 상대방은 그 진리를 대적하거나 훼손하는 악의 축으로 단정한 뒤 가해지는 일종의 보복적 성격을 띠기 마련이다. 이런 이유로 신념이 가미된 악플은 자신들에게는 결코 악플이 아니라 마땅히 응징해야 할 악을 향한 일종의 성전(聖戰)이다.
악플을 달아본 경험이 있다고 고백한 한 대학생은 “장기간에 걸쳐 토론해야 할 큰 주제를 놓고 단 한두 편의 글이나 몇 줄의 주장을 강변하려다가 반대의 주장을 하는 글에 대해 비방적인 악플을 달게 된 적이 있다”라고 말했다. 한균태 교수(경희대 언론정보학과)는 “다르다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니다.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문제다. 사회는 다양해지는데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준비가 안 되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악플의 문제점은 그 내용의 저급함에 있다. 악플은 망자나 애국지사 등 대상을 구별하지 않는다. 지난 2월 악성 댓글에 시달리던 가수 유니가 자살했을 때조차 악플이 여전히 올라 유족과 친지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애국지사인 윤봉길 의사에 대해서도 ‘빈 라덴 같은 테러리스트에 불과하다’는 내용을 비롯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악플들이 달렸다. 근거도 없이 악랄하고 증오에 찬 댓글들로 인해 선의의 피해자가 인터넷상에서 끊임없이 양산되고 있다.
지난 5월 악플 추방을 위해 선플달기운동본부를 결성한 민병철 중앙대 교수는 “악플은 사회 속에서 해소되지 않은 욕구의 분출이다. 공동체 문화와 칭찬 문화의 빈곤 그리고 패자를 무시하는 문화가 악플의 사회적 원인이다”라고 말했다. 민교수는 “착할 선(善)자와 리플이란 말을 합친 신조어 선플로 악플에 대항하고 대체해가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실제로 비난과 헐뜯기로 가득한 특정 뉴스에 선플이 달리면 댓글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달라지는 효과가 있다”라고 말했다.
기대가 되는 것은 선플 달기 운동과 함께 오는 7월 말에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산하에 ‘사이버 명예훼손 분쟁조정부’가 출범한다는 사실이다. 관련 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사이버 폭력에 대해 소송을 하지 않고 조정받을 수 있다. 악플에 대한 자체 검열도 강화된다. 포털 사이트 자체에서 1개월간 댓글을 보이지 않도록 처리하는 블라인드 제도도 도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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